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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한중FTA 연내 비준 안하면 정말 나라가 망할까

한중FTA 연내 비준 안하면 정말 나라가 망할까
박근혜의 ‘협박’을 뜯어보니...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30 09:10:02


진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한중FTA를 연내에 비준 안 하면 마치 나라가 망하는 줄 알 것 같은 분위기다. 박근혜가 청와대에 앉아 시도 때도 없이 “국회가 밥만 축내고 하는 일이 뭐냐? 한중FTA부터 당장 연내 비준하라”고 성질을 부린다.

박근혜가 하도 도끼눈을 뜨고 “한중FTA 연내 비준”을 강조하니, 정부 각 부처도 “국회가 경제 발전의 큰 기회를 방해하고 있다”고 난리를 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 감정이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는 자들’이니 정부의 이 공격은 어느 정도 성과를 얻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중FTA 비준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자질이나 수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비준 안건이 올라올 때마다 무조건 열심히 비준만 하는 국회는 ‘일을 열심히 하는 국회’가 아니라 ‘뇌가 없는 국회’다. 비준을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비준을 하지 않거나, 심사숙고가 필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비준을 늦추는 것이 바로 국회의 임무다. 보수 세력이 ‘천조국’으로 떠받드는 미국에서도 TPP에 대한 의회 비준을 놓고 수년 째 논의가 진행됐다. 심지어 마치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도된 TPP의 미국 의회 비준조차 미국 대선 이후인 2017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 “국회의원들이 하라는 비준은 안하고 왜 놀고먹느냐?”는 건 박근혜의 생각이고, 정작 우리가 확인해야 할 일은 한중FTA가 연내에 비준이 되면 정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검토하는 일이다. 정부 관료들이 박근혜의 신경질을 무서워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국민들까지 박근혜의 협박을 검토도 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줘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을미5적 박근혜 ⓒ뉴시스



정부 논리를 100% 받아들여도 1년에 110억원 이익일 뿐

어차피 자유무역에 대해서는 경제학적 세계관이 다른 두 세력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쟁이 있어왔다. 따라서 한중FTA 연내 비준을 두고 경제학적 논쟁을 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있고, 반대가 있으면 찬성이 있기 마련인 게 바로 자유무역에 대한 논쟁이다.

따라서 논쟁을 단순화하기 위해 한중FTA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정부 쪽 논리만을 기반으로 우리가 얻을 실익 여부를 판단해 보자. 이 기사에서 인용하는 원 자료는 모두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보도설명자료’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중 FTA가 발효되면 대 중국 수출관세가 낮아져 제조업 부문에서만 1년차에 약 13.5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의 수출 증가가 예상”된단다. 이게 바로 이달 초 최경환 부총리가 “한중FTA를 연내 비준 안하면 1조 5000억 원 손해”라고 말을 한 근거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올해 안에 발효되지 않으면 하루 40억원의 수출증대 효과가 사라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보면 “한중FTA가 발효되면 첫 해에 제조업 부문에서 약 13.4억 달러(약 1조 4900억 원) 수입이 증가”된다고 나와 있다. 한눈에 봐도 이상하지 않나? FTA가 체결되면 수출도 13.5억 달러 늘고 수입도 13.4억 달러 증가한다. 최대한 우리 쪽에 유리하게 추정했을 게 분명한 정부 의견으로도, 무역수지 흑자액이 고작 1,000만 달러(110억 원)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내에 비준을 안 하면 손실액이 무려 1조 5000억 원”이라고 말한다. 이런 걸 두고 바로 “뻥을 친다” 혹은 “약을 판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들도 이대로 자료를 내기가 영 이상했는지, 산업부는 여기에 말도 되지 않는 설명을 덧붙인다. 산업부는 수출에 대해서는 “발효가 미뤄지면 손해”라고 분명히 하면서도, 예상되는 수입 증가분에 대해서는 “수입이 증가하지만, 이는 단순 손실로 보기 어렵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친다. “수입증가 시 다양하고 저렴한 수입제품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소비자 후생이 증가”한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논리라면 FTA를 하면서 관세 유예화 품목은 뭐 하러 정하나?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면 모든 시장, 모든 품목의 문호를 당장 다 개방하는 게 옳다. FTA 협상을 하면서도 정부가 관세 유예화 품목을 사수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최경환 부총리가 직접 자랑한 일이다) 국내에도 보호해야 할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저가 제품이 들어오면 소비자들의 후생이 증가할지는 모르나, 내수 시장을 잠식당하는 국내기업들은 당장 죽음의 문턱으로 몰리게 된다.

이에 대한 산업부의 해명은 이렇다. “내수기업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중국산 경쟁 제품 수입 증가로 여건이 어려워질 수 있으나, 이에 대응하여 기업은 기술개발·품질개선 등 경쟁력 향상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전체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무역이 장난인가? 무역은 상대 국가가 있는 거래다. 우리 쪽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잣대를 들이댈 수가 없는 게 무역이라는 뜻이다. 만약 산업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중국 기업들도 한국과 마찬가지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FTA 초기 “중국 내수기업들은 한국의 뛰어난 수출 제품에 밀려 초기 어려움을 겪겠지만, 곧 기술개발·품질개선 등 경쟁력 향상 노력을 기울여 장기적으로는 중국 전체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국 한중FTA는 중국 기업들의 기술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결국 한국 경제의 부메랑이 된다. 이게 바로 산업부의 논리 아닌가?

▲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오른쪽)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 부장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식을 진행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농업을 포기하면, 국익이 늘어나긴 하나?

연내 비준을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의 또 다른 논거는 올해 비준이 되면 올해도 ‘1년 FTA 한 것으로 쳐줘서’ 내년이 되면 FTA 2년차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에 따르면 한중FTA가 연내 비준되면 관세율이 즉시 13.5%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2년차가 돼 12%로 인하돼 조기 비준의 효과가 크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급히 연내에 비준해서 2016년에 한중FTA 비준 2년차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도 정부쪽 인사들이 “연내에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우기기에 겁을 먹고 살펴봤더니 연내에 비준을 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로 그 일, 수출이 13.5억 달러가 늘고, 수입도 13.4억 달러가 증가하는 일이 벌어진다. 지금 비준한다고 한 달 남짓 남은 2015년 무역 효과가 별도로 있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고작 1년에 110억 원 무역수지 흑자 보자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분석에서 FTA가 실시될 경우 일방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한국 농업에 대한 분석이 쏙 빠졌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의 논리를 요약해 보면 “농업을 내주는 대신 제조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논리에 많은 국민들이 속아 넘어갔다. “그래, 내가 농민도 아닌데 농업 좀 망하면 어때? 수출이 늘어서 도시 사람인 우리의 삶만 나아지면 농민들이야 좀 손해를 봐도 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산업부의 자료를 보면 농업을 내주는 대신 제조업에서 얻는 무역수지 이익은 1년에 고작 110억 원이다. 일반 서민에게야 110억 원이 큰돈이지만 한국의 제1 교역국인 중국과의 거래에서 110억 원의 이익은 먼지만도 못한 금액이다.

더 코미디 같은 사실은 한중FTA를 하기 이전인 2014년 한국의 대 중국 수출액은 1,452억 달러, 수입액은 900억 달러였다는 사실이다. 수출에 비하면 수입은 고작 62% 수준이었다. 농업 쪽에서 일방적인 적자를 보는 와중에도 제조업 부문의 무역수지가 워낙 월등했던 탓에 이런 만성적 무역수지 흑자 구조를 한국이 이뤄낸 것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자. FTA가 실시되기 이전에도 중국과의 수출 대 수입의 비율이 5대 3이었다. 그런데 FTA를 실시하면 수출과 수입은 한국의 주요 전장인 제조업 분야에서만 거의 1대 1의 비중으로 늘어난다. 손실이 뻔 한 농업 분야 손실까지 합치면 되레 FTA가 비준될 경우 무역수지는 과거보다 악화될 판이다.

정부의 논리를 100% 따르더라도 한중FTA는 한국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도박은 국내 농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다. 국무총리실 소속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조차 “중국 농산물 수입이 매년 증가 추세에 있고, 최근 중국산 수입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이 향상돼 한중 FTA로 국내산 농산물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판이다. 한중 FTA에 따르면 전체 1,611개 농산물 품목 중 216개는 즉시, 209개는 5년 안에, 164개는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게 돼 있다.


수출 대기업이야 이익을 보겠지만... 농민도 국민이다

물론 한중FTA를 비준하면 중국 업체에 밀려 중국에서 만년 1위를 차지하다 올해 시장점유율 5위까지 미끄러진 삼성의 스마트폰이나, 중국 업체에 밀려 역시 올해 시장점유율 6위까지 추락한 현대-기아차는 관세 인하로 약간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 제품이 수입돼 국내 시장을 빼앗길 국내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벼랑에 몰릴 것이다.

그래서 “한중FTA를 연내 비준 안 하면 국익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박근혜의 협박은 완전히 거짓이다. 이 거짓이 거짓말 중에서도 유난이 악질적인 이유는, 일부 소수 수출 대기업만이 누릴 게 뻔 한 자그마한 이윤을 위해 한국 농업을 고스란히 위험에 내몰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한중FTA 연내 비준은 전혀 서두를 일이 아니다. 아니, 단순히 “서두를 일이 아니다”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신중히 이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단지 FTA를 몇 달 늦추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비준될 FTA라면 몇 달 늦춘다고, 혹은 몇 달 빨리 한다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 산업부 자료에도 FTA를 연내에 비준해 봐야 제조업 분야에서 고작 110억 원 흑자를 더 볼 뿐이다.

▲ 전국 양파·마늘·고추 재배 농민들이 농민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더 중요한 것은 FTA로 심각한 위기에 몰릴 것이 분명한 우리 농업과 중소 제조업체들을 살릴 충분한 준비가 우리에게 돼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가 해야 할 일은 국민과 국회에 대한 근거 없는 협박이 아니라 바로 이 일을 점검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박근혜가 들먹이는 ‘국익’, 즉 국민의 이익 중 국민은 도대체 누구인가? 2012년 대선에서 농민의 60% 이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박근혜가 농업을 일부 재벌을 위한 ‘희생 카드’로 너무나 뻔뻔하게 쓰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출처  박근혜의 ‘협박’처럼 한중FTA 연내 비준 안하면 정말 나라가 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