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김무성, 청소년들조차 비웃는다
[주장] YS 서거와 중·고등학생들의 시위를 보며 갖게 되는 감회
[오마이뉴스] 지요하 | 15.11.29 21:15 | 최종 업데이트 15.11.29 21:15
최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강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사납게 밀어붙이고 있는 박 대통령 덕분에 온 국민이 역사에 대한 관심은 물론, '새로운 인식의 눈'까지 갖게 됐다는 논지였다. 무관심했던 역사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두고 기록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획일적인 가치관과 국민을 통치와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관성 때문에 국정교과서 발상이 나왔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국민을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그 의도가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곧이곧대로 먹힐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인식의 눈'이 확대 재생산될 수도 있는 일이다. 숱한 무리를 무릅쓰고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관리들, 어용학자들이 그런 '역풍'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2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이 서거했다. 장례 기간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의 내용들이 크게 부각됐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명확하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 층은 '역사 바로 세우기'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화의 핵심 공로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와 오늘의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어떻게 상충되고 비교되는지, 그리고 그 틈새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의 처신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임을 자처하면서 경쟁적으로 상주 노릇을 했다. 그들이 정치적 아버지의 일대 과업이었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뒤엎어버리는, 오늘의 국정교과서 강행을 위해 계속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투'를 벌일 것인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을 모르는 젊은 층, 특히 청소년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는 것 같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내용도 파악하게 되면서, 친일미화와 독재옹호의 혐의가 짙은 국정 교과서를 선두에서 주도하는 여권 실세 두 사람에게서 큰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고 토로한다. 모순, 배신, 이율배반, 자가당착, 비겁 등의 단어들을 두 사람에게 맹렬히 투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매우 영악하며 사리 분별력이 놀라울 정도다. 갖가지 정보들을 손쉽게 다각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첨단 IT와 SNS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중고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일인시위를 하거나 광장에서 집단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곤 한다. 그들이 들고 서 있는 팻말이나 펼침막의 글귀들을 음미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1967년의 '6·8선거'를 회상하곤 한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됐던 제7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한 마디로 '혼탁이 극에 달했던' 부정선거였다. 고무신, 막걸리, 돈 봉투가 난무한 금권선거의 표본이었다.
나는 혼탁한 선거 풍경을 연일 목도하면서 기가 막힌 심정으로 <암흑의 6·8 선거>라는 시를 짓고 소설도 한 편 지었다. 끓어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거 후 전국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분을 전국의 수많은 고교생들이 공유하는 상황이었다. 연일 신문에는 고등학생들의 데모 상황이 보도됐다.
내가 사는 고장 충남 태안의 이웃 동네인 서산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산농림고와 서산여고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무효를 주장하는 데모한 것이다. 당시 나는 태안고등학교 2회 졸업생이었다. 그해 2월 졸업을 했지만, 축구선수였던 관계로 후배 선수들과 계속 접촉을 하고 있었다. 신설 학교라 전체 학생 수는 120명 정도였다.
나는 서산에서도 고교생들이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한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모교 후배 학생들을 설득했다. 함께 데모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낌새를 눈치챈 정보과 형사들의 방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혼탁이 극에 달했던 박정희 공화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분노하여 무효를 주장하며 전국 각지에서 데모했던 1967년의 그 고교생들은 이제 60대 중·후반이 됐다. 그리고 오늘 60대 노년층은 철저히 보수화돼 보수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됐다.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부정선거에 분노해 데모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때의 감수성과 의분이 지금은 그들 가슴에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안고 오늘날 국정교과서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는 중고생들을 바라보면 묘한 걱정으로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저 아이들도 훗날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수화되는 것은 아닐까?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감수성과 의분을 지닌 가슴을 줄곧 지니게 된다면 그것 때문에 고독과 고통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감수성과 의분 때문에 고독감과 고통을 겪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좀 더 우호적인 눈으로 시위 학생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훗날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오늘은 그저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서 뜨겁게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비겁'한 김무성, 청소년들조차 비웃는다
[주장] YS 서거와 중·고등학생들의 시위를 보며 갖게 되는 감회
[오마이뉴스] 지요하 | 15.11.29 21:15 | 최종 업데이트 15.11.29 21:15
▲ "나는 유신을 압니다" 지난 10월 31일 오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4차 청소년행동' 회원들과 자발적으로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이 손피켓과 국사교과서등을 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촉구 하고 있다. ⓒ 이희훈
최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강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사납게 밀어붙이고 있는 박 대통령 덕분에 온 국민이 역사에 대한 관심은 물론, '새로운 인식의 눈'까지 갖게 됐다는 논지였다. 무관심했던 역사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두고 기록의 가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획일적인 가치관과 국민을 통치와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관성 때문에 국정교과서 발상이 나왔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국민을 통제하고 훈육하려는 그 의도가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곧이곧대로 먹힐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인식의 눈'이 확대 재생산될 수도 있는 일이다. 숱한 무리를 무릅쓰고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관리들, 어용학자들이 그런 '역풍'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부활
▲ 김영삼과 박근혜 2012년 8월 22일 오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예방해 김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2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이 서거했다. 장례 기간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의 내용들이 크게 부각됐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명확하게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절을 모르는 젊은 층은 '역사 바로 세우기'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민주화의 핵심 공로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와 오늘의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어떻게 상충되고 비교되는지, 그리고 그 틈새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의 처신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도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임을 자처하면서 경쟁적으로 상주 노릇을 했다. 그들이 정치적 아버지의 일대 과업이었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뒤엎어버리는, 오늘의 국정교과서 강행을 위해 계속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투'를 벌일 것인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을 모르는 젊은 층, 특히 청소년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는 것 같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내용도 파악하게 되면서, 친일미화와 독재옹호의 혐의가 짙은 국정 교과서를 선두에서 주도하는 여권 실세 두 사람에게서 큰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고 토로한다. 모순, 배신, 이율배반, 자가당착, 비겁 등의 단어들을 두 사람에게 맹렬히 투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매우 영악하며 사리 분별력이 놀라울 정도다. 갖가지 정보들을 손쉽게 다각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첨단 IT와 SNS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중고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일인시위를 하거나 광장에서 집단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곤 한다. 그들이 들고 서 있는 팻말이나 펼침막의 글귀들을 음미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든 팻말이 상기시켜주는 나의 젊은 시절
▲ '부정선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67년 6월 9일 치 1면 기사 ⓒ동아일보
나는 혼탁한 선거 풍경을 연일 목도하면서 기가 막힌 심정으로 <암흑의 6·8 선거>라는 시를 짓고 소설도 한 편 지었다. 끓어오르는 의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거 후 전국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분을 전국의 수많은 고교생들이 공유하는 상황이었다. 연일 신문에는 고등학생들의 데모 상황이 보도됐다.
내가 사는 고장 충남 태안의 이웃 동네인 서산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산농림고와 서산여고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무효를 주장하는 데모한 것이다. 당시 나는 태안고등학교 2회 졸업생이었다. 그해 2월 졸업을 했지만, 축구선수였던 관계로 후배 선수들과 계속 접촉을 하고 있었다. 신설 학교라 전체 학생 수는 120명 정도였다.
나는 서산에서도 고교생들이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한 사실을 신문에서 보고, 모교 후배 학생들을 설득했다. 함께 데모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낌새를 눈치챈 정보과 형사들의 방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뜨겁게 손을 잡고, 안아주고 싶은 학생들
▲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이 17일 오후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그때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혼탁이 극에 달했던 박정희 공화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분노하여 무효를 주장하며 전국 각지에서 데모했던 1967년의 그 고교생들은 이제 60대 중·후반이 됐다. 그리고 오늘 60대 노년층은 철저히 보수화돼 보수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됐다.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부정선거에 분노해 데모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때의 감수성과 의분이 지금은 그들 가슴에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안고 오늘날 국정교과서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는 중고생들을 바라보면 묘한 걱정으로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저 아이들도 훗날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수화되는 것은 아닐까?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감수성과 의분을 지닌 가슴을 줄곧 지니게 된다면 그것 때문에 고독과 고통을 겪게 되는 건 아닐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감수성과 의분 때문에 고독감과 고통을 겪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좀 더 우호적인 눈으로 시위 학생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훗날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오늘은 그저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그래서 뜨겁게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비겁'한 김무성, 청소년들조차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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