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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Anti SamSung

상업화의 배후, ‘의산복합체’ 삼성

상업화의 배후, ‘의산복합체’ 삼성
[기획연재 ‘병원 OTL- 의료 상업화 보고서’ 마지막회-의료를 시장으로 내몬 거대자본]
의과대학, 대형 병원,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료기기 공급업체 거느린 ‘의산복합체’ 삼성
의료정책 좌지우지하는 거대 의료자본과 발맞추는 정부

[한겨레21 제919호] 김기태 기자 | 2012.07.16


군산복합체.
1961년 1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연설에서 거대한 무기산업, 이른바 군산복합체가 엄청난 정치·경제적 힘을 획득하고 국가방위 문제에 관한 공공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이때 처음 ‘정체’가 확인된 군산복합체는 그 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의 배후로 종종 지목됐다. 전쟁이 무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생산하는 자본이 ‘소비시장’으로서 전쟁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의산복합체.
1980년 아널드 렐먼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는 저명한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쓴 논문에서 ‘의산복합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무기산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보건의료 산업은 공공정책에 영향을 주려고 자신의 강력한 로비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의산복합체란 의사, 병원, 의과대학과 보험회사, 제약업체, 의료기기 공급업자, 기타 영리회사의 연합체를 가리킨다. 폴 스타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사회학)는 <미국 의료의 사회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너무나 밀접히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한 체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의료의 특징·구조·분포에 대한 공동 전선을 펼칠 수 있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

미국 학자들이 걱정한 ‘거대한 괴물’ 의산복합체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국가의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의료자본의 몸뚱이는 한국에서도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_편집자


▲ 삼성은 2010년 5월 제약과 의료기기 사업을 미래 5대 주력 사업 가운데 두 가지로 선정했다. 이듬해 2월 국내 최대 의료기기 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한 데 이어, 4월에는 세계적인 바이오제약 기업인 퀸타일스와 합작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세웠다. ‘의료왕국’을 만들어가는 삼성의 발걸음이 빠르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한겨레21 탁기형


‘멈춰선 메디컬 코리아’.

지난해 7월11일, <중앙일보>는 1면 머리에 커다란 기획 기사를 얹었다. 신문은 김대중 정권 이래 추진되던 영리병원 도입 계획이 진척되지 않는다고 따졌다. 인도와 타이 등이 외국 환자들을 대거 유치하고 있으니, 한국도 영리병원을 하루빨리 도입해 외화벌이에 나서야 한다는 요지였다. <중앙일보>의 집중력은 돋보였다. 사흘 연속 비슷한 내용의 기획 기사를 1면에 비중 있게 배치했다. 의료민영화를 약속한 이명박 정부도 여론의 반발에 밀려 숨을 고르던 차였다. <중앙일보>의 기획은 마치 미리 약속된 ‘레이스’의 신호탄 같았다. 기획을 시작한 지 3일째 청와대에서 화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이 투자병원 법안을 8월 중에 국회에서 처리하도록 합의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를 다시 1면 머리기사로 받았다. 청와대와 유력 일간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영리법인의 불씨를 살려냈다.

▲ 이건희 삼성회장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들어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삼성 5대 ‘신수종’ 사업 중 둘이 의료 분야

청와대발 뉴스가 나온 날, 보건복지부는 황급히 ‘보도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당시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투자병원 도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몰아붙이던 참이었다. 복지부는 바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도입을 허용하기로 했으며, 이에 따른 관련 법률의 처리에 미온적이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해명했다. 영리법인을 둘러싸고 그나마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온 복지부로서는 이례적인 ‘전향’이었다.

시계를 6년 전으로 돌려보면 복지부의 변화가 확실히 체감된다. 복지부는 2005년 11월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미국의 영리병원의 문제점과 한국에 주는 교훈’이라는 자료를 보면 영리병원은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애물단지였다. 자료는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사망률이 2% 더 높고, 행정관리비도 40% 정도 높다”고 전했다. 영리병원이 잘 고치지도 못할뿐더러 비용도 많이 든다"는 얘기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때였다.

<중앙일보>가 팔을 걷어붙이기 14개월 전인 2010년 5월1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는 삼성그룹의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뒤 처음으로 열린 회의였다. 이 회장의 첫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기대에 부응하는 굵직한 발표가 나왔다. 삼성은 미래에 그룹을 먹여살릴 5개 신사업 분야를 선정하고, 이 분야를 대상으로 2020년까지 총 23조3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신년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제품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이 ‘찍은’ 5대 사업 분야는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였다. 흥미롭게도 의료 분야가 삼성의 ‘신수종’ 사업의 다섯 분야 가운데 두 가지를 차지했다. 삼성에는 이미 대형 병원이 있었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예상됐다. 현장으로 복귀한 이 회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룹 전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성은 이듬해 4월 바이오의약품 생산사업을 진행하려고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등이 지분에 참여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신참 회사가 그리는 비전은 원대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에 2020년까지 총 2조1천억원을 투자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및 연구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1단계 시설은 올해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의료원의 치료 및 바이오제약 사업, 삼성전자의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의료기기 사업 등에서 융·복합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삼성의 행보는 폭이 넓다. 삼성은 지난해 2월 국내 최대 의료 장비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11월 미국 심장 질환 관련 검사 키트 생산업체인 ITC넥서스홀딩컴퍼니도 인수했다. 지난해 7월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삼성은 관련 기업의 인수를 통해서 초음파, 엑스레이, 자기공명영상(MRI) 기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정책 변화 첫 수혜자는 삼성

삼성 자본의 순풍을 받는 삼성메디슨은 쑥쑥 성장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7월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삼성메디슨은 1분기 매출 증가율이 40%를 육박했다. 의료기기 산업은 삼성의 주력인 전자산업과 화학적으로 결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6월 삼성전자는 삼성전자 유럽법인과 삼성메디슨 유럽법인이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의료기기 사업의 유럽 시장 진출을 전자가 나서서 돕겠다는 취지라고 삼성 쪽은 설명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전자와 메디슨의 합병설이 돌기도 했다. 삼성이 의료기기 분야에 쏟는 관심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삼성은 공격적인 진출로 업계에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난 2월 삼성전자가 디지털 엑스레이 기기 ‘XGEO’를 출시하며 중소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에 성큼 들어섰다. 작은 업체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반발도 있었다. 엑스레이 기기는 대당 가격이 1억~3억원대로 저렴한 편이라서 국내 시장에서 수십 개의 중소업체가 경합하고 있었다. 논란 속에도 ‘거인’의 행보는 계속될 예정이다. 삼성은 의료기기 산업에 2020년까지 1조2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이 의료 분야에 보이는 각별한 관심은 지난해 11월 사장단 인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당시 삼성그룹은 윤순봉 삼성석유화학 사장을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 겸 의료사업 일류화 추진단장으로 임명했다. 이 사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삼성전략기획실 홍보팀장 등을 거친, 그룹 안에서도 대표적인 ‘이재용 인맥’으로 꼽히는 인사다. 윤 사장은 삼성의 의료 관련 분야의 중심으로서 삼성서울병원을 맡으며 그룹 안의 의료사업 전반을 담당하는 중책을 짊어지게 됐다. 삼성서울병원의 내부 관계자는 “의료인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가 병원의 경영자로 오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적잖은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의사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윤 사장의 임명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새 사장이 불러온 변화는 서서히 체감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이르면 7월 말부터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사장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중평이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인센티브 제도는 종종 의사들 사이에서 과도한 실적 경쟁을 유도하고, 결국 과잉 진단과 과잉 시술로 이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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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정부가 인천 송도에서 추진하는 영리법인 병원에도 지분을 얹고 있다. 국내 첫 투자개방형 병원 모델로 관심을 끌고 있는 송도국제병원에 삼성증권과 삼성물산 등이 일본계 자본인 다이와사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지분뿐 아니다. 삼성의 비전은 종종 정부 정책과 그림자 이미지처럼 겹쳤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의 과제’ 보고서를 보면, 첫 번째 과제로 “투자 유치 및 경쟁적 환경 조성에 유리하므로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고, 또 하나의 과제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듬해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서도 흡사한 대목이 등장했다. 업무보고의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를 위한 세부 실천 방안 두 가지를 보면, 첫째가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검토”, 둘째가 “의료 분야 투자 확대와 다양한 의료서비스 확충을 위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추진”이었다.

정부와 삼성경제연구소의 합은 척척 맞았다. 정책 변화의 혜택이 어디로 돌아갈지도 대략 그려졌다. 첫 번째 영리의료법인은 삼성의 지분이 있는 인천 송도의 국제병원이다.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 업계의 선두주자는 물론 삼성생명이다.


삼성과 정부가 만들 의료상업화의 ‘미래’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에 내놓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보면, 제도 변화와 이에 따른 ‘돈의 흐름’이 깔끔하게 그려진다. 보고서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며 정부의 규제 완화가 폭넓게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의료산업이 불러올 경제 전체의 생산 유발액이 한 해 26조7천억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약 10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의료서비스 산업이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경우 제약업, 의료기기제조업, 위생서비스업 등의 기존 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을 유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고소득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간의 소득계층 간 의료서비스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과대학, 대형 병원,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료기기’를 아우르는 대형 선단을 거느린 ‘의산복합체’ 삼성과 정부가 발맞춰나가는 미래는 그렇게 엿볼 수 있다.


출처 : 상업화의 배후, ‘의산복합체’ 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