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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옛 광주교도소 사망자수 계엄군이 조작 옛 광주교도소 사망자수 계엄군이 조작 5·18 직후 계엄군 작성 문건서 ‘28명 사살 기록’ 허위로 확인 군 발포로 숨진 민간인들 ‘원한에 의한 살인·교통사고’ 기록 [경향신문] 강현석 기자 | 입력 : 2020.01.30 06:00 | 수정 : 2020.01.30 06:01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28명이 사살됐다”는 계엄군 기록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경향신문이 ‘광주사태에 대한 계엄사 발표’(계엄사령부가 1980년 5월 31일 작성)를 확인한 결과, 계엄사는 “이번 사태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까지 확인된 민간인 사망자 144명에 대한 사망원인별 분류다. 계엄사는 “중.. 더보기
시민 무장 전 숨진 ‘꼬마상주 아버지’도 ‘카빈 희생자’라는 신군부 시민 무장 전 숨진 ‘꼬마상주 아버지’도 ‘카빈 희생자’라는 신군부 시민 희생자들 폭도로 조작한 보안사 시민들 카빈 무장 하루 전 사망 3명 M16 총에 죽었는데, 카빈 희생자로 “80%이상 폭도 만들어야” 전화 들어 “폭도끼리 교전 결론 뒤 희생자 조작”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19-05-16 21:06 | 수정 : 2019-05-16 22:05 “5·18 총상 사망자 가운데 카빈소총에 맞은 희생자는 사체 검안 한명뿐”이었다는 당시 검안의 문형배 전 원광대 교수의 최초 증언은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보수단체의 5·18 왜곡 주장이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시 전두환 사령관의 보안사는 M16 희생자를 줄이고 카빈소총 희생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됐던 것으로 보.. 더보기
신군부가 88명 이른다던 ‘광주 카빈소총 희생자’는 단 1명뿐 신군부가 88명 이른다던 ‘광주 카빈소총 희생자’는 단 1명뿐 문형배 전 원광대 교수 최초 증언 ‘시민군 오인사격·북 개입설’ 반박 “505보안대가 폭도·비폭도 분류” 카빈 희생자 28~88명까지 늘려 시민학살 책임 줄이려 조작 의혹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19-05-16 20:59 | 수정 : 2019-05-17 07:46 5·18 민주화운동 당시 카빈소총에 맞아 사망한 시민 희생자는 1명뿐이었다는 사체검안 의사의 증언이 최초로 나왔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군의 학살 책임을 덜기 위해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를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그동안 5공 인사들은 시민 사망자 가운데 카빈소총 희생자가 28~88명에 이른다며 이것이 시민군.. 더보기
또 나온 광주판 ‘안네의 일기’…숨가빴던 오월의 기록 또 나온 광주판 ‘안네의 일기’…숨가빴던 오월의 기록 당시 전남대 3학년, 도청 상황실에 있던 김현경씨 체포 대비해 일부 내용 한글 자모 등 암호로 표기 “5·18 왜곡 맞서 당시 순수했던 열망 전하고 싶다” [한겨레] 글·사진 안관옥 기자 | 등록 : 2019-05-17 04:59 | 수정 : 2019-05-17 19:21 “그때 공포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비역 육군 중령 김현경(59·서울)씨는 15일 와 만나 계엄군 진입 전날 전남도청 안의 비장한 분위기를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공수부대가 퇴각한 뒤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하자 상황실에 배치돼 거리방송, 성명 낭독, 원고 준비 등을 맡았다. 그는 숨 가빴던 1980년 5월 열흘 동.. 더보기
“옆구리서 흐르던 피보고 쓰러져”…광주 고교생들이 겪은 5·18 “옆구리서 흐르던 피보고 쓰러져”…광주 고교생들이 겪은 5·18 서석고 5회 ‘5·18, 우리들의 이야기’ 출간 서석고 3학년 61명이 겪었던 경험담 모아 5·18기념재단 공모사업 2년 연속 선정 출판 계엄군 ‘편의대’ 증언·고교생 시민군 등 다양 [한겨레] 정대하 기자 | 등록 : 2019-05-03 10:32 | 수정 : 2019-05-03 10:37 “또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시민들은 다시 총을 피해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1980년 5·18 당시 광주 서석고 3학년생이었던 전형문(57)씨는 옛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발포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민들은 다시 총을 피해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도 “총을 피하기 위해 막 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왼쪽 옆구리 아래 배꼽 .. 더보기
고무신 줍다 총탄에 쓰러진 11살 소년…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고무신 줍다 총탄에 쓰러진 11살 소년…처벌받은 이는 없었다 마을서 놀다 변 당한 전재수군 멱감다 총맞은 12살 방광범군 계엄군, 자위권 빙자한 무차별 학살 18명 죽음에만 전두환 살인죄 인정 147명 죽음은 아무도 책임 안져 암매장·집단성폭행 등도 규명돼야 [한겨레] 정대하 안관옥 기자 | 등록 : 2018-05-15 05:03 | 수정 : 2018-05-15 09:25 총소리에 놀란 아이들이 흩어졌다. 한 아이의 검정 고무신이 벗겨졌다. 뒤돌아 고무신을 줍는 순간, 총탄이 쏟아졌다. 11살 전재수(1969년생) 군은 1980년 5월 24일 오후 1시 50분 광주시 남구 효덕초등학교 부근 마을에서 놀다가 변을 당했다. 11공수특전여단 계엄군들은 시민군과 총격전을 하다가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더보기
‘소환 불응’ 전두환, 학살 혐의로 법정 세울 수 있나? ‘소환 불응’ 전두환, 학살 혐의로 법정 세울 수 있나? 전두환 검찰 소환 불응…“광주와 관련없다”고 주장 박경규 경북대 박사 “국제범죄로 다시 기소해 처벌 가능” [한겨레] 광주/정대하 기자 | 등록 : 2018-03-11 18:32 | 수정 : 2018-03-11 20:20 5·18 명예훼손 관련 혐의로 고소당한 전두환이 검찰 소환에 두 차례나 응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행위를 바로잡으려면 국제범죄 시각에서 5·18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광주지검 쪽 말을 종합하면, 전두환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두 차례나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지만 출석하지 않고 진술서만 냈다. 전두환은 진술서에서 “5·18은 폭동이고 북한이 개입했으며 헬기 사.. 더보기
5·18 계엄군,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다 5·18 계엄군,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다 당시 육본 작성한 2급 비밀 문서 ‘충정작전’서 첫 확인 붙잡은 사람은 ‘포로’…광주 재진입 작전 때 기록한 듯 [경향신문] 강현석 기자 | 입력 : 2017.08.31 06:00:01 | 수정 : 2017.08.31 06:01:00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진압 작전을 펼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군 기록이 처음 발견됐다. 군에 붙잡힌 시민은 ‘포로’로 표현됐다. 경향신문이 30일 5·18 당시 작성된 ‘충정작전’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확인한 결과 계엄군은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다. ‘2급 비밀’로 지정된 이 문서는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가 작성한 것이다. ‘충정작전’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