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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Anti SamSung

‘삼성맨’ 아들 잃고 눈물로 보내는 또 하나의 가족

‘삼성맨’ 아들 잃고 눈물로 보내는 또 하나의 가족


연미정씨(28)는 요즘 채 피지도 못하고 스물여덟에 죽은 오빠 제욱씨의 그림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연씨는 오빠가 남겨둔 명함첩을 옆에 두고 하루 종일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러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명함첩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오빠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작업환경이 어땠는지 따위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일로 매일 바쁘다. 왜, 무엇이, 누가 오빠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미정씨는 밝히고 싶다. 그게 한줌 재로 변해 꽃밭에 뿌려진 채 말이 없는 오빠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빠 제욱씨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후 2004년 6월 삼성전자 탕정 공장(LCD 사업부)에 입사했다. 입사하던 해 신설된 공장에서 연씨는 LCD TFT(7라인․DRY-ETCH공정)을 맡아 라인을 셋업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해왔다. 라인의 기계 사고가 없는 날은 돌아보면서 기계를 점검하고, 사고가 있는 날에는 사고 원인을 밝혀 처리결과를 적어 보고했다.

ⓒ시사IN 장일호 오빠를 따라 나란히 삼성에 다니던 연미정씨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미정씨는 오빠가 왜 무엇 때문에 한 줌 재로 변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삼성맨'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던 연씨는 동기들 보다 진급이 빨랐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내 사내 '제안상'을 받기도 했다. 제욱씨는 동생 미정씨한테도 삼성이 꿈의 직장이라고 자랑했고 취직을 권했다. 미정씨 역시 지난 2007년부터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에 다녔다. 그녀는 지난 2월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다.

미정씨는 "지금은 모두 치워 없지만, 오빠 방 안에는 삼성에서 받은 이런 저런 상장들이 장식 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제욱씨는 고과점수가 높아야만 당첨될 수 있었던 회사 사원아파트에 당첨되기도 했다. '삼성맨', 모범 사원이었다. 그러나 그 아파트에서 몇 개월을 채 살지 못했다.

지난 2008년 2월 제욱씨는 '종격동 악성신생물'이라는 그때까지 듣지도 못했던 희귀암에 걸렸다. 지난해 7월, 그는 삼성맨이 된 지 5년 2개월만에, 발병한 지 1년 5개월만에 숨졌다. 스물여덟,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뒤로 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미정씨는 "오빠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도 회사를 갔었다. 병원에도 노트북 들고 와서 일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미정씨네 가족은 제욱씨를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멀쩡하고 건강하던 그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시사IN 장일호 제욱씨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보다 눈물을 쏟는 어머니 최술연씨.

한 입사동료는 미정씨에게 오빠가 일했던 공정에서 유해물질로 알려진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따위를 사용했다고 했다. 산업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이소프로필알코올은 기준치 이상이 노출되면 중추신경계는 물론 눈과 피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폐울혈과 신장손상 등의 증세도 불러올 수 있는 위험물질이다.

LCD공정 중 TFT공정은 반도체 제작 공정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또한 연씨가 일했던 식각공정(Etching)에서 근무했고, IPA 등 유해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연씨의 담당의한테 "이건 후진국 병이다"라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제보자 55명 중에서도 삼성전자 LCD 공정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 등의 희귀암을 얻은 사람은 6명이나 된다. 이들 중 기흥공장 LCD 사업부에서 일했던 한혜경씨는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현재 장애 1급 상태다. 한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심사청구를 넣었으나 지난 1월 불승인 이후 재심사를 요청한 상태다.

제욱씨 가족 역시 지난 1월 산재신청을 했지만 3월에 불승인을 받았다. 불승인 이후 삼성 관계자들은 가족을 접촉했다. 미정씨는 "삼성에서 성의 표시를 하겠다고 했다. 산재 보상을 받을 경우와 비슷한 금액을 주겠다고. 오빠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하나도 없었지만, 삼성은 초일류 기업이기 때문에 성의표시를 하는거라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퍼즐 맞추기에 나서고야 대응하는 삼성을 보고 미정씨는 할 말을 잃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산재로 인정받아 회사의 책임을 따지고 싶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단과 회사 앞에서 산재 입증을 당사자가 해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지만, 미정씨는 오빠의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몇몇 동료는 용기 있는 증언을 해주었지만, 동료 대부분은 "잘 모르겠다"라며 입을 닫았다. 증언을 받기가 쉽지 않았지만, 제욱씨의 희귀암과 작업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물증'을 가족들은 가지고 있다. 바로 연씨가 근무했던 기간 동안 병의원을 이용한 기록인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이다.

연씨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보면, 2004년부터 숨지기 직전인 2009년까지 5년간 모두 331번 병의원을 이용했다. 입원과 내원 일수도 566일이나 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 식도염, 피부염을 비롯해 허리통증과 어깨통증으로 진료를 받은 기록은 무려 25쪽 분량이었다. 제욱씨 어머니 최술연씨는 "병원 한 번 다닌 적 없을 정도로 건강한 아이였다. 겨울이면 보드 타러 나디고, 헬스클럽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등 제 몸도 신경 써서 관리했다. 삼성에 다니고 나서는 제욱이가 항상 피곤하다고는 했었는데, 이렇게까지 병원 다닌 줄 몰랐다. 이걸 보니 피부염, 어깨, 허리, 호흡기 등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삼성 에스원에 다니며 기흥공장 후문에 근무했던 동생 미정씨는 지난 2월28일자로 회사를 그만뒀다. 진급을 앞두고 있었지만 오빠 생각에 괴로웠다고 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시위하러 오는 반올림 사람들을 보면 오빠 생각이 많이 나서 계속 마음이 쓰이고 죄책감이 들었다." 유난히 오빠와 사이가 좋았던 미정씨 역시 끝내 눈물을 쏟았다. "시집 갈 때 오빠가 만든 텔레비전으로 혼수를 해줄게"라고 했던 오빠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연씨는 오빠를 잃은 후 벌써 1년 가까이 우울증과 신경성 위염으로 계속 병원을 다니고 있다. 어머니 최씨 역시 마찬가지다. 최씨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최씨는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시사IN 장일호 '꿈의 직장'인 삼성에 나란히 입사한 제욱씨와 미정씨. 유난히 오빠와 사이가 좋았던 미정씨는 죄책감 때문에 계속 삼성을 다닐 수 없었다.

가족들은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루는 반올림 도움을 받아 6월14일까지 산재 재심사 청구를 할 작정이다. 가족들이 반올림을 통해서 산재 재심사 청구를 한다는 걸 알게 된 삼성 관계자는 어머니 최씨에게 "회사를 믿고 회사를 통해서 산재신청을 해라. 반올림을 통해서 하게 되면 우리가 제시했던 보상금도 줄 수 없다"라고 전했다. 삼성의 협박에 가까운 제안에 어머니 최씨는 가슴을 쳤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최씨는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골리앗 삼성과의 싸움이지만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최씨는 울면서 말했다. "돈으로 목숨을 바꿀 수 있나. 회사가 잘못을 인정 안하고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억울하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아들 생각에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제욱이 죽은 후 맨날 술로 살던 아빠가 그러더라. 돈 필요 없다고. 우리 제욱이처럼 아픈 사람이 다시 나오지 않게 싸우자고. 다른 아들들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해볼 것이다. 죽어도 탕정 공장 앞에서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