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산재 덮으려 증거인멸까지

산재 덮으려 증거인멸까지
죽음으로 내몰린 화물노동자들
[민중의소리] 오민애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1-07 20:10:59


▲ 박씨가 운전하던 화물차와 유사한 화물트레일러의 모습. 사진 속 원형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는 끈이 결박장치이다. 박씨는 결박장치를 해체하던 중 사진 속 철제구조물과 유사한 원형 철제 빔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민중의소리


지난해 4월말 새벽, 전남 목포의 한 부두에서 화물차 기사노동자가 철제구조물에 머리를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화물을 내리기 위해 결박장치를 해체하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현장관리자는 노동자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처럼 다른 노동자들을 시켜 증거를 인멸했다. 화물운송회사와 항운노조가 관리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현장관리자 개인이 처벌을 받았을 뿐 노동자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지난달 21일 해상화물운송 회사 현장관리자 서모씨에게 화물차 기사 박모씨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징역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씨는 위험예방과 사고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박씨가 사망에 이르게 했고, 이후 박씨가 혼자서 결박장치를 풀다가 사망한 것처럼 증거를 인멸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현장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있었지만, 현장을 촬영한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박씨의 사망은 개인의 ‘실수’로 묻힐 뻔했다.


사고 발생 30분만에 현장 정리... 자기 잘못으로 죽은 것처럼 꾸며

박씨가 사망한 현장은 전남 목포시 산정동에 위치한 삼학부두로, 화물차에 싣고 온 화물을 배에 옮기기 위해 배를 부두에 대고 화물차를 배 바로 옆에 세워야한다. 화물을 묶어놓은 결박장치를 풀면 배에 있는 크레인이 화물들을 들어 올려 배로 옮긴다. 즉 화물을 차에서 배로 옮기기 위해서는 화물차와 배 사이 좁은 공간에서 화물을 묶어놓은 결박장치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4월 30일 새벽 2시 40분경 철제구조물을 실은 화물차를 부두에 차를 대고 결박장치를 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물차를 후진시키라는 서씨의 말에 따라 차를 이동시키고 다시 결박장치를 풀던 자리로 돌아왔다. 당시 화물을 옮기기 위한 크레인용 벨트가 철제구조물들 위에 놓여있었고, 화물운송회사 직원과 항운노조원들이 함께 선적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결박장치 해체작업을 마무리하려던 순간 2톤에 달하는 원형 철제구조물이 박씨가 서있던 쪽으로 떨어졌고, 미처 피할 공간이 없던 박씨는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고가 발생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서씨는 현장에 있던 항운노조원들에게 크레인용 벨트를 빼내라고 시켰다. 선적 작업하던 흔적을 없애고 박씨가 혼자 결박장치를 해체하다가 사망한 것처럼 현장을 꾸미기 위해서였다. 당시 현장이 촬영된 블랙박스가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될 뻔했다.

박씨 사망과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현장관리자 서씨 혼자였다. 항운노조 관계자와 회사 대표이사 및 안전관리 책임자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운송회사가 임대하고 항운노조원들이 함께 화물을 관리하는 부두에서, 순식간에 사고 현장에 대한 조작이 있었지만, 현장관리자 개인의 잘못으로 일단락되고 만 것이다.


“황망한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는 화물노동자의 현실

▲ 지난해 7월화물연대가 '지입제' 등 화물민생법안 처리를 요구하며 경고파업에 들어갔다. (자료사진) ⓒ구자환 기자


박씨의 죽음은 박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비용으로 화물차를 사고 회사 명의로 운영하는 ‘지입차주’ 방식은 화물노동자를 ‘사업주’로 둔갑시켜 근로기준법 적용도, 산업재해 인정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화물운송을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이들은 있지만, 정작 화물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사망하게 되면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없는 것이다.

문진 화물연대 광주지부장은 “사망한 박씨의 경우 알선을 통해 운반이 필요한 물건을 받아 원하는 곳까지 옮겨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서 “화물노동자들은 ‘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재 적용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씨와 유사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도,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했던 노동자도 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위해서는 싸워야만하는 상황이다.

화물차로 물건을 옮겨 부두에 내리는 하역작업은 부두에서 운송사업을 하는 회사 관리자와 항운노조원들이 진행한다. 물건을 안전하게 배에 옮기는 과정에 대한 책임은 운송회사와 항운노조에 있는 것이다.

문 지부장은 “당시 차량에 있던 블랙박스에서 ‘이거 나중에 밝혀지면 큰일난다’는 육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운송회사와 항운노조가 하역 도중에 사고가 난걸 숨기기 위해 함께 벌인 일인데,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놓고 결국 현장관리자 한명이 뒤집어쓰고 처벌받는다니 정말 파렴치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검찰의 항소로 서씨에 대한 재판은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화물운송업체와 항운노조 누구도 박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서씨 개인에 대한 처벌이 박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


출처  산재 덮으려 증거인멸까지... 죽음으로 내몰린 화물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