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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영화 ‘터널’을 봐야 하는 이유

박근혜가 영화 ‘터널’을 봐야 하는 이유
[민중의소리] 고희철 편집부장 | 발행 : 2016-08-26 16:45:59 | 수정 : 2016-08-26 18:47:07



지난 주말 요즘치고는 좀 작은 극장에서 영화 ‘터널’을 봤다. 시작할 때 분위기는 산만했다. 옆자리의 젊은 커플은 연신 무언가를 먹으며 대화를 했다. 시작 후에 들어온 50대로 보이는 20여 명의 무리는 핸드폰 불빛으로 자리를 찾는다고 부산했다. 결국, 터널이 무너지고서야 관람 분위기가 좀 잡혔다.

영화 초입에 터널이 무너지는 재난이 일어났지만, 하정우와 오달수의 연기로 몇 차례 웃음이 터졌다. 중반으로 접어들자 극장은 조용해졌고 슬픔과 분노에 젖어들었다. 상업적 고려인지, 그래도 희망을 남기고 싶었는지 영화의 마무리는 현실만큼 잔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영화가 위로가 되지 못했는데, 그건 물론 영화 탓은 아니다.

감독이나 제작사, 출연 배우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을지는 모른다. 여러 사건을 중첩하거나 재난 일반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아 그때 저랬었지, 맞아 저런 일도 있었지’. 영화를 보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세월호는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인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도 비수가 됐다.

2년 4개월 전 참혹한 사건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밥을 굶고, 야당 당사를 점거한다. 하긴 세월호 참사뿐인가.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 전국이 벌집이 된 사드 배치, 비리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음주운전 사고 전과자 경찰청장, 93평 아파트를 1억9천만 원에 전세 산다는 농림부 장관…. 이쯤 되니 진경준과 홍만표가 누구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대한민국은 무너진 터널에 갇혔다. 해결되는 사건은 없고 바위덩이 같은 갈등만 계속 쌓인다.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간다. 내부에서 탈출할 수도 없고 외부에서 올 구조대도 없다.

박근혜가 25일 리우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불러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만들어낸 긍정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치하했다. 먼 타국에서 고생한 선수들에게 건네는 의례적 덕담이려니 하지만, 정말 박근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

그래서 터널을 보시라고 권한다. 누런 민방위복을 입고 나와 (욕을 동반한) 웃음을 주는 배우 김해숙을 보며 관객들은 장관이나 총리를 연상하지 않는다. 박근혜가 직접 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가 누구일지 맞춰보길 바란다. 무너진 터널보다 더 답답한 현실이 누구의 책임인지, 리우올림픽에서 만들어졌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왜 우리 사회에 조금도 퍼지지 못하는지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데스크칼럼]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터널’을 봐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