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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의 북미 시장 진출은 쾌거가 아니라 미친 짓이다

한국전력의 북미 시장 진출은 쾌거가 아니라 미친 짓이다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6-08-29 18:14:55 | 수정 : 2016-08-29 18:14:55


▲ 한전 나주 사옥 현관 조감도.


한국전력이 28일 미국 태양광 발전소 ‘알리모사 솔라 파워플랜트’를 인수해 북미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한전이 해외사업을 시작한 지 21년 만에 세계 최대 전력시장인 미국에 첫발을 내딛는 쾌거를 이뤄냈다”고 표현을 한다. 이게 쾌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한전의 북미 시장 진출은 쾌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한전이 이번에 미국에서 사들인 ‘알리모사 솔라 파워플랜트’는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30만MW급 태양광 발전소다. 30만MW급이면 1만 가구 정도에 전력을 공급하는 매우 작은 발전소라고 보면 된다. 한전의 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한전은 북미지역에서 2042년까지 2,6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단다. 발전소를 사들이는데 들인 돈은 3,400만 달러(약 380억 원)였다. 이 가운데 한전이 절반을 냈고, 나머지 절반은 국내 연기금이 중심이 된 공동투자펀드가 사들였다.


일단 너무 비싼 매입 가격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지만, 일단 인수 가격만 놓고 보면 직관적으로도 한전은 이 작은 태양광 발전소를 너무 비싸게 샀다. “2042년까지 매출 2,600억 원을 기대한다”고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는 앞으로 26년 동안 기대되는 매출이 고작 2,600억 원이라는 이야기다. 매년 평균 잡아 100억 원 정도의 매출만 기대할 수 있다.

사업의 종류와 미래 전망성, 경영권 프리미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업가치는 보통 매년 순이익의 10~15배 정도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회사의 순이익률이 10~15% 정도라면 기업가치는 연 매출과 비슷한 선에서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에 사들인 발전소의 기대 연 매출은 고작 100억 원이다. 한전은 이런 발전소를 400억 원 가까운 거금을 들여서 샀다.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약 230조 원)도 1년 매출(약 200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심지어 한전의 기업가치(37조 원)는 연 매출(59조 원)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한전은 연 매출 100억 원짜리 발전소를 380억 원에 샀다.

“미래 발전 가능성이 있어서”라는 핑계도 말이 안 된다. 한전이 산정한 이 발전소의 연 매출 100억 원은 무려 앞으로 26년 동안의 매출을 평균한 것이다. 26년 내내 저 정도 수준인데 미래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한전이 “우리는 100년 뒤를 내다봤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는데, M&A 시장에서 100년 뒤 매출을 기대하고 가격을 비싸게 쳐주는 경우는 어느 곳에도 없다. 미래가치를 산정할 때 ‘미래’라는 것은 아무리 길게 봐도 3~5년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한전의 이번 M&A는 ‘쾌거’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비쌌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공기업 한전과 미국 헤지펀드와의 협조

하지만 인수가격보다 더 본질적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미 한전은 지난해에만 해외에서 4조 9,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6년 동안 연 매출 100억 원짜리 작은 발전소를 사들인 것은 한전의 입장에서 전혀 수익성을 높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전이 왜 이 작은 발전소를 인수했을까?

한전의 속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태양광 발전소를 판매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칼라일그룹이 태양광 발전소의 원 주인이었다. 한전은 이 태양광 발전소를 인수하면서 칼라일 측과 지분인수 계약뿐만 아니라 향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고 밝혔다.

고작 380억짜리 초미니 발전소를 사고팔면서 한전의 조환익 사장은 뉴욕까지 날아갔고, 댄 다니엘로 칼라일그룹 회장이 직접 조 사장을 맞아 지분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두 거물급 인사는 계약 및 MOU 체결 후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기념 촬영까지 하고 왔다.

▲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양지웅 기자


칼라일 그룹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악명이 드높은 헤지펀드다. 칼라일은 2000년 한미은행을 4,000억 원에 인수한 뒤 4년 만에 이를 씨티그룹에 재매각해 6,600억 원의 차익을 실현한 전력이 있다. 칼라일은 이처럼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제품 가격 인상→기업가치 제고>의 과정을 거쳐 비싼 가격에 회사를 팔아 수익을 챙기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최근 칼라일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 군수산업과 전기, 수도 등 공공영역이다. 칼라일 같은 그룹이 공공영역에 왜 눈독을 들이겠는가? 설마 이들이 국가의 공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일 가능성은 0%다. 그들은 공적 영역을 헤집으며 국민편의를 낮추고, 오로지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영역에 침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헤지펀드들이 전력이나 수도 시장에 진출하면 전기요금, 수도요금은 몇 배로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전은 이런 칼라일과 MOU를 맺고 북미지역에서 적극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 이게 북미지역에서의 협력만으로 그칠까?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두 기업의 협력은 한전이 칼라일로부터 공적영역에서 이익을 쏙 빼먹는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칼라일 역시 다가올 한전의 민영화에 대비해 한전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한전 같은 공기업이 칼라일 같은 대표적 헤지펀드와 손을 잡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백 보를 양보해 “오로지 북미시장에서만 협력할 것”이라는 한전의 말을 믿는다 쳐도 공기업 한전이 북미지역 공공영역을 헤지펀드와 짝짜꿍해서 훼손하는 것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한전은 수익만을 목표로 하는 헤지펀드가 아니다. 게다가 만약 한전이 이번 칼라일과의 협조로 민영화의 노하우를 얻으려 하는 것이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전은 지금 헤지펀드하고 연합해서 민영화 연습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기업으로서 엉망진창이 된 한국의 공적영역을 복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올여름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국민 숫자가 17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26일까지 온열 질환 환자 숫자는 무려 2,000명을 넘어섰다. 이것도 사상 최대다. 겨울철 혹한에 취약한 에너지 빈곤층 숫자는 200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전이 지금 할 일은 바로 이 문제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이미 한전은 6월 “일반 기업에도 전기를 판매할 권한을 준다”면서 민영화의 초석을 다진 바 있다. 공기업 한전과 헤지펀드의 때아닌 밀월이 한전의 이런 민영화 음모와 아무 관련이 없기만을 바란다. 너무 앞서나간 걱정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는 “철도 민영화는 없다”고 장담했으면서 태연히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고, “의료민영화는 없다”면서 원격진료와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는 등 공공영역을 허무는 데 탁월한 장기를 가진 이 정부를 너무 잘 알기에 하는 걱정이다.


출처  한국전력의 북미 시장 진출은 쾌거가 아니라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