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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의료 민영화

[한겨레21] 의료상업화 보고서 ① 병원 상업화, MRI를 찍어보다

병원 상업화, MRI를 찍어보다
[표지이야기]
[기획연재 ‘병원 OTL - 의료상업화 보고서’ ① 과잉 진료 권하는 병원]
‘생명 OTL’ 김기태 기자가 모의 환자로 척추병원 두 곳의 진료 받고 비교·분석한 의료 상업화의 속살…
충분한 문진 없이 MRI 촬영 권하는 유명 척추병원에서 급증한 디스크 수술, 과잉 진료의 원인을 보다

[한겨레] 글 김기태 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 등록 : 2012.05.05 13:02 | 수정 : 2012.05.05 20:04


암센터와 중증외상센터.
한국 의료계의 현주소를 한눈에 조망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검색창에 저 두 구절을 한 번씩 번갈아 쳐보면 된다. 먼저 ‘암센터’를 쳐보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굵직한 대형 병원들의 이름을 내건 암센터의 누리집 수십 개가 줄을 선다. 암센터는 지방의 작은 병원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뻗어나갔다. 이번에는 ‘중증외상센터’를 입력해보자. 여기는 황무지다. 중증외상센터라는 이름을 내건 누리집은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센터 설립 무산’ ‘설립 차일피일’ 등의 제목을 단 글만 줄줄이 이어진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물론 암(28.3%)이었지만, 외상도 세 번째(9.1%)로 무서운 저승사자였다. 의료 자원이 이토록 암으로 편중된 현상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서글프게도, 간단하다. 암센터는 돈이 되고, 중증외상센터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 원리에 따라 병원들이 바글바글 한쪽으로 몰려가는 동안, 생명의 논리는 반대편에서 조금씩 허물어졌다. 대가는 산 자의 목숨이었다. 중증외상센터가 제대로 갖춰졌다면 한국에서 해마다 줄일 수 있는 죽음은 1만 건으로 추산된다. 이 서글픈 이야기는 의료 분야에서 시장 실패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겨레21>은 앞으로 연재를 통해 한국 병원 상업화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첫 회는 척추와 치질 질환을 둘러싼 난맥상이다. 상업화로 달려가는 병원을 손가락질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런 병원을 양산한 우리의 시스템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다.
_편집자

▲ 서울 번화가에 있는 한 척추전문병원의 벽에 붙어 있는 금일 진료 현황판의 모습. 지난 10년 사이 한국의 척추 수술 건수는 6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인의 척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병원이오.”

택시 기사는 바로 알아들었다. 두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택시는 병원 앞에 금방 멈춰섰다. 꽤나 유명한 병원인가 보다. 그럴 법도 했다. 병원 건물은 도심 번화가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기자는 오늘 허리가 아픈 환자로 이곳을 찾았다. 증상은 간단했다. “지난 한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하루에 대여섯 번씩 통증이 있다. 특별한 원인은 없고, 통증 외에 다른 문제는 없다.” 기자는 오늘 두 곳의 병원을 찾는다. 한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A병원이고, 다른 곳은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B척추전문병원이었다. 두 곳의 진단 결과를 비교할 참이었다.

▲ 서울의 한 척추병원의 환자 대기실 모습. 척추 질환 관련 분야는 지난 10년 동안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이며 호황을 누렸다.


2주 만에 “MRI를 찍으셔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찾은 곳이 B척추전문병원이었다. 병원 정문 앞에서 호흡을 한번 몰아쉬고 로비로 들어섰다. 1층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납을 기다리는 로비는 마치 은행 같았다. 인파를 한 줄로 세울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접수를 마치고 2층 진찰실로 향했다. 2층 넓은 로비에는 환자 40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5~6개의 진찰실이 사방으로 환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진찰실 옆 벽에는 전자게시판이 대기환자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병원은 세계 첨단 척추 치료를 해주며, 보건복지부 심사 의료기관 평가에서도 우수한 등급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서울과 지방 각지에 있는 자매병원의 건물 사진도 함께 걸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확실히 ‘잘나가는’ 병원이었다.

중년의 의사는 기자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직접 환자의 몸을 두드리고 점검하는 ‘신체검사’(Physical Examination)는 없었다. 대신 아픈 곳을 손으로 짚어보라고 했다. 허리를 가리켰다. 기본적인 질문이 오갔다. 언제부터 아팠나? 다른 곳에서 검사받은 적은 있나? 언제부터 아팠나? 앉아 있을 때만 아픈가? 항상 아픈가? 대소변을 잘 보는가? 직업은? 당뇨 또는 혈압 때문에 아픈 곳은 없나? 준비해온 대로 답을 했다. 기자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오라고 했다.

30분 뒤, 기자의 허리뼈를 담은 엑스레이 사진 4장을 두고 의사와 다시 마주 앉았다. 의사가 말했다. “뼈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당연했다. 기자의 허리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말하자면, 모의 환자 실험이었다. 환자라고 주장하는 멀쩡한 사람에 대한 병원의 진단을 점검하자는 취지였다. 기자는 문진 및 신체검사에 대해 정형준 적십자병원 재활의학과장의 자문을 미리 받아놓았다. 이에 따라 준비된 답을 했다. B병원 의사는 말을 이었다. “허리는 뼈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디스크나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허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확인하려면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으셔야 해요.” 의사는 잠시 기자를 바라봤다. 그냥 “예”라고만 답하고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의사가 다시 말했다. “MRI는 비싸서 70만원 정도 하거든요.” “70만원이오?” “예, 그러니까 검사비가 부담이 안 된다면 사실 지금이라도 MRI 검사를 하는 게, 확인하는 게 낫긴 한데….” 일단 증상을 지켜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요. 비싼 검사니까. 그래도 안 좋아지면, 그때는 그 안쪽에 문제가 있는 거니까 MRI를 찍어서 확인하는 게 낫겠어요. 일단 약을 드시고, 물리치료를 받으시고요. 이틀에 한 번 정도 병원에 나오실 수 있나요?” 직장에서 병원이 멀어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러면 물리치료는 댁이나 사무실 근처 병원을 찾아서 하시죠. 저한테는 2주 뒤에 오세요.” 진료비는 1만3060원, 방사선 검사료가 1만4860원이었다.

2주가 흘렀다. 의사와 다시 마주 앉았다. 약을 먹으니, 통증이 완화되긴 했지만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답이 돌아왔다. “MRI를 찍으셔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보통 이게 지금 그 정도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많이 좋아지는데…”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의사의 권유였다. 그 권유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당장 허리가 아픈 환자라면 더욱 그럴 터였다. 모의 환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환자의 눈치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약을 조금 더 지어줄 테니까, 물리치료를 받으세요. 2주 뒤 MRI 처방을 내줄 테니, 그때 봐서 별로 안 좋다고 하면 비용이 들더라도…. 미리 예약을 하면 나중에 기다리지 않고 편하실 겁니다. 그때 MRI와 피 검사를 하세요. 약은 2주일치를 더 주겠습니다.” 그렇게 2주 뒤 MRI 촬영은 예약됐다. 병원 1층에 내려가서 비용을 물었다. MRI가 68만원, 피검사 비용이 8200원이었다. 그날 진료비는 9100원이었다. B병원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 실험은 여기까지였다.

B병원에서는 처음부터 MRI 촬영을 권유했고, A병원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두 곳에서 의사의 어투도 달랐다. 한쪽은 권유에 가까웠고, 다른 곳은 질문에 근접했다. 약을 복용하는 기간도 B병원이 A병원보다 길었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B병원이 A병원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1/5 vs 1/11, 현격히 다른 수술비율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A공공병원에도 갔다.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진단과 처방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이곳도 환자들로 북적대기는 마찬가지였다. 50대로 보이는 의사와 마주했다. 앞선 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증상을 읊었다. 여기서부터 달랐다. 신체검사가 있었다. 의사는 기자를 환자용 침대에 눕혔다. 먼저 엎드린 자세에서 발목을 짚고 힘을 주게 하고, 누운 자세에서 무릎을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았다. 아픈지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문진도 이어졌다. 질문 내용은 앞선 A병원과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의사의 답은 달랐다. “단순 요통인 것 같은데….” 그는 한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 6장을 찍었다. 촬영 건수는 이곳이 더 많았다. 물론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도 다른 결론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의사는 일주일치만 약을 처방했다. 그래도 통증이 멈추지 않으면 다시 병원을 찾아오라고 했다.

2주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역시 B병원에서와 똑같이 증상을 말했다. 의사는 물었다. “MRI를 한번 찍어볼까요?” 답을 하지 않았다. “MRI를 찍어볼까요, 어떻게 할까요? 검사비가 비싸니까 지켜볼까요?”라고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일단 증상을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 2주 정도 보고 계속 아프면 MRI를 찍고 괜찮아지면 예약을 취소하시죠.” 질문은 다시 이어졌다. “약은 어떻게 할까요? 2주 정도 더 지어줄까, 아니면 약 없이 지내볼래요?” 약을 먹어서 통증은 완화됐다고 답했다. “그러면 약을 일주일만 더 지어 먹어보고, 그다음에 약 없이 지내보고 아프면 다시 오세요.” 이곳에서도 MRI를 미리 예약해두라고 주문했다. 진료실을 나오며 MRI 가격을 물어보았다. 50만원이었다.

어찌 보면 미세한 차이였다. B병원에서는 처음부터 MRI 촬영을 권유했고, A병원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두 곳에서 의사의 어투도 달랐다. 한쪽은 권유에 가까웠고, 다른 곳은 질문에 근접했다. MRI 가격도 달랐고, 의사의 신체검사 내용도 달랐다. 한쪽 병원에서는 혈액 검사도 덤으로 붙었다. 약을 복용하는 기간도 B병원이 A병원보다 길었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B병원이 A병원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B병원에 간 환자들은 A병원보다 더 많은 검사와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그럴까. 주승용 민주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자료를 넘겨받았다. 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자료가 정리돼 있었다.

척추수술 건수를 확인해보았다. B병원에는 지난해 척추 관련 환자 3만987명이 찾아왔고, 그 가운데 6278명이 수술을 받았다. 병원을 찾은 환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수술을 받았다. 이 통계는 A병원의 통계와 확실히 대비된다. 지난해 A병원을 찾은 척추 관련 외래환자 7962명 가운데 수술을 받은 환자는 741명이었다. 그러니까, 11명 가운데 1명꼴이었다. B병원이 A병원보다 확실히 공격적이었다. 물론,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다. 척추 전문 병원인 B병원에 중증 환자가 몰릴 가능성이 컸다. 더 아픈 환자들이 오면 더 많이 수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1999~2010년 수술 6.3배 증가의 비밀

B병원을 다른 척추전문병원들과 수평적으로 비교하면 어떨까. 심평원 자료는 전국 16개 척추전문병원의 통계도 담고 있었다. 이 병원들에서 내원환자 대비 수술환자의 비율은 평균 14.9%였다. B병원은 모든 척추전문병원 가운데서도 유독 수술 빈도가 높았다(표1 참조). 같은 척추전문병원이라도 수술 비율이 6.2%인 곳도 있었다. 환자 처지에서 보면, 어느 척추전문병원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수술 비율은 3배 넘게 차이가 났다. B병원이 다른 척추전문병원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수술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과잉의료 혐의가 어른거린다. 물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에서 수술을 더 많이 할수록, 검사를 더 많이 할수록 병원에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과잉의료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필수정형외과학>이라는 책이 있다. 대한정형외과학회에서 낸 교과서다. 의대생들이라면 흔히 읽는다. 이 책의 154쪽을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흔히 디스크로 알려진 ‘추간판탈출증’ 치료법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많은 예에서 증상의 호전을 보이며 간혹 재발이 있을 수 있다. 보존적 치료에 실패하여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수술은 보존적 요법으로 6~12주간의 보전적 요법에도 효과가 없는 경우…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척추 관련 한 전문의는 조금 더 쉽게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급성 요통은 치료가 없어도 자연 치유가 쉽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2주 이내에 80%, 4주 이내에 90%가 좋아진다. 대부분은 근육경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급성요통은 마비가 오는 식으로 긴급하게 처치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2~4주 동안 쉬면 된다. 필요하다면 소염진통제를 먹거나 물리치료 받으며 통증이 완화하길 기다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후까지 통증이 오래 지속되거나 긴급 수술이 필요할 것 같은 신경 이상이 있을 때만 CT나 MRI 같은 검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많은 의사들이 요통을 하려고 한다. 정형외과, 내과, 통증클리닉, 신경외과, 그리고 한의사들도 말이다. 요통은 아주 흔한 질환이고 80~90%가 저절로 좋아지는데, 환자들은 자기가 병원에서 받은 치료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까, 홍보만 잘 하면 유명해 질 수 있다. 이른바 명의가 되기가 쉽다는 말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요통을 의학적 기준없이 상업적으로 다루면, 환자의 80~90%는 늘 과잉 진료를 할 가능성이 있다.”

‘명의가 쉽게 되는’ 척추 수술이 확실히 인기가 있긴 했나 보다. 수술 건수는 200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척추질환이 마치 유행성 독감처럼 번진 듯 하다. 박은수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심평원 자료를 보면, 2008년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 수는 7만9418명에서 2010년 10만368명으로 2년 사이 26.3%나 증가했다. 수술환자 수로는 두 해 동안 2만 명이나 증가했다. 척추 수술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한두 해 사이 반짝하는 유행도 아니었다. 심평원의 또 다른 자료를 보면, 2002년 4만1573건이던 척추 수술 입원 건이 2006년 10만1184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불과 4년 사이에 2.4배나 증가했다. 2003년 자료를 봐도, 1999∼2001년 수술받은 환자 수가 72%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1999년 1만5000건 남짓하던 척추 수술 환자는 10년 남짓한 사이에 10만 건을 넘어섰다. 6배 넘게 증가했다. 이쯤 되면 ‘폭발’이다.

▲ 김기태 기자가 지난 4월24일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정형준 재활의학과 과장한테 문진을 받고 있다. 디스크 여부를 가리려면 흔히 이런 검사를 받는다. B척추전문병원에서는 이런 검사가 없었다.


의사 10명 중 7명 “척추 수술 과하다”

의사들이 보기에도 심했나 보다. 2007년 심평원이 척추 수술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222명 가운데 55.7%가 ‘(척추 수술이)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12.9%가 ‘매우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10명 가운데 7명꼴로 척추 수술이 과하다고 밝힌 것이다. ‘보통이다’라는 응답은 29%, ‘적게 시행되고 있다’는 응답은 2.4%였다. ‘매우 적게 시행되고 있다’고 답한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 조사 뒤에도 척추 수술은 줄지 않고 오히려 꾸준히 늘었다. 의식과 행동은 따로 움직였다.

척추 수술이 이렇게까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심평원의 설문을 보면, 척추 수술 건수가 많다고 응답한 의사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중복응답이 가능한 설문에서, 의사들은 ‘고령화에 따른 유병률 증가’(77.3%)와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도입’(64.9%)을 가장 많이 꼽았다. ‘환자들의 신속한 증상 완화 요구’(49.8%)와 ‘의사의 수술 유도’(43.8%) 때문이라는 답도 뒤를 이었다. 불필요한 수술이 적지 않다는 정황도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인구 고령화가 척추 수술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 될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65살 이상 인구는 2000년 337만 명에서 2010년 542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렇지만 10년 사이 고령 인구가 60% 정도 늘었다고 해서, 같은 기간 6배를 넘는 수술 증가율을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다.

‘환자들의 증상 완화 요구’도 부차적인 변수로 보인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수술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수술을 하지 않는 의사를 오히려 불신하는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건강에 더 좋은 선택을 하도록 환자를 설득하고 설명하는 것이 전문가인 의사의 책임이다. 척추 수술 증가의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는 것은 부분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책임한 응답이다.” 한 척추 전공 전문의의 지적이다.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도입’에 대해서 다른 정형외과 교수는 “신의료기술 때문에 과거에는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수술이 가능해진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대부분 고가의 장비와 재료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병원들이 상업적 이익을 남기려고 수술을 더 하고, 고가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흔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전자와 후자의 비중은 5 대 95 정도”라고 덧붙였다.

“많은 예에서 증상의 호전을 보이며 간혹 재발이 있을 수 있다. 보존적 치료에 실패하여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수술은 보존적 요법으로 6~12주간의 보전적 요법에도 효과가 없는 경우…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수정형외과학> 중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치료법


의료 상업화 원리, ‘매출’에 ‘인센티브’

‘의사들의 수술 유도’는 어떻게 풀이될까.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병원, 심지어 지방의료원이나 국립대학병원에서도 ‘매출’을 늘리는 의사에게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준다. 일반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의사들로서는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보다 검사라도 하나 더 받게 하는 것이 병원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인센티브도 올리는 길이 된다. 물론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건강을 도외시하고 돈벌이에만 치중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마당에 의사들이 이 부분을 무시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의료 상업화의 길목에서 환자의 건강과 의사의 이해관계는 불길한 길항관계에 놓인다.

정부는 지난 4월17일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외국 의료기관의 설립에 관한 규정을 담은 ‘경제자유구역 지정·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 경제신문은 이를 두고 “송도에 외국 영리병원 10년 만에 설립 청신호”라고 보도했다. 한국 의료시장은 그렇게 또 상업화의 길로 한 걸음 더 이동했다.

척추 수술 ‘광풍’의 이면

10명 중 3명, ‘묻지마 수술’ 의심

척추 수술 ‘광풍’의 이면을 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한겨레21>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2008년 작성한 보고서 ‘척추 수술 예비 평가를 통한 질 평가 모형 개발’을 주승용 민주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받았다. 보고서를 보면, 병원들은 환자를 위해 기본적인 ‘보존적인 시술’도 하지 않은 사례가 허다했다. 가장 흔한 허리 질환인 ‘디스크’의 경우 통증을 느끼는 환자의 90% 이상은 한두 달 안에 자연치유가 된다는 게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이를 무시하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술을 하는 병원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많았다.

심평원이 2006년 1~6월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 수가 50명 이상인 의료기관 197개소의 치료 내용을 분석한 결과, 약물이나 물리치료를 이용해 이른바 ‘보존적 치료’를 수행한 환자의 비율이 10% 미만인 병원이 무려 98곳(49.8%)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하면, 전체 병원 가운데 절반이 이른바 ‘묻지마 수술’을 자행했다는 의미다. 심평원의 또 다른 조사에서는 척추 수술 횟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의료기관 12곳의 환자 798명의 치료 기록을 분석했다. 이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의원급을 제외한 병원 및 종합병원을 포함한 12개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798명) 가운데 증상이 나타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환자가 256명이었다. 척추 수술을 받은 10명 가운데 3명은 보존적 치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수술대로 향했다는 뜻이다. 일부 응급환자가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응급’한 수술의 비율은 지나치게 높았다.

충남 홍성에 사는 회사원 이수자(47·가명)씨는 이런 수술의 ‘자동벨트’ 속까지 빨려 들어갔다가 겨우 나온 경우였다. 지난해 7월까지 그는 허리를 오래 앓았다. 허리 통증 때문에 잠을 깨기도 했다. 시골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차도가 없자, 결국 서울의 이름난 척추전문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MRI와 CT를 찍고 나니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디스크 5번이 파열됐다는 말을 들었다. 금요일에 입원을 했고, 다음 월요일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막상 입원을 하니 다른 환자들보다는 자신의 상태가 나아 보였다. 300만원이나 되는 수술비도 걱정이었다. 수술을 받으려니 덜컥 겁도 났다. 무작정 병원을 걸어나왔다. 알음알음으로 다른 병원을 찾았다. 새 병원에서는 의사가 한 달치 약을 지어줬다.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약값은 2만원 남짓했다. 약을 먹으며 몸은 나아졌다. 그는 “수술받지 않고 낫게 돼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심평원의 보고서에서는 수술 비용을 부풀린 듯한 정황도 엿보였다. 조사 대상 병원 가운데 척추 고정 재료나 인공 디스크를 이용한 고가의 재료를 이용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 환자의 비율에서도 병원별로 큰 차이가 벌어졌다. 예를 들어 한 병원에서는 비급여 뼈 재료를 사용한 수술을 한 비율이 전체 수술 가운데 3.8%에 불과했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무려 60.5%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고가의 척추 고정 재료 혹은 인공 디스크를 이용해서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 시술 건수가 한 병원에서는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해 그 비율이 50%인 병원도 있었다. 병원에 따라 고가의 수술을 한 비중이 크게 차이가 난 것이다. 지역·병원별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편차는 지나치게 컸다.


출처 : 병원 상업화, MRI를 찍어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