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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위 악덕기업에 빛나는 삼성전자에 관한 추억

세계 3위 악덕기업에 빛나는 삼성전자에 관한 추억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20-11-01 09:23:20 | 수정 : 2020-11-01 09:23:20


2015년을 끝으로 중단됐지만,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1년 동안 매년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 포럼)에서는 흥미로운 시상식이 하나 열렸다. 정식 명칭은 ‘공공의 눈 시상식(Public Eye Awards)’인데 ‘최악의 기업 시상식’ 혹은 ‘악덕기업 시상식’으로 더 잘 알려진 그 시상식이다.

그린피스 등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이 상은 말 그대로 1년 동안 가장 개떡같은 방식으로 경영을 한 기업을 선정한다. 시민단체들이 미리 몇몇 후보를 선정한 뒤 이를 공개하면, 전 세계 네티즌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그 해의 최악의 기업을 뽑는 방식이다.

그런데 2012년 우리의 삼성전자가 최종 투표 결과 악덕기업 3위에 올랐다. 삼성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영예(응?)의 악덕기업은 브라질의 광산업체 발레(Vale)였다. 발레는 아마존에 댐을 건설하면서 원주민 수만 명을 몰아낸 혐의(!)로 1위를 차지했는데, 이 기업은 이후에도 각종 사건사고로 악명을 떨쳤다.

2위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도쿄전력이 차지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그 기업이다. 생각해보면 여기도 능히 세계 2위의 악덕기업에 오를만했다.


악덕기업 비하인드

그 뒤를 이어 삼성전자가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3위 수상은 약간 아쉽다(응?). 능히 1위나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선정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발견되며 3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아까비! 삼성이 또 세계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석연치 않은 구석은 시상식 공식 석상에서 발표됐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도 참여했던 시상식에서 프랑소아 마이언베르그 공공의 눈 프로젝트 매니저가 묘한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치열했던 이번 투표에서 우승자가 될 가능성이 있던 네 회사 중 한 곳이 불가사의한 규모의 사람들을 움직였습니다.

불가사의한 규모의 사람들을 움직였다? 짐작하자면 네티즌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악덕기업 선정 과정에서 특정 기업이 몰표를 만들어 순위를 조작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상 삼성이 이런 일에 매우 능숙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뒤이어 마이언베르그는 “우리는 투표자들의 IP주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투표 기간 중에 점점 많은 한국인들이 참여해서 브라질 발레와 일본 도쿄전력에 표를 몰아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역시 삼성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주최측의 이 추정은 매우 일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 해 총 투표수가 직전해(2011년)에 비해 무려 60%가랑 폭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최측에 따르면 이 몰표의 IP는 한국이었다.

한국 네티즌들이 열렬히 브라질 발레와 일본 도쿄전력에 표를 몰았다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정상적인 과정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쿄전력이야 한국인으로부터 몰표를 받을만한 기업이지만, 브라질 발레는 그런 기업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무튼 삼성전자는 이 미스터리한 몰표 덕에 1위를 피했다. 1위를 피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 단체는 매년 1위에 오른 악덕기업을 불명예의 전당(Hall of Shame)에 올리기 때문이다.

불명예의 전당에는 발레를 비롯해 노동착취로 유명한 월마트, 월트디즈니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석유기업으로 환경오염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로열더치쉘은 2005년과 2013년 2회나 이름을 올린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 공공의눈 시상식 홈페이지에 실린 '불명예 전당' 화면.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기업들을 악덕기업으로 선정하는데, 삼성전자는 2012년 이 분야에서 세계 3위에 올랐다. ⓒ기타

주최측이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갔기 때문에 이게 진짜 조작된 투표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전혀 생소하지 않는 이유는, 삼성이 그런 짓을 너무나 잘 할 것 같은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떡값으로 검찰도 쥐락펴락했고 중앙일간지 회장까지 동원해 정치권에 돈을 박스로 날랐던 기업인데 인터넷 여론 조작이야 일도 아니지 않나?

아무튼 장하다, 삼성.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공식 시상식에서 ‘미스터리한 몰표’의 주인공으로 언급됐으니 그 이름이 세계만방에 울려 퍼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국가정보원이 댓글 조작을 벌인 해가 바로 2012년 겨울이었다? 악덕기업 투표가 2012년 1~2월이었으니 예행연습 같은 거였나? 에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희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겠다

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대체적으로 숙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아주 나쁜 사람이어도 죽음을 비아냥거리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지난 일주일 동안 언론에 쏟아졌던 ‘위대한 경영자 이건희’에 대한 칭송은 정말 좀 참기 어려웠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대체적으로 숙연해야 한다는 평소 생각과,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라는 반론이 끝없이 머릿속에서 갈등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도저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겠다.

2012년 악덕기업 시상식에 삼성전자가 후보로 이름을 올린 이유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숨졌기 때문이다. 쿠미 나이두 그린피스 사무총장은 시상식에서 “삼성전자는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금지된 독성 물질에 노출시켜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로 선정됐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숨진 노동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10년 넘게 버텼다. 삼성이 결국 사과하지 않았냐고? 맞다. 그들은 사과했다. 그런데 그건 황유미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지 무려 11년만인 2018년의 일이었다. 이들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가 누구인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희 외에 더 큰 책임을 질 사람을 찾지 못하겠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뜻있는 사람들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2015년 10월 7일 시작된 이 농성은 2018년 7월 25일까지 무려 1,023일 동안 지속됐다.

나는 이 천막에 가본 적이 있다. 천막에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으로 사망한 수십 명 노동자의 사진과 그들의 짧은 생애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얼굴 사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00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인 반올림의 천막. ⓒ양지웅 기자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어도, 한국 사회가 적어도 이 이름을 한번은 불러봐야 한다고 믿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이건희의 생명보다 가벼울 리가 없다. 그런데 이건희는 이들에게 아직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희의 죽음에는 온 나라 언론이 1주일 동안 영광의 노래를 부르며 그를 추모했다.

이건희를 추모하는 그 노력의 만분의 1이라도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기울였다면, 우리는 그들 중 최소한 몇 명은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과를 받기 위해 1,000일이 넘는 천막농성을 벌이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건희의 죽음보다 아직도 그로부터 아무 사과를 받지 못한 저 노동자들을 추모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희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하늘나라 어디에서 그들을 마주했다면, 제발 고개 숙여 그들에게 사죄하라. 건성으로 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사죄하라. 그들은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아직도 충분히 추모 받지 못했다.


출처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세계 3위 악덕기업에 빛나는 삼성전자에 관한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