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死大江

문화재 파묻는 ‘4대강’ 고고학계가 혀를 찬다

문화재 파묻는 ‘4대강’ 고고학계가 혀를 찬다
보존 앞장서야할 문화재청, 정보 숨긴채 속도전 앞장
함안보 부근 선사유적지 발굴도 않고 준설토 덮어




“유적이 빤히 비치는데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은 발굴 정보를 감추고, 학회는 현황 파악도 못했어요. 이게 예의주시하는 겁니까?”

지난 4일 대전 한남대에서 열린 한국고고학회 총회는 4대강 유적 조사의 부실을 성토하는 회원 학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4대강 유적 조사의 주축인 고고학계 전문가들이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유적의 지형 조건에 충실한 확인 조사가 기본인 고고학 원칙을 문화재청이 앞장서 뒤흔든다는 비판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내 학계 최대 단체인 한국고고학회가 ‘눈치’만 보며 방관한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발단은 지난 6월 낙동강 4대강 사업지구인 경남 창녕, 함안 농지 리모델링(강변에서 파낸 흙을 배후 농경지에 쌓는 것) 지역에서 시작됐다. 유적층 가능성이 높은 퇴적 충적지인 이곳을 조사한 상당수 발굴기관들이 단 하루 현장 확인을 거쳐 유적이 없다는 보고를 올렸고, 그 뒤 준설토가 3~7m 높이로 뒤덮인 사례가 일부 학자들의 자체조사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뒤늦게 유적 훼손 우려가 확산됐고, 지난 1일 전국 고고학 교수 30명이 모여 4대강 유적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 불똥이 한국고고학회 총회까지 미친 것이다. 회원들의 질책에 당황한 신경철 회장(부산대 교수) 등 학회 집행부는 지난 16일 유적보존소위를 열고 이달 말부터 전국 실태 조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발굴기관들과 문화재청이 정보 공개를 기피해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4대강 유적 조사는 속도전을 거듭해왔다. 11월 현재 조사 지역 166건 가운데 70%를 넘는 120여곳의 조사가 끝나 내년 상반기 중 완료될 전망이다. 그러나 올 7월 이후 낙동강변에서 농지 리모델링 부실조사 사례가 공개되고, 북한강, 금강 일대에서도 주목되는 선사, 고대 유적들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4대 강 사업 낙단보 공사 중 발견 된 고려시대 마애보살좌상. 공사 중 오른쪽 상단 후광 부위에 큰 구멍이 뚫렸다.


쟁점인 농지 리모델링 부실조사의 경우 발굴기관들이 모호한 현장확인만으로 유적이 없다고 단정했고, 지도·감독 기관인 문화재청도 부실 조사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경남 창녕·함안 유적의 경우 국내 최고의 뱃조각이 나온 비봉리 패총(사적 486호) 부근이어서 발굴조사가 필수적이었지만, 이를 무시한 채 리모델링 지역으로 고시했고, 이후 형질변경 등에 따른 유적 파괴에 대처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발굴기관 연구원은 “조사지역이 대부분 4m 이상 지하에 유적이 묻힌 충적지인데, 땅 표면이 훼손된 경작 지역이란 것만 내세워 기본적인 지표·시굴 조사 등을 생략한 것부터 잘못”이라며 “빨리 조사하라는 문화재청과 사업자 쪽 압박이 계속됐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확인된 다른 4대강 유적들도 논란에 휩싸였다. 북한강변의 춘천 중도 선사 유적은 학계의 반대에도 새 제방 쌓기를 강행할 방침이고, 화천 원천리 백제 마을 터나 금강변 연기 나성리 백제 물류 터는 유적을 흙으로 덮는 공원화 계획이 추진돼 입길에 올랐다.

이청규 영남대 교수(고고학)는 “유적 보존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할 문화재청이 신속한 조사 절차에만 급급한 것이 논란의 근본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문화재청 쪽은 “부실조사 문제는 전적으로 학계 차원에서 해결할 성격”이라고 밝혀 시각차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