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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불편해야 세상이 행복해”...<셜록> 박상규 기자의 소신

“기자가 불편해야 세상이 행복해”...<셜록> 박상규 기자의 소신
<날아라 개천용> 드라마 작가로도 데뷔…“좋은 기사는 통한다” 일침
[고발뉴스닷컴] 하성태 기자 | 승인 : 2020.11.16 11:15:05 | 수정 : 2020.11.16 11:46:15


1. 콘텐츠만 신경 써라. 좋은 기사는 통한다.
2. 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하겠다. 돈은 내가 벌어온다.
3. 네가 어디에서 뭘 하든, 신경 안 쓴다. 콘텐츠만 나오면 된다.
4. 클릭 수만 노리는 의미 없는 기사 쓰지 말라. 훗날 쪽팔려진다.
5. 웬만하면 일주일에 기사 하나만 써라. 대신 공부를 많이 해라.
6. 괜한 보고 하지 말라. 안 궁금하다. 우린 국정원이 아니다.
7. 큰일 아니면, 오전 9시 이전, 오후 6시 이후에 서로 카톡 보내지 말자.
8. 함부로 단체 카톡방 만들지 말라. 할 말 있으면 각자 끼리끼리 하라.
9. 회사 위해 일하지 말자. 좋은 저널리스트가 되도록 노력하자.


지난 2017년 ‘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대표기자가 본인 소셜 미디어에 밝힌 일종의 취재 원칙이다. 당시 <셜록>의 한 인턴기자가 <한겨레21>에 공개하기도 했던 이 원칙은 ‘기레기 담론’에 지친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 <이미지 출처=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대표기자로서 박 기자는 “최소 1년간 월급 안 밀리고 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후회든, 반성이든, 조정이든 그때 하자”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후원으로 운영 중인 <셜록>은 이후 ‘재심 3부작’은 물론 큰 파장을 불러 온 2018년 ‘양진호 사장 폭행 사건’ 단독 보도로 화제를 모았고, 최근 신한‧우리 은행 등 은행권 채용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한편 양육비 미지급 ‘배드 파더스’ 문제와 모종합병원 비리 등을 취재 중이다.

10년 넘게 재직한 <오마이뉴스> 퇴사 당시 “저는 사대문 안에는 없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사대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라고 선언했던 박 대표는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을 통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저서 <지연된 정의>를 바탕으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와 본인이 ‘재심 3부작’을 통해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역사적 ‘재심’을 이끌어냈던 실화를 대중적인 드라마로 극화한 것이다. 그런 박 기자가 15일 방송된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해 기성 언론을 향한 유의미한 일침을 날렸다. “콘텐츠만 신경 써라. 좋은 기사는 통한다”던 박 기자의 소신이 고스란히 전해진 방송이었다.


‘지연된 정의’, ‘날아라 개천용’의 그 기자가 진단한 ‘기레기’ 담론

“‘재심’ 3부작을 하면서 스토리 펀딩을 했는데 다행히 잘돼서 한 10억 정도를 펀딩했거든요. 맨 마지막에 제가 쥔 돈은 1억 5,000만 원 정도가 됐었고, 그게 사실은 결코 작은 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게 개인이 편취한다는 게 약간 양심에 걸리고 이건 나한테 준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좋은 보도를 위해 써달라고 준 게 아닌가 해서 좋은 보도를 하려고 셜록을 만들었죠.

다른 탐사 보도 매체와 다른 것은 한 사건을 끝까지 추적 보도해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보도합니다. 가령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재심 3부작 같은 경우에는 보도하는 데 한 2년, 3년 정도 걸렸거든요. 2, 3년 지나도 해결이 안 됐으면 저는 그 자체가 뉴스라고 봤거든요.”


과거 ‘다음 스토리펀딩’이란 플랫폼을 통해 모은 후원금 조차도 “개인이 편취한다는 게 약간 양심에 걸리고 이건 나한테 준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좋은 보도를 위해 써달라고 준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박 대표. 이런 소신을 바탕으로 사안이 ‘끝날 때까지 해결할 때까지’ 탐사보도를 이어가는 <셜록>의 대표기자가 바라본 ‘기레기’란 멸칭은 어떤 의미일까.

“저희 언론인들이 그동안 뿌려놓은 업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요즘 어디 가서 어르신들한테 기자라고 하면 욕부터 나옵니다. 너희 그렇게 살지 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런 말씀을 하세요.”

타워팰리스 건설 현장과 삼성 LCD 공장에서 근무, 인터넷 소설가를 거쳐 <오마이뉴스> 입사, 이후 ‘4대문 안 안정된 직장’을 퇴사하고 독립매체 <셜록>을 만든 박 기자. 그는 “제가 정식 기자 준비를 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셜록이 있고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라면서 기존 매체의 문제점을 이렇게 꼬집었다.

“제가 기존 매체를 나오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였거든요. 너무나 많은 기자들이 권력을 감시하려고 그 안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사실 4대문 안에 있으면 되게 편하거든요.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 주로 만나고 좋은 음식 먹고 안락한 데에서 지내고, 기자실 가면 다 편의 제공해주고 권력을 감시한다고 말을 하지만, 지난 정권 비선실세 문제를 보면 그 많은 기자들이 권력을 잘 감시했으면 왜 그 사람을 그렇게 뒤늦게 발견했을까, 최순실 씨를.”

그러면서 박 기자는 과거 <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 시절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일깨워줬다던 “기자가 편안하면 세상이 불행해. 기자가 불편해야 세상이 행복해”란 말을 전했다. ‘기레기’란 멸칭을 감수하며 ‘4대문’ 안 출입처에서, 기자실에서 안락하고 편한 길을 추구하고 있는 기성 언론 기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언론관’이었다.

▲ <이미지 출처=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박상규 기자가 언론개혁을 비관적으로 본 이유

“모든 개혁은 사실 어렵죠. 하던 방식대로 하면 몸이 편하거든요. 뭔가 바꾸려고 하면 자기가 피해를 본다는 관념이 있는 것 같고, 비판도 많이 받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보면 존경받거나 약간 우대받는 직업에 속하거든요.

어디 가면 대접받고 우대받다 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죠. 그러다 보니까 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튀는 것을 싫어하고 항상 평균적인 것을 하려고 하죠. 받아쓰기한 것은 검찰이 말했기 때문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항상 핑계를 대는 데 편하게 생활하려는 욕구와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박 기자가 바라 본 언론개혁의 미래는 꽤나 비관적이었다. 지금 언론은 “기자들이 가장 일하기 편한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 “그 편한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까 재미없게 보도가 되고 있는 것”이란 명쾌한 분석과 함께.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기레기’란 멸칭과 상관없이 ‘좋은 기사는 통한다’는 신념을 현실에서 입증하기 위해 “기자가 불편해야 세상이 행복해”란 명제를 실천 중인 박 기자와 <셜록>. 그런 박 기자가 기성 언론에 전한 당부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언론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응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 박 기자에게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좋은 기사를 내는 그 매체가 있다. 그리고 (그 매체가) 꽤 괜찮게 유지된다는 경험을 우리가 사회가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저도 (후원회원) 왓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언론 소비자들이 언론개혁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선체험을 위해서라도 <셜록>이, 박 기자가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 기자가 기성 언론에 전한 아래와 같은 쓴소리가 주류가 되는 그날까지.

“저는 그게 최근에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어요. 한 기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독자들이 보지를 않는다.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독자들이 안 보는 이유는 좋은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안 보는 거예요. 어떻게 영화 만드는 사람이 관객 탓을 합니까? 기자가 독자 탓을 하면 안 되죠. 셜록 같은 경우에는 포털에도 입점을 안 했고, 저희 회사가 대단히 많은 구성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기사만 써서 광고도 없이 4년을 거쳤고, 월급 한 번 밀린 적이 없어요. 흔히 말하는 진보매체들보다 저희가 월급을 많이 주고, 저희는 오직 기사로만 여기까지 왔었거든요. 좋은 기사를 쓰면 우리가 어디 가서 기레기 짓을 안 해도 독자들이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마음과 신념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처>


출처  “기자가 불편해야 세상이 행복해”...<셜록> 박상규 기자의 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