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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괴물 국가보안법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괴물 국가보안법
‘무섭고도 황당한 국가보안법’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 발행 : 2019-12-28 10:54:47 | 수정 : 2019-12-28 10:54:47


▲ 책 ‘무섭고도 황당한 국가보안법’ ⓒ그림씨

얼마 전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은 7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48년 12월 1일 태어난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주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법이었지만, 7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 괴물은 사상의 자유라는 가장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통일을 일구기 위해 일해온 많은 이들에게 ‘종북’과 ‘간첩’의 낙인을 찍어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만 국가보안법이 가진 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괴물에 맞서는 것이 두려워 말도 안되는 현실을 숙명처럼 여기게 만든다. 괴물에겐 항의하지 못한 채 괴물에게 상처입은 이들에게 “혹시 빌미를 준 것이 아니냐”고 공격하게 한다.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자나 깨나 자기검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괴물은 이제 우리의 익숙한 자기검열 아래 폐지하자는 목소리마저 사라진 채 군림하고 있다.

책 ‘무섭고도 황당한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국가보안법의 속성을 쉽게 잘 설명한 책으로 청소년들이 읽기 좋게 만들어졌다.

국가보안법은 제헌국회가 일제의 법령과 미군정 법령의 효력을 존속시키는 방법으로 법의 공백을 막으면서 진통 끝에 만든 ‘특별한’ 법령이었다. 처음부터 국가보안법은 많은 반대에 부닥쳤다. 반대 여론 탓인지,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라고 했다. 영구 존속이 아니라 형법으로 흡수할 예정이라고 민심을 달랬다. 그러나 형법이 제정되고 난 뒤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70년이 넘었어도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탄생 배경에는 ‘여순사건’이 있다. 1948년 10월 19일 일어난 여순사건은 오늘날 국가기념일로 지정될 만큼 사건의 전말과 참상을 국민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제주 4·3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부대에게 제주 4·3사건의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갈 것을 명령하자, 이의 부당성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에 놀란 이승만 정부는 정부 수립 후 형사기본법인 형법을 마련할 생각 대신 ‘체제보전용 특수법’인 국가보안법부터 서둘러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일본 제국주의가 체제 유지를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삼았다. 치안유지법 제1조 “국체변혁을 목적하여 결사를 조직한 자”와 국가보안법 제1조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라는 표현이 흡사하다는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해방 뒤 정치적 격동기에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로 만든 ‘한시법’이었다. 그리고 형법이 제정되면 국가보안법은 형법으로 흡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권을 확보한 이들은 형법 제정 후에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고 보강되었다.

한편 1961년 7월 3일,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안법과는 별도로 반공법을 만들었다.

“반공체제를 강화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자나 이들에 대해서 협조하는 자 등을 일반법보다 무겁게 처벌하여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계열의 활동을 봉쇄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반공법은 반국가단체에 가입 권유,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에 대한 찬양‧고무‧동조, 이적단체의 구성‧가입, 이적표현물의 제작, 반국가단체에 편의 제공과 ‘불고지’ 등 매우 포괄적인 규제 내용을 담았다.

반공법을 만들 때 국가보안법과 겹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안법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박정희 정권은 더욱 폭넓게 법을 적용해서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반공을 일상화하려 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권력을 떠받드는 법적 수단으로,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눌러 많은 사람을 가둔 권력의 ‘칼’로 쓰였다. 두려움을 신체에 새겨 넣어 저항의 싹을 없애는 것, 이것이 고대 노예제 사회를 비롯한 모든 계급지배의 첫 번째 원칙이다. 공포는 국가보안법을 지탱하는 최상의 기제다. 국가보안법을 등에 업은 국가권력은 공포를 퍼뜨리며 인간의 삶을 지배했고, 국가권력 자체가 폭력이 되었다.

정말로 무서운, 그래서 정부를 비판했다고 신문이 폐간되고 대표가 사형까지 당했을 정도로 정말 무서운 국가보안법이다.

1948년 12월 29일에 있은 국가보안법에 해당된 피의지에대한 첫 공판 사건인 ‘민애청’ 사건에서부터 『민족일보』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동백림 공작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재일본 한국인 서승, 서준식 형제 간첩 사건, 문인·지식인 간첩단 사건, 울릉도 거점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고문 형사 이근안 사건, 문익환 목사 입북 사건, 임수경 평양축전 참가 사건, 인민노련 사건, 사노맹 사건, 민추위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민교투 사건, 안기부 북풍 공작 사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2013년의 이석기 강제구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중 무서운 사건을 다루었다.

국가보안법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넘어 웃지 못할 황당한 사건들이 많다. 동아방송 「앵무새」 사건에서 최근의 ‘최보경 교사 지키기’ 촛불문화제에 이르기까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술 마시고 내뱉은 말 한마디도 고무찬양으로 처벌 받는 국가보안법이 가진 허구성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과연 국가보안법은 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여실하게 전하고 있다.


출처  [새책]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괴물 국가보안법 ‘무섭고도 황당한 국가보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