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소송에 무너지는 노동자들
"손배소, 인간성 말살 그 자체"
소송비용 못 견뎌 법정공방도 포기
동료 배신 강요하는 노동탄압 손배소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 2017-01-18 06:00
경북 구미의 반도체전문업체인 KEC의 민주노총 노동조합원들은 지난 10월부터 넉 달째 임금 일부를 압류당한 채 150여만 원으로 버티고 있다.
지회는 2010년 회사와 임금단체교섭을 벌이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자 같은 해 6월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파업 중인 조합원에 대해 직장폐쇄로 맞섰고,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농성으로 대응했다.
1년여에 걸친 노사갈등 뒤에도 사용자 측은 2012년부터 구조조정·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했고, 잇따른 파업 끝에 사용자 측은 조합원 88명에게 개별 노조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0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KEC 지회의 손배소 싸움은 노동계에서 '손배소 노동탄압의 정점'이라 불리는 지난한 과정으로 점철됐다. 그나마 손배금액은 사용자 측이 손해배상 청구 이유나 금액산정 근거를 대지 못해 156억 원, 70억 원으로 차례차례 감액됐지만, 여전히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온갖 법적 절차에 1심 재판이 열리기까지만 6년, 결국 지회는 재판부의 조정 끝에 3년 안에 30억 원을 갚기로 합의했다.
노조원들 가운데 월급이 300만 원 미만이면 최저생활비 15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300만 원 이상이면 50%씩 임금을 떼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KEC 김성훈 지회장은 "더 싸워야 한다는 의견도 노조 안팎에 많았지만, 뻔히 더 많은 돈을 물어내야 할 길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며 "수십억 원의 손배소가 눈앞에 닥치는데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다"며 "조합원들의 밝은 표정을 봐도 '월급을 제대로 받으면 더 밝은 표정을 지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 아프다"고 호소했다.
또 "지금도 인사고과나 성과급 등에서 부당노동행위를 계속 당하고 있다"며 "사측이 쟁의권을 포기하라고 압박했지만 지켜낸 덕분에 계속 저항하고 있고, 조합원들과 '3년만 버티자'고 격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장기간 거액의 손배소 위협을 버티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노동권 탄압이자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우선 사용자 측이 수십억, 수백억 규모의 손배소를 제기하면 인지대 등 소송비용만도 '억'대의 비용이 들어간다.
또 1심 재판이 열리기까지 6년이나 걸린 KEC 사례처럼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가압류 등의 조치로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도 어렵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도 "회사에서 손배소를 제기해서 패소할 상황이 닥치면 노동자들은 법정공방을 더 벌이고 싶어도 KEC처럼 소송비용조차 견딜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침해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측은 노동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사측의 요구를 들어주면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회유한다.
만약 1명의 노동자가 손배소를 견디다 못해 사측의 회유를 받아들여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조를 탈퇴해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되면 그 몫은 고스란히 남은 노동자들에게 연대책임으로 돌아간다.
김 지회장도 "지난 10월 2명이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분들이 갚지 않는 돈을 우리가 갚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회사를, 노조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더 나올까봐 염려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손배소는 권리, 인간성을 포기하면 손배에서 벗어날 수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나와 온 가족이 힘들어지는 싸움"이라며 "하지만 인간이고, 시민과 국민으로 정당한 노동권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노동자가 동료를 배신하도록 강요하는 인간성 말살의 과정"이라며 "살기 위해 나의 짐을 동료에게 물리고 나가는 셈이기 때문에 남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출처 수백억 소송에 무너지는 노동자들… "손배소, 인간성 말살 그 자체"
"손배소, 인간성 말살 그 자체"
소송비용 못 견뎌 법정공방도 포기
동료 배신 강요하는 노동탄압 손배소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 2017-01-18 06:00
손해배상청구 1,600억 원, 가압류 175억 원.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행사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기업과 국가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이다. CBS노컷뉴스는 손배가압류의 탈을 쓴 '新노동탄압'의 피해를 막기 위해 3차례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30억 손해배상 부담에도 사측과 쟁의를 계속하고 있는 KEC 노동자들 사진=KEC 지회
경북 구미의 반도체전문업체인 KEC의 민주노총 노동조합원들은 지난 10월부터 넉 달째 임금 일부를 압류당한 채 150여만 원으로 버티고 있다.
지회는 2010년 회사와 임금단체교섭을 벌이다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자 같은 해 6월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파업 중인 조합원에 대해 직장폐쇄로 맞섰고,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농성으로 대응했다.
1년여에 걸친 노사갈등 뒤에도 사용자 측은 2012년부터 구조조정·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했고, 잇따른 파업 끝에 사용자 측은 조합원 88명에게 개별 노조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0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KEC 지회의 손배소 싸움은 노동계에서 '손배소 노동탄압의 정점'이라 불리는 지난한 과정으로 점철됐다. 그나마 손배금액은 사용자 측이 손해배상 청구 이유나 금액산정 근거를 대지 못해 156억 원, 70억 원으로 차례차례 감액됐지만, 여전히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온갖 법적 절차에 1심 재판이 열리기까지만 6년, 결국 지회는 재판부의 조정 끝에 3년 안에 30억 원을 갚기로 합의했다.
노조원들 가운데 월급이 300만 원 미만이면 최저생활비 15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300만 원 이상이면 50%씩 임금을 떼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KEC 김성훈 지회장은 "더 싸워야 한다는 의견도 노조 안팎에 많았지만, 뻔히 더 많은 돈을 물어내야 할 길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며 "수십억 원의 손배소가 눈앞에 닥치는데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다"며 "조합원들의 밝은 표정을 봐도 '월급을 제대로 받으면 더 밝은 표정을 지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 아프다"고 호소했다.
또 "지금도 인사고과나 성과급 등에서 부당노동행위를 계속 당하고 있다"며 "사측이 쟁의권을 포기하라고 압박했지만 지켜낸 덕분에 계속 저항하고 있고, 조합원들과 '3년만 버티자'고 격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장기간 거액의 손배소 위협을 버티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노동권 탄압이자 인간성을 말살하는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우선 사용자 측이 수십억, 수백억 규모의 손배소를 제기하면 인지대 등 소송비용만도 '억'대의 비용이 들어간다.
또 1심 재판이 열리기까지 6년이나 걸린 KEC 사례처럼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가압류 등의 조치로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기도 어렵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도 "회사에서 손배소를 제기해서 패소할 상황이 닥치면 노동자들은 법정공방을 더 벌이고 싶어도 KEC처럼 소송비용조차 견딜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침해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측은 노동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사측의 요구를 들어주면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회유한다.
만약 1명의 노동자가 손배소를 견디다 못해 사측의 회유를 받아들여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조를 탈퇴해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되면 그 몫은 고스란히 남은 노동자들에게 연대책임으로 돌아간다.
김 지회장도 "지난 10월 2명이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분들이 갚지 않는 돈을 우리가 갚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회사를, 노조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더 나올까봐 염려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 손에손을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손배소는 권리, 인간성을 포기하면 손배에서 벗어날 수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나와 온 가족이 힘들어지는 싸움"이라며 "하지만 인간이고, 시민과 국민으로 정당한 노동권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 버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노동자가 동료를 배신하도록 강요하는 인간성 말살의 과정"이라며 "살기 위해 나의 짐을 동료에게 물리고 나가는 셈이기 때문에 남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시민모임 손잡고(02-725-4777)는 노동3권에 보장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배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든 법안으로, 손잡고는 20대 국회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입법청원('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20대국회 입법청원서)을 기다립니다.
출처 수백억 소송에 무너지는 노동자들… "손배소, 인간성 말살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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