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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번엔 ‘박쥐탕’? 재난마다 정치화된 가짜뉴스, 대응 지연시킨다

이번엔 ‘박쥐탕’? 재난마다 정치화된 가짜뉴스, 대응 지연시킨다
[민중의소리] 강석영 기자 | 발행 : 2020-01-30 10:33:25 | 수정 : 2020-01-30 13:06:09


▲ 유명 여행 블로거 왕멍원의 2016년 영상. 우한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시작한 지난 연말, 해당 영상은 최근 우한시에서 촬영된 것으로 둔갑해 SNS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박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전파했을 가능성을 두고 있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youtub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관련 가짜뉴스가 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SNS에 따르면 해당 바이러스의 원인은 ‘박쥐탕을 먹는 미개한 중국인’ 때문이고, 유튜브에 따르면 ‘중국 내 감염자 수는 9만 명’을 넘겼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국민청원이 일주일 만에 60만 돌파를 앞둘 수 있었던 이유다.

정부는 가짜뉴스 확산 방지에 나섰지만, 큰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염증 관련 허위 정보를 삭제 조치하고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확산 방지 활동 강화를 주문했다고 밝혔다. 2018년 메르스 사태 당시 경찰의 특별단속 엄포에도 줄지 않던 괴담이 이번이라고 다를지 의문이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지난달 발간한 ‘재난안전정보 및 소통과 정의 신뢰성 제고 방안’ 연구보고서는 재난·안전사고에서 허위 정보가 사회적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복구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허위 정보로 재난이 정치화된다는 측면에서 방지책이 절실하다.


재난 가짜뉴스, 사회적 불안에 복구 지연까지
한국서 재난은 정치화된다

보고서에서 분석된 사례 중 메르스 사태는 이번과 같이 바이러스 확산에 의한 재난·안전 사고다. 2015년 5월 첫 번째 확산 당시 ‘미국 네오콘의 실험 때문이다’, ‘공기감염이 시작됐다’, ‘XX 지역은 전염이 잘 된다’, ‘XX 병원은 폐쇄됐다’, ‘외식은커녕 밖에서 양치도 하면 안 된다’, ‘WHO 조치사항은 의미 없다’ 등 괴담이 일파만파 퍼졌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의도적 유언비어를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2018년 9월 메르스가 재발하고 확진자에 대한 비방글부터 각종 음모론까지 제기되자 경찰은 ‘국민생활 침해 허위사실 유포 사범 특별단속’에 돌입했다. 방심위 역시 플랫폼에 삭제·차단 요청을 했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민주주의 교란범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 21일 오후 메르스 확진환자가 1명 발생한 서울 강동구 동남로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의료진이 이용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문제는 ‘메르스 괴담’으로 과도한 공포감이 조성됐을 뿐 아니라 재난대응에도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메르스 당시 이른바 ‘지라시’ 등을 통해 발병 병원과 환자에 대한 허위 정보가 유포되고, 공기감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유언비어가 SNS를 통해 퍼져 보건당국의 메르스 방역과 대응 노력을 무산시켰다”라고 평가했다.

미디어의 과장된 보도로 대응이 늦어진 사례도 있다. 보고서는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당시 현장 지휘관이 걷고 있는 모습이 우왕좌왕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해 소방당국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언론대응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대응과 복구가 지연됐다”라고 꼬집었다.

현재 유포되는 가짜뉴스도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가짜뉴스에 힘입어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이 현실화된다면, 밀입국 같은 사각지대가 발생해 검역·추적 등 관리가 불가능해 방역망에 구멍이 뚫릴 위험이 크다. 지금처럼 입국장에서 검역을 잘하고, 감염자를 격리 치료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우한시의 한국민 귀국을 위한 전용기가 무산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난의 정치화는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지난해 3월 토착왜구당 황교안 대표는 “탈원전 정책으로 미세먼지가 늘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4월 고성 속초 산불 사고 당시 토착왜구당 윤한홍 의원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한전 예산 삭감으로 산불이 발생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해외에서 사상자, 피해 양상 등 재난 자체 관련 허위 정보가 생성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선 발생 원인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점과 연관 있다. 보고서는 “재난 원인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현 정부에 책임을 돌리며 허위 정보를 양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재난이 경쟁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난하는 네거티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짚었다.

▲ 토착왜구당 황교안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2020.01.30 ⓒ정의철 기자

이번에도 토착왜구당은 가짜뉴스가 전파한 ‘혐중’ 정서를 부추겼다. 토착왜구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중국인 입국 금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난해 7월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당시 ‘위기상황’을 선포하면서도 ‘국경폐쇄에 제한을 둬선 안 된다’라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심재철의 주장은 인종차별일 뿐이다.


국내 가짜뉴스 대응 부족
미국·유럽연합, 법보단 자율규제
엄정 대응 중국은 ‘인터넷 검열’ 비판 나와

그러나 현행법상 가짜뉴스 유포자를 처벌하기 힘들다. 형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기본법 등은 허위 정보로 특정인을 기만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기만하는 행위는 선거와 같이 허위 행위로 인한 영향이 즉각적일 때만 처벌한다.

법이 능사는 아니다. 미국, 유럽연합 등은 자율규제를 선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규제에 앞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현실을 왜곡하거나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누군가를 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정보를 지칭할 때 ‘허위(조작) 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페이스북·트위터·구글 등 IT 대기업에 허위 뉴스 근절을 위한 행동강령 서명을 받아냈다.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자율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다른 회사들이 퇴출하는 식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허위 정보 대응을 잘 한 사례를 발굴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루머 컨트롤 사이트’는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재난안전관리청(FEMA)에서 전국 및 지역 단위의 재난 관련 루머를 한군데 모아 진위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보고서는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산발적으로 퍼지는 루머와 진위 여부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 미국의 루머 컨트롤 사이트. ⓒFEMA

이어 “한국은 SNS를 통해 루머가 한참 확산된 후에야 지자체, 청와대, 복지부, 언론 등이 산발적으로 루머를 정정하고 사실을 공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번 확산된 후엔 사람들이 사실을 찾아보지 않거나, 사실을 접해도 먼저 접한 루머를 믿는 경우가 많아 루머가 생성될 시 이를 정정하고 사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독일 등이 법적 접근을 취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상충한다는 점에서 자율적 규제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이번 바이러스 발생지인 중국도 사이버보안법을 근거로 가짜뉴스를 단속하고 있다. 지난 28일 텐진공안국은 위챗을 통해 악의적으로 재난 관련 허위 정보를 퍼뜨린 A(30) 씨와 B(37) 씨를 15일간의 행정구류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 검열이란 비판부터 나오는 실정이다.


출처  이번엔 ‘박쥐탕’? 재난마다 정치화된 가짜뉴스, 대응 지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