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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인천공항 정규직화 약속의 ‘숨은 공로자들’

인천공항 정규직화 약속의 ‘숨은 공로자들’
[비정규직 ZERO 시대를 위하여 ②]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조합 10년
[민중의소리] 옥기원 기자 | 발행 : 2017-06-09 18:21:18 | 수정 : 2017-06-09 19:25:47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아픔을 담은 공간입니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2001년에 개항한 인천공항은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기본 고용형태로 삼고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 3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이 80%가 넘는 기형적인 사업장이라는 불명예도 안았습니다. 이런 인천공항이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전환점을 맞았습니다. 1만명에 가까운 공항 직원 전원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새 정부의 의지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한 정규직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공항직원·승객을 비롯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노동자를 웃게 할 건강한 정규직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장 직원과 노동전문가 등과 함께 인천공항의 현실을 조명하고, 바람직한 정규직화의 대안을 모색해 보려 합니다.

[① | 세계 1위 공항의 부끄러운 민낯]
[② | 인천공항 노동조합 10년]
[③ | 공항 비정규직의 꿈]
[④ | 비정규직-정규직화 시나리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라는 파격적인 약속을 이끌어내기까지 ‘숨은 공로자’가 있다. 공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10년 넘게 싸워온 노동조합이다. 보수정권 9년 동안 계속된 노조탄압 분위기에서 해고까지 각오하며 싸워온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정규직화라는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지난달 26일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장(왼쪽)과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오른쪽)이 간담회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보수정권 9년, 공항비정규직 노조의 출범
‘우여곡절’ 노조 활동의 성과와 상처들

노동조합 출범 당시부터 조직활동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2001년 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경영 전반의 초점이 비용절감에 맞춰져 있었다. 그 대표적인 폐해가 80%에 이르는 외주화 비율이다. 비용절감에 따른 희생은 공항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시설·정비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개항 초기 인천공항에는 야간근무자를 위한 휴게시설조차 없었다. 공항 시설 정비를 위해 밤에도 상시 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소음이 심한 기계실에 간이 소파를 놓고 휴식을 취했다.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많았고, 퇴사자가 속출했다. 휴게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직원들의 요구에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각 하청업체는 비용 등을 이유로 귀를 막았다.

공항 곳곳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고, 개항 1년 뒤부터 설비·정비 직무 등을 중심으로 기업별 노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노조 출범 후 직원들이 한목소리를 내니 근무조건이 조금씩 변했다. 휴게시설이 생겼고,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장이 줄어들었고, 당연히 받아야 할 휴식시간도 보장됐다. 하지만 이는 노조가 있는 직무에만 한정된 이야기였다. 직무별로 흩어진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모아낼 수 없다는 한계도 드러났다.

결국, 2008년 산업별 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 지역지부가 출범했다. 당시 공항 비정규직 5,000명 중 750여 명이 지부에 가입했다. 2013년 말 첫 파업은 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외부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쟁의권을 확보한 환경미화, 시설·정비 비정규직 500여 명이 중심이 돼 진행한 파업은 19일간 이어졌다. 하지만 같은 시기 철도노조의 KTX 민영화 반대 파업이 진행됐고, 공항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상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 지난 2013년 말 인천공항지역지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진행했다.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당시 파업에 참여한 유홍재 부지부장은 “파업의 성과도 있었지만 피해도 컸다”고 말했다. 유 부지부장에 따르면 파업 후 인천공항공사는 간접고용 구조를 악용해 노조 간부 등의 재계약을 방해하는 방식의 교묘한 탄압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해고됐고, 유 부지부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파업이 끝난 시점과 재계약 기간이 맞물렸어요. 하청업체에서 노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제안했어요. 저를 믿고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을 생각하니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하청사장한테 울면서 부탁을 해봐도 공사에서 (재계약을) 막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랑 같은 상황에서 공항을 떠난 동료들도 많습니다. 저는 끝까지 싸워 현장에 복귀했지만요.”라고 말했다.

노조 간부 다수의 해고 위기뿐만 아니라 당시 길어진 파업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노조를 이탈하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비정규직 노조의 첫 파업은 큰 도전인과 동시에 많은 상처를 안긴 사건이었다.

파업의 성과도 있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비용과 분기별 성과급이 지급됐다. 하지만 약간의 처우개선일뿐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이어진 노조탄압 분위기 속에서 노조는 공항공사를 상대로 비정규직들의 고용안정과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계속 내왔다. 이에 대해 공항공사 측은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사용자가 하청업체라는 이유로 이들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정권교체 후 노조와 약속 지킨 문 대통령
정규직 전환 약속 후 달라진 변화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인천공항에 깜짝 놀랄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영일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공항비정규직 1만명 전원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발표였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조가 10년 넘게 요구해온 사안”이라며 “문 대통령과 공사에게 예상치 못한 깜짝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 비정규직 직원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뉴시스

문 대통령의 인천공항 방문은 정부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노조는 지난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캠프에 공공부문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을 비롯한 공공부문 간접고용 문제를 임기 내 해결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3일만에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아 그 약속을 지켰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새 정부의 의지와 지난 10년간 노조의 투쟁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문 대통령 방문과 정규직 전환 약속 후 노조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노조 가입자 수가 300명가량 증가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 지역지부는 12개 지회·1개 분회로 구성, 2016년 기준 2,400여 명의 노조원이 가입돼 있었다. “문 대통령 방문 후 노조 가입 문의도 급격히 늘었다”는 게 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노총 연합노련에 가입한 400여 명의 조합원까지 포함했을 때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전체 비정규직 7,000여 명 중 노조가입률은 43% 정도이다.

박대성 지부장은 정규직 전환 약속과 관련해 “새 정부와 노조활동,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시대적 요구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평가하며 “문 대통령의 파격 행보에 가려 노조의 지난 10년간의 간절한 싸움이 조명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규직 전환은 아직 지켜지지 않은 약속일 뿐”이라며 “약속 이행과정에서 분명 마찰이 생기겠지만, 지난 10년간의 노조활동을 떠올리며 올바른 정규직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출처  인천공항 정규직화 약속의 ‘숨은 공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