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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큰 솥이 터져 조리실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

"큰 솥이 터져 조리실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
학교 비정규직인 급식조리원 이주니씨, 그는 왜 파업에 참여하나
[오마이뉴스] 선대식 | 14.11.19 21:40 | 최종 업데이트 14.11.19 21:54


▲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급식조리원 이주니씨가 대형 국솥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선대식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 조리실. 대형 스팀 국솥 주변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비정규직 급식조리원 이주니(41)씨는 국솥을 가리키면서 "이 솥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적이 있다, 만약 근처에 있었다면 죽었을 것"이라면서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일한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조리원 김아무개씨는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넘어져 화상을 입은 뒤 두 달 만에 숨졌다. 이씨는 "열악한 시설과 고된 노동 탓에 많은 조리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받고,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20~21일 이틀간 조리복을 벗는다.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37만 명 가운데, 2만 명이 이틀간 일손을 놓고 파업에 참여한다. 이들은 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데도 학교 밖을 나선다. 급식조리원이 대거 파업에 참여함에 따라, 급식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판도 크다. 이씨의 말이다.

"오늘 급식하면서, 많은 학생이 '왜 파업하느냐'고 물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해서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이 '도시락 싸오겠다',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학교의 시선은 따가운데 정작 학생들이 응원한다고 하니 힘이 났다."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고 하루 8시간 중노동"

이주니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한다. 식재료를 검수하고 손질하는 전처리 업무를 한다. 대량의 식재료를 옮기면, 오전부터 허리가 욱신거린다. 찬 물에 식재료를 씻을 때는 손이 얼얼하다. 날이 추운데, 이씨에게는 얇은 조리복 한 벌 뿐이다. 낮 12시 30분 배식 전 간단히 밥을 먹는다. 일이 많을 때는 거르기도 한다.

무거운 식판을 들고 교실에서 배식을 한다. 이씨는 "하루에 대략 500kg 이상 드는 것 같다,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조리원 6명이 교사와 학생 950명의 급식을 책임진다. 이씨는 "조리원 한 명 당 155명을 담당하는 셈인데, 조리원 한 명 당 100여 명을 담당하는 공기업 등을 비교하면, 학교 조리원들은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식이 끝나면, 가장 힘든 업무가 조리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잔반 처리와 설거지다. 무거운 식판을 쉴 새 없이 나르고 씻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후 4시 30분 퇴근 시간이다. 이주니씨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쉴 새 없이 일하다보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가 지난 10월 내놓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건강권 실태와 작업환경 개선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조리원의 91.9%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다. 노동과학연구소는 "전체 산업분야 평균치인 77.9%를 웃도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조사된 업종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된 노동에도 임금이 턱 없이 낮다는 데 있다. 이씨가 매달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방학 때 임금은 크게 줄어든다. 특히, 1월에 받는 임금은 '0'이다. 이씨는 "2011년 11월 처음 조리원이 됐을 때 86만 원의 월급을 받은 것에 비해 대우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열악하다"면서 "특히, 방학 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조리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상대적 박탈감은 조리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는 월 13만 원의 급식비를 받지만, 조리원들은 받지 못한다. 조리원을 제외한 나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돈을 내고 급식을 먹는다. 또한 정규직은 명절·성과 상여금을 받지만, 서울지역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20만 원 가량의 명절 상여금이 전부다. 또한 이들은 장기근속해도 매년 2만 원의 가산금만 더 받는다. 일한 지 10년이 넘으면, 가산금은 오르지 않는다. 호봉에 따라 월급이 늘어나는 정규직과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고용 불안도 큰 고통이다. 이씨는 올해 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 전 여러 차례 해고와 계약만료의 아픔을 겪었다. 그는 "지금까지 2개월, 4개월, 10개월짜리 계약서를 썼다, 학교에서 영양사가 쥐 잡듯 잡아도 묵묵히 일했다"면서 "2012년 12월 해고를 당했지만 노조의 도움으로 복직할 수 있었다, 많은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도 못한 채 열악한 처우에 묵묵히 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재정 어려워, 요구 들어주기 힘들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교섭을 벌이고 있다. 연대회의는 최소 8만 원의 급식비 지급, 방학 중 생계대책 마련, 근속 10년 이상일 때도 장기근무가산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광주·대전의 경우, 교육청에서 급식비 8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파업이 유보됐다. 하지만 나머지 지역의 경우, 교섭이 원활하지 않다. 서울시교육청 학교 직원팀 관계자는 "내년 9000억 원의 예산이 모자를 정도로 재정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교육부가 교부금으로 내려 보내는 학교 비정규직 인건비는 전체 인건비의 40%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 교육부가 1500억 원만 내려 보내 서울시교육청은 2000억 원을 부담했다"면서 "교육부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건비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많은 학교 구성원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18일 "이번 주를 학교비정규직 연대주간으로 설정하고, 학생들과 파업 이유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평등교육실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19일 "가족과 시민들에게 학교비정규직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전했다.


출처 : "큰 솥이 터져 조리실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