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법 앞의 평등’은 개나 줘라

‘법 앞의 평등’은 개나 줘라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발행 : 2017-04-03 08:42:38 | 수정 : 2017-04-03 08:42:38


▲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503번(유신폐계 박근혜 수인번호)이 지난달 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양지웅 기자

“법 앞의 평등이 실현됐다.”

검찰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503번(유신폐계 박근혜 수인번호)을 구속시키자 야당과 법률단체는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냉정하게 말하면 ‘개소리’다. 정치적 논란이 첨예한 사건들 앞에서 기회주의적인 기소와 구속영장 청구를 일삼아왔던 그간의 검찰 모습을 떠올려봤을 때 과연 ‘법 앞의 평등’과 같은 엄중한 말을 감히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503번 구속이라는 검찰의 성과는 ‘법 앞의 평등’이나 ‘법과 원칙’과는 전혀 무관하다. 오로지 촛불 시민들이 일궈낸 압도적 여론을 거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검찰 조직이 ‘살아있는 권력’의 뜻을 거스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들은 오로지 ‘법 기술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법 기술자’란 무엇인가. 자신들의 영위를 지배하는 세력의 입맛에 맞게 법 조항을 갖고 장난을 치는 자들이다. 만약 503번이 파면되지 않았거나 503번 구속 반대 여론이 과반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검찰은 ‘법 원칙’과는 무관하게 ‘기술적’으로 503번 무죄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그랬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유우성씨와 그 동생을 남매간첩단으로 만들었고, 직원들을 동원해 대선개입을 한 사실이 명백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엄정하게 수사하려던 검사들을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또 터무니없는 증거와 논리를 앞세워 한 진보정치인에게 ‘내란음모죄’를 덧씌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검찰의 기회주의적 습성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계급성이다. 검찰의 계급성은 기회주의적인 습성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어떨 때는 그 경계에서 기회주의적 습성을 압도하기도 한다.

단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범죄를 대하는 각각의 태도에서 그러한 모습들을 쉽게 엿볼 수가 있다.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주요 검찰 인사들 위주로 구성된 특검은 정관계 로비 의혹, 비자금 의혹에 대해 손도 대지 못한 채 꼬리 자르기 수사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 검찰의 기회주의적 습성보다는 계급성이 우위를 차지한 사례다. 당시 삼성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이었음에도 검찰은 삼성이라는 재벌을 봐줬다.

2015년 11월 ‘박근혜 독재’에 저항하고자 10만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서는 비등한 여론에 계급성이 가세하면서 징역 20년이라는 파격적인 구형을 내렸다. 당시 박근혜 정권이 레임덕 위기에 놓여져 있는 상태였고, 정권 차원의 무리한 기소라는 여론이 팽배해져 있었음에도 검찰은 노동자들의 집회·시위 행위 자체를 지나치게 엄중하게 인식했다.

503번을 구속시키고 난 뒤의 검찰의 모습에서는 그 계급적 성격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구치소 출장 조사 방침이 바로 그렇다. 경호,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웃기는 소리다. 법 앞의 평등을 실현했다는 과찬을 받은 조직이 언급하기엔 다소 빈약한 논리다.

솔직하게 엘리트, 사회 지도층, 나아가 ‘대통령’을 했던 사람에 대한 예우를 갖추겠다는 것인데, 검찰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다 구속된 노동운동가나 종교지도자, 야당지도자를 상대로는 이런 태도를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어떻게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을 죄수복 차림에 포승줄로 채워 포토라인에 세우겠느냐’는 것이 검찰의 솔직한 속내이자, 그들이 갖고 있는 계급성의 본질이다.


출처  [기자수첩] ‘법 앞의 평등’은 개나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