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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의 딜레마, 미국과의 ‘엮임’에서 풀려날 방법

동맹의 딜레마, 미국과의 ‘엮임’에서 풀려날 방법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9-11-10 10:24:50 | 수정 : 2019-11-10 10:24:50


한국 사회에서 미국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국가는 드물다. 일각에서는 그들을 천조국이며 우리를 구한 은인으로 숭배한다. 반대편에서는 그들을 제국주의적 착취로 한국 사회를 난도질한 범죄자들로 취급한다.

이러다보니 최근 불거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양쪽의 시각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미 동맹을 지키는데 돈이 아까울 게 뭔가?”라는 목소리와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목소리가 각 진영에서 나온다. “미국 만세”와 “양키 고 홈”이 공존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바라보면 시각이 조금 달라진다. 경제학에서 국가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적 존재,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총체다. 미국이 한국에 남긴 수많은 유산들(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도 결국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일단 미국은 은인이 아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뭔가를 베푼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뻐서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수 십 년 동안 주류경제학을 숭배한 이들이 ‘공짜 점심은 없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제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논쟁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맹은 어렵다. 겉으로 아무리 친한 척을 해도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동맹 맹세는 휴지조각일 뿐이다. 국제관계론을 다루는 학문에서는 ‘동맹의 안보 딜레마(alliance’s security dilemma)’라는 이론으로 이 문제를 설명한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였던 글랜 스나이더(Glenn Snyder)가 정립한 이론이다.


호구와 왕따 사이, 엮임과 버림의 딜레마

동맹의 딜레마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약소국에게 동맹이란 엮임(entrapment)과 버림(abandonment) 사이의 줄타기”라는 것이다. 더 친근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약소국에게 동맹은 호구가 될 가능성과, 왕따를 당할 가능성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다. 즉 약소국에게 동맹은 전혀 행복한 것이 아니다. 잘 해도 호구가 되고, 잘 못하면 왕따가 된다.

호구와 왕따가 반복되는 과정은 이렇다.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나를 지켜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강대국이 왜 약소국을 돕겠나? 돕는다면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강대국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강대국은 헌신짝처럼 약소국을 버릴 것이다.

전광훈 (빤스)목사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文대통령 하야 범국민 투쟁대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버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약소국이 해야 할 일은 최대한 강대국과 엮이는 것이다. 강대국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도록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라면 올리고, 시장을 개방하라면 해야 한다. 심지어 강대국의 전쟁에 “너희도 군대 보내라”고 명령(!)하면 약소국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약소국은 이제 호구가 됐다.

그런데 호구짓의 대가는 엄청나다. 경제가 뒤틀리고 안보가 엉망이 된다. 강대국 시키는 대로 했다가 국제 사회에서 여기저기 원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소국이 조금씩 반항을 해본다. 약소국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강대국의 지시를 조금씩 거부하다보면, 강대국은 “더 이상 너희를 지켜주지 않겠어”라며 약소국을 버린다. 호구를 벗어나려니 왕따가 되고, 왕따를 벗어나려니 호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약소국이 겪는 동맹의 딜레마다.


일본이 겪는 동맹의 딜레마

최근 이 동맹의 딜레마에 걸려 호구가 된 대표적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을 형님 국가로 모시는 전통이 공고한 일본은, 한국과 무역분쟁을 시작한 이후 혹시 미국의 버림을 받을까 전전긍긍했다. 왕따가 되는 것이 두려워 철저히 호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가 굴욕적인 옥수수 시장 개방이었다. 8월 일본 아베 총리는 “옥수수가 남아도는데 너희가 좀 사줘야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필요도 없는 옥수수를 무려 8조 원어치나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렇게 엮이면 아베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다. 일본 국내 여론이 극악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아베는 뒤늦게 “옥수수를 사주기로 한 적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를 낳는다. 그렇게 호구짓을 멈추면 형님 나라 미국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걱정을 해야 한다.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 협상 중단과 방위비 분담 협정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딜레마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동맹의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약소국 입장에서 강대국과 맺는 동맹은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적자생존의 정글 사회에서 동맹이니 우정이니 하는 말은 전부 헛소리에 불과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동맹이 필요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남북 긴장이 계속되는 한 미국과 겪게 될 동맹의 딜레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의로 남북 긴장을 고조시켜 정치적 이익을 도모했던 이 나라 보수 정부는 정말로 역사에 큰 죄를 지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민족의 평화를 민족 스스로 찾아낼 길을 열면, 우리는 동맹의 딜레마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1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이런 내용이 있다.

“상대적으로 국력 차이가 나는 국가들 간에 맺어지는 동맹관계를 소위 ‘비대칭적 동맹’이라고 한다. 안보 자율성 동맹에서 약소국은 동맹 파트너인 강대국으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 안보를 확보하고, 강대국은 약소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약소국의 경우 안보를 확보하는 대신 국가 정책적 자율성을 일정부분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이러한 안보 자율성 교환동맹의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스나이더가 제시한 ‘연루’와 ‘방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동맹 형성 이후 연루보다도 유난히 방기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이것이 대미의존도 강화와 자율성 희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산하 기관이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한국이 겪는 동맹의 딜레마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남북 평화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리와 국익의 문제다. 우리 스스로 미국과 동맹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출처  동맹의 딜레마, 미국과의 ‘엮임’에서 풀려날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