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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갈등 촉발된 까닭은?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갈등 촉발된 까닭은?
[이슈 해부_반도체공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사태]
삼성만의 ‘이상한 관행’
삼성-노동부-산업부-법원-행정심판 광범위 파열음
민첩 ‘행동’ 삼성은 뒤에, 전면에선 되레 정부부처 대립
일반사업장과 다른 삼성 전자계열사 ‘특수상황’서 비롯
삼성 반도체공장, 풀버전 아닌 ‘부분 보고서’ 관행
노동부 “유독 삼성만 풀버전 공개않아”…사태 원인
영업비밀·국가핵심기술은 앞세우는 ‘명분’일뿐
진짜 의도는 산재입증에 쓰일 자료의 공개 최소화
갈등사태 본질은 “삼성 관행이 산재노동자 고통 키워”

[한겨레] 조계완 기자 | 등록 : 2018-04-23 11:30 | 수정 : 2018-04-23 15:54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등이 참가한 ‘황유미 추모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2014년 3월 5일 산업재해로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서울 태평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주인공인 황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일하던 중 2007년 당시 23살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추모위에 따르면 2014년 3월까지 신고된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는 모두 92명이다. 류우종 기자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에스디아이(SDI) 등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공장 작업장에 비치돼 있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이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둘러싸고 3자(삼성-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가 ‘기업 대 정부’ 및 ‘정부 부처 사이’라는 두 축에서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환경보고서는 유해물질(총 190종) 작업장의 사업주가 노동자의 유해인자 노출 정도를 측정·평가해 그 결과를 기재한 것으로, 6개월마다 작성해 해당 공장 노동자에게 측정 결과를 알리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제출해야 한다.

즉 작업환경보고서를 공장 내부의 별도 출입보안 구역에 비치해두고서 소속 노동자들이 볼 수 있도록 이미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왜 ‘공개’를 둘러싸고 삼성과 정부가 서로 맞서면서 산업계 핫이슈로 불거진 것일까?

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이번 사태의 전개 구도를 보면, 당사자인 삼성전자는 각종 소송과 신청 등 민첩하고 신속한 ‘행동’에 나서고 있을 뿐 이와 관련된 언급이나 설명은 삼간 채 한발 뒤에 물러서 있는 형국이다.

반면 노동자의 이해를 주로 대변하는 노동부와 민간기업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산업부가 다소 엉뚱하게도(?) 전면에 나서 서로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수원·대전 등의 삼성 계열사 공장 소재지 법원은 물론 중앙행정심판위원회까지 얽혀들면서 광범위한 영역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짧게 말하면, 흥미롭게도 이번 이슈는 우리나라 모든 전자업계 공장에서의 일반적이고 단순한 ‘공개 혹은 비공개’ 문제를 넘어선다.

오히려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라는 특정 사업장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관행 때문에 갈등이 비롯됐다는 점이 이번 사안의 근본적 성격이다. 그리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풀버전 아닌 부분 제공 보고서’가 그 한복판에 있다.


삼성 “영업비밀” 연일 법적 대응

노동부는 지난 3월 19~20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산재 입증을 위해 꼭 필요한 자료”라며 삼성전자 온양·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 및 구미 휴대폰공장 등 5개 공장 작업환경보고서의 ‘풀버전’ 공개 방침을 결정했다. 이어 지난 11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탕정공장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과 삼성SDI 천안 배터리 공장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 공개도 결정했다.

정보공개법은 공개 유예기간(30일)을 두고 있다. 즉 이달 19~20일 및 다음달 11일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배터리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 공개가 차례로 임박하면서 핫 이슈로 급부상한 것이다.

노동부의 공개결정은, 해당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다가 작업장 유해물질로 산업재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망 혹은 생존 노동자 본인·유족이 자신들의 산업재해 입증을 위해 필요하다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 근거해 보고서 풀버전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신청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산업재해 입증을 둘러싸고 피해자 쪽과 삼성전자가 대립해온 가운데 노동부는 애초 “영업비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는 삼성전자의 입장을 수용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이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을 공개하라며 유족 승소판결을 내리자 ‘공개 방침’으로 돌아섰다.

특히 노동부는 삼성 반도체공장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 공개를 신청한 또 다른 단체·개인에게도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삼성 반도체공장 산재 피해 노동자들을 위해 소송을 대리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및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JTBC) 소속 프로듀서가 신청한 건에 대해서도 공개 지침을 내린 것이다. 해당 프로듀서는 방송제작 목적으로 정보공개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행 정보공개법은 산업재해 피해자 본인과 유족 등 해당 정보와 직접 관련되는 사람뿐 아니라 제3자라도 정보공개를 필요로 해 청구한 경우 법률상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보(중대 영업비밀 등)가 아니라면 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맞서 삼성 전자계열사들은 “풀버전 작업환경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면 핵심기술·공정 노하우 등 ‘국가핵심기술’에 주로 해당되는 ‘영업비밀’이 중국 등 경쟁기업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며, 이 정보공개 유예기간 중에 △행정소송 및 정보공개 집행정지 가처분(수원지법 등 법원) △행정심판 및 정보공개 집행정지(중앙행정심판위원회) △산업기술보호법에 근거해 작업환경보고서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정(산업통상자원부)을 신청했다.

법원·행정심판위·산업부 등 가능한 모든 제도적 수단을 총동원해가며 노동부의 ‘공개 방침 철회’를 이끌어내려고 개별 계열사를 넘어 그룹 차원에서 총력대응에 나선 형국이다. 삼성전자의 법적 소송제기를 뒤따라 삼성디스플레이도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 취소를 위한 행정심판을 청구한데 이어 지난 17일 대전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삼성SDI도 조만간 행정심판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쟁점은 보고서 ‘풀버전’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보고서는 작업장의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질 등 각종 인체 유해인자로부터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작업 노동자를 보호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근거자료로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다. 어떤 유해인자가 어디에 있고 자신이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보고서는 노동부가 정한 일정한 양식(총 190개 유해인자 목록별 구분)에 따라 작성되는데, 노동부가 지정한 전문업체가 공장마다 작업환경을 조사·측정해 작성·제출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개별 노동자에게 알려야 하며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기구에게도 설명회를 열어 알려야 한다.

사업장 내 특정 장소에 보고서를 비치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비치가 의무화된 건 아니다. 물론 제3자에게 공개되지는 않는다. 또 소속 노동자라도 열람만 가능할뿐 해당 보고서를 촬영·복사할 수 있는 기기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이번 ‘삼성 대 노동부’ 갈등의 쟁점은 ‘풀버전 보고서 제공’에 있다. 작업환경보고서는 노동부가 정한 작성·보고 양식이 있긴 하지만 보고서에 넣는 내용은 업종이나 회사별로 조금씩 다르다.

하이닉스반도체 등 다수의 작업장은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을 작업장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반면, 삼성전자는 풀버전을 공개하지 않고 화학물질 사용 정보나 공정 이름 등 핵심기술정보라고 여기는 일부 대목은 블라인드 처리해 가린 채 유해인자 노출 관련 정보만 기록된 ‘부분 제공’ 보고서를 노동자들에게 보여줘온 것으로 알려진다.

노동부 관계자도 “삼성전자 등 전자계열사들이 풀버전 보고서를 소속 노동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아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재 여부를 다투는 법정 싸움에서 스스로 산재임을 입증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 피해자·유족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많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싶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풀버전 작업환경보고서를 제공하라고 줄곧 요구해왔다.

다만 작업환경보고서 풀버전을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없다. 그러나 노동부 관계자는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려주도록 하는 이 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풀버전을 제공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우리는 해석한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산재를 주장하는 피해자 유족에게 풀버전이 제공될 경우 이것이 제3자에게 흘러들어가 유포될 우려가 있고, 유족 이외에 정보공개를 요청한 제3자에게도 보고서를 제공하기로 한 노동부 결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삼성은 또, 비록 풀버전 보고서에 담긴 핵심기술은 가린 채로 보여주지만 그 부분 보고서에 산업재해 관련 정보는 충분히 공개하고 있다고 말한다.


산업부 “국가핵심기술 판정”…삼성 손 들어줘?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7일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전문위원회(반도체 전문가 15명) 제2차 회의를 열고 삼성전자 4개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내용이 이른바 ‘국가핵심기술’(30나노 이하 디램, 낸드플래시, 조립기술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풀버전 보고서가, 해외유출이 금지된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판정해 달라”며 삼성전자가 산업기술보호법에 근거해 신청한 문의에 대한 산업부의 답변이었다.

노동자의 산재 인정과 관련해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판정해 달라는 신청이 접수된 건 이번이 첫 사례다. 그런데, 단순히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보고서인데 여기에 무슨 국가핵심기술과 정보가 들어있다는 것일까? 전문위원회는, 그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열람해온 부분 보고서가 아니라 풀버전 보고서에 담긴 작업공정 이름, 공정 레이아웃, 화학물질 이름(및 월 사용량) 등이 외부에 공개되면 산업기술보호법에 정한 7대 국가핵심기술을 이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게 된다고 판정했다.

반도체 공장 몇 층, 몇 라인에 어떤 공정이 이뤄지고 있는지 등 풀버전에 담긴 각종 정보들을 조합하면 설비·공정 최적화를 위한 반도체 생산라인 배치도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삼성은 풀버전 보고서가 정보공개법의 공개 예외사항인 ‘중대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근거로 산업부의 이 판정결과를 법원과 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국가핵심기술은 곧 영업비밀?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둘러싸고 노동부와 산업부가 표면상 갈등 관계에 들어선 건 맞다. 하지만 노동부는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판단·조처하고 있는 반면 산업부는 이와 달리 산업기술보호법을 근거로 판정을 내리고 있다. 어느 한쪽 부처의 방침과 결정에 다른 한쪽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대목은, 산업부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판정한 국가핵심기술이 곧바로 정보공개법에서 공개 예외로 정하고 있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이라고 반드시 혹은 직접적으로 정보공개법상의 영업비밀이라고 연결지을 수는 없다”며 “다만 국가핵심기술이 그동안 대부분 영업비밀로 인정돼 온 건 맞는데, 영업비밀이 정보공개법에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는 이번 산업부 판정이 삼성 쪽의 영업비밀 주장의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나아가 산업부 쪽은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규정한 산업기술보호법에 사업자는 해외유출 방지노력을 해야 하고 해외유출시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만일 풀버전이 공개될 경우 삼성으로서는 기업의 의도와 무관하게 즉, 순전히 노동부 탓에 해외유출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될 여지도 있다는 것으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부가 풀버전 공개 방침을 거둬들이는 게 맞다는 논리를 내비친 셈이다.

물론 삼성은 “풀버전 보고서는 영업비밀이면서 동시에 국가핵심기술”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산업부의 공식 입장은 “우리는 해당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판정만 내린 것일뿐이다. 이 판정이 보고서 정보공개 여부에 직접 영향을 미칠지 여부는 개별적으로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정이 그렇다면 국가핵심기술은 뺀 채 보고서를 공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절충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삼성의 전자계열사들이 이미 풀버전 보고서를 산재 피해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온 것도 아닐뿐 아니라, 산업재해 피해자 쪽은 삼성이 부분 보고서에서 감춰 온 화학물질 이름과 사용량 등 작업장 환경 관련 모든 정보를 제공받아야 산재 입증이 가능해진다고 요구하고 있다. 즉 양쪽 사이의 타협을 통한 해결 방식이 쉽지 않은 구도다.

물론 이런 갈등 사태가 촉발되고 여기까지 이른 직접적 원인은 다른 전자업계 공장들과 달리 유독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만 시행해온 ‘작업환경보고서 부분 공개‘에 있다.


최종 판단은 법정으로…

노동부와 산업부가 서로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풀버전 공개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정으로 넘어가 있다. 나아가 19~20일로 예정돼 있던 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계획은 지난 17일부터 이미 ‘잠정 보류’된 상태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17일 삼성전자가 제기한 온양·기흥·화성·평택 반도체 공장 및 구미 휴대전화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정보공개 집행정지(민사소송의 가처분과 유사한 성격)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보고서 공개 보류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행심위는 노동부가 보고서 정보를 공개해버리고 나면 향후 행정심판 본안사건 심리에서 다툴 기회가 없어진다는 이유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행정심판 사건은 통상 최종 판결까지 1~2개월가량 걸린다. 19일에는 수원지법도 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노동부 쪽은 “행심위와 법원의 본안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려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정심판과 법원 소송에서 공개 보류결정이 내려지고 산업부까지 삼성 쪽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면서 그야말로 ‘고심’에 빠져들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그러나 “(다른 사업장과 달리)삼성이 풀버전 작업환경보고서를 산재 피해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공개하지 않아온 것으로 안다”는 말을 재차 덧붙였다. 물론 삼성의 ‘부분 보고서 공개’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국가핵심기술’ 또는 ‘영업비밀’을 명분으로 앞세웠으나 사실은 산재 인정에 쓰일 수 있는 내용의 ‘공개 최소화’를 의식한 듯한 삼성의 이런 보고서 관행으로 반도체공장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은 더 오랜 고통, 더 깊은 울분에 빠져들고 있다.


출처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갈등 촉발된 까닭은? 삼성만의 ‘이상한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