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지하경제 막기 위해 고액권 지폐 없애는 EU

지하경제 막기 위해 고액권 지폐 없애는 EU
[민중의소리] 사설 | 최종업데이트 2016-05-06 08:04:05


▲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 중앙은행 건물로 유로타워라고도 불린다. ⓒwikipedia.org


유럽중앙은행(ECB)이 2018년 말을 한도로 500유로 지폐의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ECB의 결정은 고액권 지폐를 제한하자는 세계적 흐름 위에서 나온 첫번째 결정이다. ECB가 500유로 지폐를 없애기로 한 것은 이 지폐가 테러단체의 자금조달이나 돈 세탁에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각 나라의 고액권이 지급 결제의 수단 대신 세금을 탈루하거나 범죄조직의 자금운용에 활용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의 주요 나라들이 초 저금리와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액권 지폐는 효율적인 부의 저장 수단으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고액권이 대중의 경제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유럽의 경우 유난히 현금 사용이 많은 독일을 제외하면 고액권이 실생활에서 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5만원권 지폐가 부자들의 금고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은 여러차례 나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한국은행의 화폐 발행잔액은 90조원에 달하는 데, 이 중 5만원권이 67조원이 넘는다.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되는 1만원권의 발행잔액이 17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5만원권이 어디에 활용되고 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서 부패 혐의를 받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 사건에서도 음료수 상자에 수천만원의 5만원권을 담아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고액권 폐지보다 동전 폐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한국은행은 2020년을 목표로 동전없는 사회의 구상을 그려나가고 있다. 동전의 원가가 액면 가치보다도 높고, 소액 전자결제가 활성화되어 실생활에서의 쓰임이 줄었다는 것이다. 한은의 입장은 고려할만한 제안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액결제를 전자화폐로 흡수할 경우 개인 경제 생활의 모든 기록이 금융기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 동전이 없어지면서 상품의 기본가격이 천원 단위로 정해지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장 비용을 걱정해 동전을 없애는 것보다 고액권을 없애는 것이 어느모로보나 더 우선순위가 높다. 행정 편의를 앞세워 대중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세계적 흐름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액권 폐지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 시절 내세웠던 ‘지하경제 양성화’가 사실상 헛공약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라도 그렇다.


출처  [사설] 지하경제 막기 위해 고액권 지폐 없애는 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