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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인천공항 출국까지 몇 명의 정규직을 만날까?

인천공항 출국까지 몇 명의 정규직을 만날까?
[비정규직 ZERO 시대를 위하여 ①] 현장, 인천공항서 정규직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발행 : 2017-06-08 18:49:30 | 수정 : 2017-06-08 19:51:29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아픔을 담은 공간입니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2001년에 개항한 인천공항은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기본 고용형태로 삼고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 3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이 80%가 넘는 기형적인 사업장이라는 불명예도 안았습니다. 이런 인천공항이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만 명에 가까운 공항 직원 전원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새 정부의 의지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한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공항직원·승객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노동자를 웃게 할 건강한 정규직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장 직원과 노동전문가 등과 함께 인천공항의 현실을 조명하고, 바람직한 정규직화의 대안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

[① | 세계 1위 공항의 부끄러운 민낯]
[② | 인천공항 노동조합 10년]
[③ | 공항 비정규직의 꿈]
[④ | 비정규직-정규직화 시나리오]


인천공항 도착부터 출국까지···
만나는 모든 직원은 ‘비정규직’

내 몸집만 한 여행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들어섰다. 빤짝 반짝 빛나는 시설, 곳곳에서 환하게 웃는 직원들을 보니 여행을 떠나는 실감이 났다.

검은 제복에 선글라스를 낀 보안경비 요원들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전 세계 테러 위협으로 공항 경호 태세가 강화된 상황이었다. 무표정의 경비요원들은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을 살폈다.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나도 모르게 눈길을 피했다.

▲ 인천공항 보안경비 요원들이 여객터미널을 순찰 중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인천공항에는 이런 보안경비 요원들이 1,000여 명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공항 외·내각, 여객터미널 등 시설의 보안경비 업무를 담당한다. 테러 위협으로부터 공항을 지키는 핵심 인력들이지만,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경비요원 김 모(45) 씨는 인천공항 개항 당시인 2001년 말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공항 보안경비에 관해서는 베테랑이라고 평가받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3년 살이 비정규직’이다. 3년을 전후해 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재계약을 반복했고, 근속연수가 잘 반영되지 않아 신입직원 월급과 20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사이 수많은 동료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사했다. 승객 안전 등을 위해 전문화돼야 할 보안업무가 하청업체와 신입직원들에게 맡겨져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권이 바뀌고 올해 말까지 정규직화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근무환경이 크게 바뀔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인건비를 아끼려 모든 업무의 하청만을 고집해온 인천공항공사에게 큰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 인천공항 안내데스크 여직원이 근무를 서고 있다. ⓒ민중의소리

경비요원을 지나쳐 화장실 위치를 묻기 위해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에게 여행객 한 명이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공항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 빨리 찾아달라는 요구였다. 승객의 성화에도 안내데스크 여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여직원은 공항의 얼굴이다. 공항에서 승객을 가장 먼저 만나고, 하루에 수십 명 이상의 승객 민원 업무 등을 처리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140여 명의 안내데스크 직원은 공항직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허 모(25) 씨는 2년째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다. 비행기승무원이 꿈이라서 경험 삼아 일을 시작했다. 공항에서 일하면 대체로 부럽다는 반응이지만, 월급은 백만 원대 중반이고 업체가 바뀔 때마다 가장 쉽게 일자리를 잃는 직종이다. 최선을 다해 고객을 응대하지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직원으로만 취급받는 것 같아 서럽기만 하다. 그래서 허 씨는 가족에게도 자기 일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핵심 보안, 안전, 상시업무까지 ‘간접고용’
“매해 재계약 걱정에 근속수당은 남 일”

위치를 물어 화장실에 도착했다. 청소노동자가 세면대에 물기를 제거하고 있었다. 인천공항 방문한 외국인들은 화장실 청결 상태를 보고 가장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공항서비스 평가 세계 1위의 1등 공신이 청소노동자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 서비스를 위해 인천공항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800여 명의 청소노동자도 비정규직 신분이다. 주6일 동안 밤낮없이 일하지만, 공항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 심지어 공항심사를 할 때면 심사위원들 눈에 띌까 봐 화장실에 숨어 있으라는 지시를 받아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청소노동자들은 말한다. 정규직화 계획이 발표됐지만, 청소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다른 직무에 비해 저평가된 청소업무만 정규직화 계획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 인천공항 보안검색 요원들이 승객의 수화물을 검색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화장실을 거쳐 탑승수속을 밟기 위해 보안검색대에 도착했다. 제복을 입고 검색 장비를 든 보안검색 요원들이 승객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항공기와 공항 핵심 시설 안에 들어갈 승객의 수화물 등을 검색하는 보안검색 업무를 담당한다. 인천공항에는 1,100여 명의 보안검색 요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도 물론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신분이다.

18년 차 보안검색 요원 신 모(48) 씨는 이날도 승객과 실랑이를 벌였다. 기내 반입이 금지된 물건을 가지고 온 승객이 왜 안 되냐고 우기다가 급기야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신 씨는 혹시나 승객이 인터넷에 항의 글을 올려 불이익을 받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매년 재계약을 걱정하는 비정규직 검색 요원들에게는 안전을 위한 정당한 법 집행 조차 힘이 들 때가 많다.

탑승교로 가던 도중 승강기를 설비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공항 내 에스컬레이터 등 승강설비를 하는 100여 명의 직원도 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객기와 공항 건물을 이어주는 탑승교를 설치하는 직원, 공항 활주로 시설을 정비·관리하는 직원, 여객터미널 자동제어시설 등을 유지·관리하는 직원 모두가 비정규직이었다. 인천공항에는 시설 및 시스템 유지보수를 위한 비정규직이 2,400여 명 근무하고 있다.


세계 1위의 부끄러운 민낯 ‘비정규직 85%’
올해 말까지 전원 정규직 전환, 그러나···

▲ 휴가철 여행을 떠나기 위한 승객들로 인천공항이 붐비고 있다. ⓒ뉴시스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단 한 명의 정규직도 만날 수 없었다. ‘공항서비스 평가 12년 연속 세계 1위’에 빛나는 공항에서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 대부분이 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이들 사이에서는 “공항에서 정규직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은 수치로 보면 더 명확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8,098명의 직원이 인천공항에서 일하고 있고, 이 중 6,932명(85%·공사 소속 비정규직 27명 포함)이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이에 비해 인천공항공사 소속 정규직은 1,166명(15%)에 불과했다. 제2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 간접고용 노동자의 숫자가 9,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한해 연봉과 관련해서도 정규직의 평균보수가 8,800만 원인 반면 비정규직 보수는 3,000만 원 내외로 책정된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올해 말까지 인천공항 직원 1만 명 모두를 정규직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여는 신호탄으로 다른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가 인건비 등을 이유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반쪽짜리’ 정규직화가 추진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출처  인천공항 출국까지 몇 명의 정규직을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