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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재계가 벌인 사기극의 진실

재계가 벌인 사기극의 진실
OECD “한국 노동자들, 많이 일하고 돈은 못 번다”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2-24 10:02:18


한 편의 황당한 사기극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의 주범은 한국 재계를 대표한다는 대한상공회의소. 15개월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벌였던 사기극의 진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드디어(!) 밝혀졌다.

우선 대한상의가 벌인 사기극의 전모부터 살펴보자. 2014년 11월 17일 대한상의는 “한국, 경쟁국보다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낮고, 임금은 높으며, 근로시간은 짧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한마디로 대한상의는 통계 수치를 들이대며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은 덜 하면서 월급만 잔뜩 챙긴다”고 질타한 것이다.

그런데 진실의 수치가 23일 밝혀졌다. OECD가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한 시간 일하고 버는 실질 소득은 34개 국가 가운데 무려 22위에 머물렀다. 이 수치가 2013년 기준으로 14.6달러로, 8위인 프랑스(28달러)의 절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1위인 룩셈부르크(35.7달러)에 비하면 40%에 머무르는 처참한 수치였다.

노동시간은 어떨까?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의 1인 평균 노동시간은 2014년 기준으로 2,124시간으로 34개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길었다. 일 많이 하기로는 한국이 당당 OECD 2위라는 이야기다. 한국인은 노동시간이 가장 적은 독일(1,302시간) 노동자보다 1년에 무려 4개월을 더 일했다.

▲ 패션노조와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등이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열정페이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청년노동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한국은 또 소득 불평등 항목에서 이스라엘, 미국, 터키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시간당 소득과 소득의 불평등을 포괄한 ‘소득의 질’ 분야에서는 33개국 가운데 23위로 뒤처졌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OECD 국가들 중 거의 전 분야에서 하위권이거나 최하위권이었다는 이야기다.


대한상의의 사기극은 어떻게 시작됐나?

15개월 전 대한상의의 사기극은 사실 OECD가 나서서 굳이 밝혀주지 않았어도 사기극의 냄새가 물씬 풍겼던 발표였다.

당시 대한상의는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경쟁국과 비교한다면서 비교 대상으로 홍콩, 일본, 싱가포르로 삼았다.

이때 대한상의는 2011년 한국 노동자들의 연간 실질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 홍콩(2,344시간)이나 싱가포르(2,287시간)보다 ‘현저히’ 짧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실질 월 평균 임금은 “한국 노동자가 2,598달러로 홍콩(1,546달러), 싱가포르(1,757달러)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한국 노동자들이 일은 더럽게 안 하면서 돈만 엄청나게 챙겨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 이상한 점은 실질 노동시간은 2011년의 통계를 쓰면서 실질 월 평균 임금은 2005년의 수치를 썼다는 사실이다. 2011년과 2005년은 상식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연도다. 게다가 2005년의 것을 인용한 평균 임금 수치는 월드샐러리(World Salaries)라는 사이트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이 사이트는 대한상의가 소개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인용된 적이 없는, 그러니까 공신력이 거의 없는 단체였다. 심지어 2016년 2월 현재까지도 이 사이트에 나와 있는 세계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여전히 2005년의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사이트에 제시된 평균 임금 수치의 제목이 버젓이 ‘제조업 분야 평균 임금(Manufacturing Sector Average Salary)’이었다는 사실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압도적인 나라다. 홍콩은 서비스업의 비중이 90%를 넘고, 싱가포르는 70%에 육박하는 나라다. 서비스 산업이 중심인 이들 국가에서 제조업 분야의 임금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나라들과 임금을 비교하면서, 그것도 제조업 분야 임금을 비교하면서 마치 이를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 비교인 것처럼 사기를 쳤던 셈이다.


교각살우의 주범, 경총회장 박병원을 고발한다

제 입맛에 맞는 수치를 이리저리 조작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삼는 것은 재계의 특기다.

2014년 대한상의의 발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대한상의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노동자들이 일도 안 하고 월급만 많이 받는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무작정 시행하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동시간 단축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쇠뿔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의 교각살우를 실제로 자행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재계를 대표하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박 회장은 15일 경총 신년기자간담회에서 폭언에 가까운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장시간 근로는 사용자가 강요한 게 아니라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다.”

“근로자들이 50% 더 주는 임금을 받으려고 연장 근로를 선택하고 있다. 연차휴가도 다 쓰지 않고 수당으로 받길 원한다.”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 할 게 아니라 아들, 조카의 취업 기회를 뺏으면서 누리는 것을 50%만 양보하려는 고민을 해 줬으면 좋겠다.”

▲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들이 지난해 9월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뒤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합의문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김철수 기자

박 회장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야간이나 휴일 근로는 모두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기 위”한 것이며, “사용자가 강요한 게 아니라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다. 따라서 박 회장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바로 단축하자”고 주장한다.

15개월 전만 해도 재계는 “한국 노동자들은 일도 안 하고 월급만 많다”고 했는데, 이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을 많이 해서 자본가를 뜯어내려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간의 무작정 단축”을 주장하는 교각살우의 주범은 바로 박병원 회장이었다.

15개월 전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을 막기 위해 사기극을 저질렀던 재계의 태도는 이제 노동자들에게 주는 야근수당을 아끼겠다며 그 사기극을 뒤집는 또 다른 사기극을 진행 중이다.

진실을 말해야 할 통계 수치는 이미 재계의 손에서 노동자들은 탄압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사기를 치려거든 좀 제대로 치던가, 제대로 사기 칠 능력이 없으면 일관된 입장으로라도 사기를 칠 일이다.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재계의 입맛대로 많이 일했다가 적게 일했다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그건 ‘돈을 아끼는 일’일지 몰라도, 노동자들에게는 가족의 삶과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출처  재계가 벌인 사기극의 진실, OECD “한국 노동자들, 많이 일하고 돈은 못 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