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박병원 경총 회장님, 미치셨습니까?

박병원 경총 회장님, 미치셨습니까?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2-06 10:48:57

한국에는 자칭 경영자들을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라는 단체가 있다. 그 단체의 수장인 박병원 회장이 2일 “노동개혁에는 노조의 동의가 필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회장의 이 발언을 듣고 생각이 난 일화가 있다. 1998년 기자가 종합지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정리해고를 두고 현대자동차에서 격렬한 파업이 벌어졌다. 기자도 특별취재팀의 막내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숙소 앞에서 한 시간 넘게 무작정 기다린 결과 현대차 정몽규 회장을 만나 30여 분의 짧은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 정 회장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더는 노조와의 대화는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정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저런 인간들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어요?”

경총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제 대놓고 노조를 대화 상대에서 배제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뿌리 깊은 노조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저따위 인간들하고 내가 왜 협의를 해야 하는가?”라는 증오감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증오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속으로 삼켜야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박 회장은 저런 말을 마치 들으라는 듯이 대놓고 공식 석상에서 내뱉는다. 당신들, 이제 진짜 제대로 미친 건가?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런데 노동자에게 부여된 이 권리는 사실 마냥 노동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 서서 근로조건의 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현대 자본주의는 가진 자의 폭력에 의해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은, 경총 회장은 그 폭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산업혁명 시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할지 몰라도, 그런 종류의 폭력은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을 마비시킨다. 사회주의 혁명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지위와 권익의 향상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 경영자를 대표하는 경총 회장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노동조합? 걔들하고 왜 대화를 해? 걔들 동의가 왜 필요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두들겨 패고, 마음껏 조리돌림 할 수 있는 그 시대가 자본주의의 전성기였다고 믿는다. 2016년 대한민국은 산업혁명 시대로 퇴행하는 중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9월 7일, 미국의 노동절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십니까?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십니까?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오바마가 이 연설을 하는 시각, 행사장 밖에서는 매사추세츠 대중교통노조(MBTA)와 보스턴 경찰노조가 각자의 이유로 오바마 행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조가 대통령에 항의하는 와중에도 오바마는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당당히 말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정부와 노조의 의견이 100% 일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가 세력을 향해 종종 항의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국민으로 섬기는 정부는 비록 노조가 거세게 자신들에게 항의해도 그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동의하지는 않지만, 존중은 한다”는 기본적인 톨레랑스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건 설명이 불필요한 상식이다. 한국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상식적인 일까지 설명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나?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악법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총파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지, 왜 파업을 하느냐?”는 싸늘한 시선이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시선을 거둬야 할 때다. 노조를 대화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는 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한단 말인가? 민주노총 노동자들, 당당하게 싸워주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노동악법 반대 투쟁에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출처  [기자수첩] 박병원 경총 회장님, 미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