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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위안부 합의, 삼중살 당한 한국외교

위안부 합의, 삼중살 당한 한국외교
[창비주간논평] 김준형(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 2016.1.6


▲ 김준형
야구에서 병살은 한 게임에도 여러 번 나올 만큼 흔하지만 한꺼번에 아웃카운트 세 개를 당해 공수교대가 이뤄지는 삼중살(三重殺)은 한 시즌에 한 차례 나올까 말까 하다. 지난 12월 28일 한·일 외무부 장관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합의는 한국외교가 삼중살을 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합의안의 핵심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총리가 반성의 마음을 표현하며, 한국 정부가 지원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이 10억 엔의 기금을 낸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 꺼풀만 들여다보면 최악의 협상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총체적 실패의 심각성

첫 번째 살(殺)은 국가의 실패다.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건만 그러지 못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포함해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것이지만, 외교영역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피해자 할머니의 말처럼 국가가 나서서 변호하고 대변한 대상은 우리 국민이 아니라 가해자 일본 정부였다. 국민을 두 번 죽인 것이다. 정부가 정말 국민을 위해 협상을 했다면 사전소통 없이 합의 후 일방적 통고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사과의 주체나 대상에 대한 표현도 모호한 채 대독을 했고, 범죄행위의 조직성과 불법성도 외면했으며, 합의문 어디에도 일본의 ‘공식사과’라는 말은 없었다. 피해를 입은 국민보다 가해자를 돕는 이런 국가가 진짜 모습이라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원래부터 없었다.

두 번째 살은 한일외교의 참패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신뢰 또는 원칙 외교는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다. 북한에처럼 일본에도 신뢰를 보여야 외교를 시작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순간부터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갔고, 스스로에게는 족쇄로 작동했다. 한편으로는 실용적 차원의 관계를 이어가면서,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영토 문제 등은 필요할 때마다 일본을 길들이는 회초리로 사용하는 국익 우선의 외교를 폈어야 했는데, 오히려 카드를 통째로 폐기해버렸다. 이런 결과를 받기 위해 그간 그토록 강경한 분노를 표하며 일본을 성토했는가? 결국, 언성만 높이고 감정만 배설했을 뿐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일본에 밀렸다. 반면에 아베의 일본은 원하는 바를 거의 이루었다. 국가가 자행한 조직적 범죄라는 법적 책임도 벗어버리고, 외교를 통해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회담이 끝난 후 키시다 외무상은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라고 했다. 세계 여론까지 대체로 호의적임을 인지한 일본은 이제 표정관리조차 없이 한국을 향해 더는 징징거리지 말라는 식의 오만함까지 보인다. 인류 역사상 가해국 정부가 사과하면서 향후 문제 제기 및 비판까지 못 하게 재갈을 물린 예는 없었다. 50년 만에 또 한 사람의 박 대통령이 굴욕적 대일외교를 반복했다. 역사의 반복이 전율을 불러온다.

세 번째 살은 격동하는 동북아 국제정치에서의 전략적 실패다. 50년 전 한일협약의 배후도 그러했듯이 이번 합의도 미국의 압력이 큰 역할을 했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의 최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미국은 원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근간으로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의 동시구축을 원했지만, 한일관계 악화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봉착하자 계획을 조정했다. 즉 미·일 동맹을 먼저 강화한 다음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는 순차 전략으로 바꾼 것인데, 그 결과 관계악화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의 변화를 압박했다. 사실 미국이 마련했던 2014년 3월 헤이그 3자 정상회담에서 압박은 시작되었고, 한국의 빗장은 열려버렸다. 2015년 4월 아베와 오바마의 안보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한 미·일 동맹의 본격적 강화는 이런 일련의 과정의 클라이맥스와 같은 것이었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 지는 이번 합의가 오바마 정부의 지속적이고 때로는 직설적인 압력의 결과라고 진단하면서, 승리자는 일본과 함께 미국이라고 했다. 정부의 자화자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지원사격, 우파언론들의 지지는 전략적 사고 부재거나 권력욕이 낳은 의도적 은폐일 것이다.

야구는 삼중살을 당해도 게임에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음 게임을 기약할 수도 있지만, 국익을 향한 치열한 외교전쟁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된다. 장애물을 제거한 미·일의 전략적 압박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지난해 말 집단자위권 행사와 남중국해 문제에서 양국이 한국에 외교 결례에 가까운 강한 주문을 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 북·중·러는 대응진영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근근이 유지해온 한국외교의 외연적 균형노선마저 무너지고, 우리는 배타적 진영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더욱이 미 대선 과정에서 강경노선은 득표를 위해 날개를 달 수 있다.


새해 최우선의 외교적 과제, 그러나…

우리의 지렛대는 결국 대북 영향력 여부에 달려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진영대결 구조를 막거나, 적어도 약화해야 운신의 폭이 생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압박에 순응하기보다는 미국의 정책변화를 가능한 유도 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의 충돌까지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일본이 변수가 되어 미·중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즉, 지금은 일본이 미국의 충실한 추종자일지 모르지만, 미래에도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우리가 달성해야만 하는 최우선 외교과제는 동북아의 신냉전 기조를 약화하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한국의 적극적 중재를 통해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위안부 합의로 미·일의 압박에 한국외교가 이미 두 손을 든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난 3년, 세간의 양호한 평가와 달리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국익을 챙길 능력이 없고, 역사의식의 진실성이나 비전도 발견하기 어렵다.


출처  위안부 합의, 삼중살 당한 한국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