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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한겨레] 나는 왜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하는가

나는 왜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하는가
야권후보 지지자 표적집단 심층좌담
“문재인은 약자 보듬고 어긋난 역사 되돌릴 것”
“안철수는 패러다임 바꿀 대한민국 새 운영체제”

[한겨레] 정리 석진환 조혜정 기자 | 등록 : 2012.09.28 18:25 | 수정 : 2012.09.30 11:55


▲ <한겨레> 자료사진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와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는 야권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표적집단 심층좌담’을 진행했다. 심층좌담은 소수의 응답자들과 집중적인 좌담을 통해 정보를 찾아내는 여론조사 기법이다. 좌담엔 문재인(사진 왼쪽)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2명과 안철수(오른쪽) 후보 지지자 2명, 그리고 두 후보 어느 쪽이든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유권자 2명 등 6명이 참여했다. 좌담은 두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와 지지자 특성, 그들이 보는 두 후보의 장단점, 야권단일화에 대한 시각 등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35~45살의 남녀 유권자로 한정했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향후 지지율 추이나 후보 단일화 여부가 수도권 30~40대의 여론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좌담은 25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사회정책연구소 회의실에서 했으며, 진행은 한귀영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았다.


나는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는가?

진행자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게 된 게 언제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부터 좀 소개해달라.

이철성(안철수 지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안철수’가 괜찮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직관적으로 호감이 갔고, 시대 흐름과 맞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또 내년 세계 자본주의 위기가 올 수 있는데, 충격을 최소화하고 그나마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그가 국민에게 거짓되지 않을 것 같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속이지 않을 것 같다.

남태성(문재인 지지)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절제하고, 감정을 추스르며 뒷감당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 정권이 워낙 어긋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역사의 흐름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게 필요한데, 절제된 모습으로 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면에서 문재인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강진구(문재인 지지) 저는 민주당 후보 경선 때 김두관을 지지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재인이 제1야당 후보가 됐다는 점이다. 저는 선뜻 무소속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 정권교체를 하려면 제1야당 후보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문 후보가 국회의원을 지낸 대중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청와대 있으면서 정책 등을 해왔던 사람이고, 이분이 대통령이 되면 최소한 참여정부 때와 유사한 밑그림은 나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나는 참여정부의 밑그림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안철수는 어떤 대통령이 될지 그림이 안 그려진다. 불확실하다.


문재인 지지자
“참여정부 밑그림에 동의…안철수는 그림 안그려져
살아온 이력 바탕 소외층 배려하고 외교도 잘할 것
정치개혁은 개인의지가 중요…국회 돌파력 믿음 가”


하수진(안철수 지지) 결정적인 계기는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 확실해졌다. 보통 정치인들은 말로 국민들과 만나는데, 말은 바뀐다. 하지만 책은 약속들이 명시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의 책을 보면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내 생각과 일치했다. 문재인의 책도 봤는데 그분이 살아왔던 경로는 인간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생각의 방향을 알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도진경(둘 다 지지) 저도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을 봤는데 정말 재미없었다. 어쩜 연설도 못하면서 글도 그렇게 건조한지.(웃음) 하지만 책을 본 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우쭐한 게 없고 강단과 진심이 느껴졌다. 그 뒤 안철수가 등장하고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걸 보면서, 안철수가 대항마인가 생각했다. 지금도 안철수가 괜찮긴 한데, 너무 많이 기다리다 좀 지쳤다. 신중한 것은 좋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약간 독단적인 것은 아닌가. 두 분 중에 누가 되어도 좋지만, 요즘엔 문재인 쪽으로 좀더 기운다.

박성희(둘 다 지지) 모처럼 강한 사람 2명이 겨루는 모습이, 지난 대선에 비해 가슴이 설렌다. 누구를 선택하기 위해 한 사람을 마음속에서 쳐내야 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 문 후보는 소외계층 보듬어주고, 외교안보 분야도 잘할 것 같고. 국정 경험도 있어 안정감을 준다. 안 후보는 대학생들을 투표소로 끌어낼 것 같고 경제 분야나 과학기술 분야에 강점이 있을 것 같다. 둘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연대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저는 단일화되면 그 후보에게 ‘몰빵’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웃음)


두 후보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는?

진행자 두 후보에 대해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어떤가?

박(둘 다) 어떤 분이 문재인은 ‘충견’의 관상을 가졌다고 하고, 안철수는 ‘백곰’의 관상인데 아직 얼굴 아래쪽은 약해서 ‘코알라’ 이미지가 겹친다고 하더라.(웃음)

이(안) 문재인은 자기 절제력이 느껴지지만, 그래서인지 대장보다 참모나 비서실장 이미지가 더 강하다. 실제 그런 역할을 하면 잘할 수 있는 분 같다.

강(문) 저는 안철수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잘 모르겠다’는 부분이 문제라고 본다.

하(안) 문재인은 정약용의 이미지이고, 안철수는 세종대왕의 이미지다. 정약용처럼 굉장히 엄밀하고 엄정하며, 실제 여러 다양한 지식과 능력을 겸비했다. 하지만 재야의 고고한 학자 정도로 각인된 이미지다. 안철수는 세종에 비유하는 게 과하다 할 수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고의 맥락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낀다.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서울대 의대 나온 엘리트 코스를 거친 안철수와 겹치기도 하고.

진행자 예를 들어 ‘사회양극화 해소’ 등 구체적인 정책과 관련해 각 후보가 주는 느낌은 어떤가?

박(둘 다) 문재인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경희대 4년 장학생으로 가고,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를 못하고 변호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어려운 사람과 민주화를 위해 살았다. 심정적으로 여린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데, 안철수의 삶은 문 후보만큼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경제인들과 네트워크가 많고 우리 사회 상류층 이미지 아닌가.

하(안) 가정형편이 어려워 친서민 이미지라는 건 이명박도 그렇지 않나. 열심히 순대국밥도 드시고.

도(둘 다) 문재인은 이명박과 살아온 궤적이 다르다. 이명박은 부자 되려고 열심히 살았다. 안철수도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가 가진 정직한 가치관,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자세 등에 대해서는 신뢰가 간다. 다만 이분은 너무 커다란 영웅적 가치, 교과서적 가치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실천하면서 사는 대단한 분이니까 우리가 계속 우러러보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박(둘 다) 문재인은 부대끼며 헤쳐나가는 이미지인데, 안철수한테는 땀냄새 나는 스킨십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안) 문재인은 집권하면 참모들이 정책을 만들어온 걸 자기가 심사숙고하고 종합한 뒤 비전을 제시하면서 돌파해 나갈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런 걸 갖고 있다고 본다. 뭔가 보고를 그대로 집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응용해 판단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가 낫다.

강(문) 방금 이야기한 안철수의 장점은 경영자(CEO)로서의 장점이다. 사람들의 말을 수렴해 자기가 판단한 대로 가는 게 전형적인 경영자 마인드 아닌가. 우리는 그런 걸 이명박한테서 너무 많이 봤다.

하(안) 참여정부나 디제이(DJ) 정부에서 양극화가 해소되지 못하고 심화됐다. 대중이 안철수한테 그런 걸 극복해 줄 기대심리가 있다고 본다. 안철수가 좋은 집안의 엘리트여서 약자의 아픔을 모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강(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는 살아온 궤적을 봐야 한다. 문국현만 해도 기업 경영을 노동친화적으로 잘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대통령 되면 그런 식으로 가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안철수가 안랩 경영자로서 보여준 그런 부분이 있었나? 난 들어본 적 없다.


내 지지 후보가 상대보다 더 나은 이유

진행자 지지 이유 좀더 구체적으로 여쭙겠다. 문재인보다 안철수가, 또는 안철수보다 문재인이 나은 이유를 리더십이나 정책, 정치인으로서 행보나 주변 사람들 등을 고려해 따져보면 좋겠다.

하(안) 문재인이 민주당 후보라서 지지한다는 의견엔 동의 못한다. 국민 과반이 정치에 마음을 접은 데에는 새누리당 못지않게 민주당 책임도 크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은 무소속이기 때문이다. 역사청산을 말하는데, 참여정부와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저는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과감하게 양보하고 뒤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면, 국민들이 민주당의 혁신 의지를 믿어줄 것으로 본다.

강(문) 역대 대선에서 제3후보나 신인들은 언제나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들고나왔다. 민주당 책임론에 동의하지만 과거 제3후보들처럼 안철수도 자신이 정치개혁을 할 수 있다는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현 정권 묵은 때를 벗겨내는 데 1~2년 걸리고, 이제 뭘 해보려면 레임덕이 올 것이다. 짧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는 분들이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일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혹시 대학 때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경험해봤는가? 비운동권 총학이 잡으면 일할 사람이 없다. 단과대 학생회, 과 학생회 협조도 필요한데 총학만 달랑 잡으면 하부조직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비운동권이 연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소속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안) 그런 논리라면 새누리당이 정권 잡는 게 가장 효과적 아닌가.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 신입사원이 새로운 기획안을 내면 상사들이 ‘옛날에 해봤는데 안 되더라’며 싹을 자른다. 새로운 시도를 과거의 낡은 관성으로 가로막는 것이다.

남(문) 저는 정치개혁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문재인도 외부 요구에 따라 정치판에 불려 나왔다. 안철수처럼 크게 빚진 게 없다. 당내 경선도 모바일투표로 이겼지, 민주당 조직의 지원 받은 거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무얼 바꾸려면 국회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문재인은 자기 가치를 바탕으로 돌파력이 있을 것 같다. 안철수는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하는데, 우리 정치에서 소통으로 개혁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안) 국민들은 보수당, 진보당 모두한테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가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학이나, 4·19혁명, 1987년 6월항쟁 정도의 시기라고 본다. 국민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정치든 경제든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고, 그래서 안철수의 지지율이 높은 거다. 안철수가 무소속이라 불안하다고 했는데 안철수가 되면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디제이, 노무현 때 10년 동안 국정 경험해본 분들이 지금도 안철수 주변에 있고,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다.

남(문)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안철수가 과거 정부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라고 지지하는 게 아니다. 뭔가 새로운 걸 요구해서 지지하는 거다. 당황스러운 상황 아닌가?

하(안)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결국 민심이 모이는 것이다. 구태여 당이란 간접정치의 구조가 아니라도 온라인이나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그리스 시대처럼 직접민주주의제도 가능할 정도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안철수 자체가 정당정치만이 답이라는 프레임을 깨는 효과가 있다.

진행자 두 사람의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을 해볼 수는 없을까?

남(문) 정책이 나온 게 있나? 안철수도 책을 냈지만 정책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문재인도 아직 세부적인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지 않나.

강(문)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정책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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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지자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화합세상 만들려는 자세 신뢰
참여정부가 못푼 양극화 해소 실질적으로 풀길 기대
민주당 MB정부 탄생 책임…혁신 의지 믿을 수 없어”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진행자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남·이·도·박 해야 한다.

강(문) 단일화가 지상 최대의 명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안)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는 논리가 역사를 왜곡했을 수 있다. 과거에도 단일화 때문에 이상한 ‘결혼식’이 많지 않았나. 난 단일화 안 해도 박근혜가 안 될 것 같다.

박(둘 다) 아니다.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우리 고향집에만 가도 있다. 박근혜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하다. 안 하면 무조건 진다.

강(문) 단일화가 만약 되지 않아 대선에 지더라도, 그 현상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분위기로는 단일화 안 되고, 박근혜가 당선되면 3등 후보에게 엄청나게 비난이 쏟아질 텐데, ‘너 때문에 박근혜가 이겼다’고 말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도(둘 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권리 아닌가? 단일화가 안 되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진행자 단일화 방법으로는 담판이나 여론조사 등이 거론되는데 어떤 게 좋을 것 같나?

도(둘 다) 담판이 좋다. 80여일 남은 시점에 두 사람 모두 대권주자로서 충분히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경선이나 여론조사 같은 걸 하려면 시간이 너무 없다. 또 그건 기존에 다 써먹은 방식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들이 새로운 걸 보여주는 거다. 서로 소통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후보를 갖고 싶다.

하(안) 국민들이 담판하라고 두 사람을 압박해선 안 된다. 국민들은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은 공당의 후보다. 서울시장 때는 박원순, 안철수 둘 다 무소속이어서 담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은 담판을 통해 접을 수 없다.

박(둘 다) 맞다. 당원은 물론, 모바일 투표를 통해 국민들이 당의 후보로 뽑았으니 다시 당원과 국민에게 (단일화 방식을) 물어야 하는 거다. 민주당이 마치 문재인 사당인 양 담판을 하러 가는 건 안 맞다. 문재인을 그렇게 몰아가서도 안 된다. 두 사람 모두 출마해 박근혜가 당선되면, 3위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 못 살 거다. 그런 압박은 두 후보와 민주당도 알 거다. 두 후보가 동의하는 지점은 박근혜,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궁극적인 순간에 두 분이 어떤 결심을 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후보 단일화 이후의 선택은?

진행자 만약 지지후보로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하(안) 흔쾌히 단일화된 후보를 지지할 거다. 이건 행복한 고민이다. 안철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만한 충분한 저력과 강점이 있다. 민주당은 한계가 있지만, 문재인은 장점이 있다. 사람이 원한이 생기면 바뀌는데, 문재인도 있어선 안 될 참혹한 일을 겪어서 적어도 보수 세력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을 거다.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고 해도, 그 캠프에서 휴지 줍는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다.

이(안) 저는 문재인으로 단일화되면 투표장에 안 갈 것 같다. 문재인이 되나, 박근혜가 되나 크게 안 변할 거라고 본다.

강(문) 이런 분들, 꽤 많을 거라 본다. 하지만 나는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안철수를 찍을 것 같다.

남(문) 어떤 분으로 단일화되더라도 투표할 거다. 아쉬운 건, 모처럼 좋은 지도자 감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순서를 정해 문재인이 먼저 하고, 안철수가 하면 좋겠다.

도(둘 다) 반드시 단일화된 후보에게 투표한다. 나는 ‘박근혜의 나라’에 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내가 투표를 안 해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5년 내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살 것 같다.

박(둘 다) 누구로 단일화가 되든,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시스템이 아니면 좋겠다. 투표장에 가더라도 내 후보가 ‘죽었다’는 절망이 아니라 같이 어울리는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진행자 단일화 협상 중에 안철수가 민주당에 입당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이(안) 안철수가 입당하면 표가 많이 빠질 거라고 본다. 나도 그중 한 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안) 대한민국이라는 하드웨어는 좋아졌지만, 운영체제에 문제가 있다. 안철수는 새로운 운영체제다. 정당이라는 시스템이 21세기 이후에도 유효한 가치모델인지 회의를 느낀다. 새로운 운영체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안철수가 입당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입당을 하더라도 안철수를 찍을 거다.

정리 석진환 조혜정 기자



■ 민심 들여다보니

“99% 땀냄새 나는 정책으로 변화에너지 끌어모아야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뜨겁다. 지난 21·22일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56.7%가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민심이 문재인과 안철수 등 야권후보를 대선의 장으로 끌어냈다. 좌담회는 이런 민심의 속살을 좀 더 깊숙이, 내밀히 들여다보기 위한 자리였다. 뜨거운 가슴과 촘촘한 논리로 무장한 야권지지자들은 가히 ‘방언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앞으로 역동적으로 전개될 대선 구도에 대해 한 참석자의 표현대로 “설렘 속에 다양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좌담회는 ‘나는 왜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하는가’로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정치개혁의 절실함, 그리고 이를 담는 그릇으로서 정당의 필요 여부를 들어 지지 이유를 밝혔다. 즉, 문재인 지지자는 정당정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민주통합당 후보로서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했다. 반면, 안철수 지지자는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을 담기엔 민주통합당은 물론 진보정당 역시 낡았다고 비판했다. 막상 정책과 어젠더는 지지 이유로 거론되지 않았다. 지지 이유를 정책에 맞추어달라고 요구했을 때도 이들은 평가할 정책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온 경제민주화, 복지 등의 정책은 아직까지 후보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준거틀로 작용하지 않는 듯했다.

정책의 공간이 비어있다 보니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구체적인 이유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왜 지지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상대후보가 얼마나 부족한지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안철수라는 인물이 아직까지 모호하고 불안하기에 어느 정도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재인이 낫다고 했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낡은 경험보다는 차라리 백지상태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즉 상대 후보가 불안한 점, 비어있는 점은 명확하게 지적했지만 왜 그 후보를 지지하는 지에 대한 이유는 모호했다. 모두들 낡은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절절히 원했지만 새로움의 내용은 비어있었다.

최근 야권 지지자들의 대선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도는 박근혜 후보를 크게 추월하고 문재인 후보 역시 가파른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지지후보에 대해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그 기대의 내용이 명확한 콘텐츠로 채워지지 못했기에 지속가능성, 견고성 측면에서 취약하다. 야권지지자들의 열망의 그릇은 크나 그릇 안은 비어있는 셈이다. 빠른 시일 내에 정책과 비전으로 채워지지 못한다면 지금의 열망도 거품으로 꺼질 가능성이 높다. 99%를 위한 땀냄새 나는 정책으로 변화의 에너지가 모여야 한다.

좌담회에서 문재인, 안철수 중 아직 결정을 못 했다는 한 참석자는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택이 더 어려워진다. 어느 쪽으로 갈지 조심스럽다”고 했다. 들떠있지만 불안한 야권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좌담 후기

양쪽 지지자 ‘불꽃 논쟁’ 예고편…“두분 아끼는 마음 담아달라” 주문도

좌담회는 시작부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진행자는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지지자들의 생각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여러 질문을 준비했지만, 참석자들에게 애써 이리저리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참석자들은 적극적이었다. 한쪽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가 다른 후보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곧바로 그에 대한 반박이 뒤따르며 ‘불꽃’이 튀었다. 향후 두 후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지지자들도 격렬한 논쟁 속으로 빠져들 거란 걸 보여주는 예고편 같았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안 후보를 겨냥해 “사람은 반듯하고 잘 살아왔다는 게 느껴지는데, 뭔가 신기루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안 후보 지지자들이 뭔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 같고 지나친 믿음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은근히 지적했다. 반면, 안 후보 지지자들은 “적어도 노빠처럼 ‘안철수빠’라는 말은 없지 않으냐. 맹목적인 지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메시아라는 것도 신학이나 종교에서 보면 대중들의 염원과 요구가 메시아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고, 지금 현실이 그만큼 답답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문재인이나 안철수 모두 스스로 정치에 뛰어든 게 아니라, 외부의 집요한 요구가 그들을 정치로 끌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개인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야권과 지지자 집단의 권력의지로 만들어진 인물인 만큼 ‘남에게 빚진 게 없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우리 이야기가 신문에 실릴 텐데, 치열한 토론이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것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며 “야권 지지자들로서 두 분 모두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점을 꼭 신문에 실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지난 대선 때나 현 정부 들어 참 우울했는데, 요즘엔 두 사람 때문에 사는 게 재미있다”며 “이런 마음이 대선 때까지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석진환 기자


출처 : 나는 왜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