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꼼수가…금값 뛸때 물가에서 금반지 뺐다
‘양파 파동’ 땐 양파 통계 늦추고, 금값 뛸 땐 물가지수서 금 빼고
권력에 춤추는 통계 ① 의심받는 경제 지표
[한겨레] 노현웅 류이근 기자 | 등록 : 2013.06.17 22:16 | 수정 : 2013.06.18 17:18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총리였던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했다는 말이다. 그는 아마 통계를 쥐고 흔들어 여론을 호도하려는 권력의 속성을 이 경구를 통해 비판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서는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통째로 부정할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될 만한 통계를 지하 깊숙한 곳에 묻어둔 것이다. ‘숫자’를 둘러싼 권력의 검은 욕망을 <한겨레>가 기획 연재물을 통해 파헤쳐 본다.
가계부담 큰 생명보험료 물가지수 품목에서 제외
사회조사 결과 발표하면서 불평등 척도 ‘소득분배’ 제외
‘기관장 낙하산 인사’ 저항하자 수년간 계속해온 업무 이관
숫자는 권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 공표되지 못한 통계들은 집권 세력인 청와대와 당시 한나라당에 불리한 숫자들이었다.
먼저 지난해 공표에서 누락된 지니계수는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과 맞닿아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친재벌 경제정책을 과감히 펼치면서, 그에 대한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분배지표는 개선되는 추세라고 강조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중상위권인 지니계수가 그때마다 활용됐다. 아주대 최희갑 교수(경제학)는 “이명박 정부에서 나온 분배 관련 통계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국가 통계를 일방적으로 폄훼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관련 지표를 극복해보기 위해 지표 자체를 뜯어보는 등의 시도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집권 5년차인 2012년 통계청이 ‘새 지니계수’를 도입했고, 분배지표는 형편없이 낮게 나왔다. 정권을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그간 받아온 성적표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니계수가 포함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발표하기로 예정된 시점은 11월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현 정부의 실정이 공개되는 것은 여당 후보한테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청와대의 외압에는 대통령 선거라는 큰 이슈가 맞닿아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문재인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실정을 공개해 공격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추진했던 분배지표 개발 등은 이러한 정치적 고려에 의해, 통계청 캐비닛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지니계수가 소득 분배, 복지 담론 등 거시경제와 맞닿은 논란거리였다면, 2011년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양파 생산량을 지연 발표한 것은 좀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이유 탓이었다. 해마다 널뛰기하는 양파값은 식탁 물가 논란의 주범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양파값은 122.8% 뛰어올라, 모든 물가지수 품목 가운데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양파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저율 관세로 수입하는 양파 물량을 대폭 늘렸다. 가격 폭락을 예상한 양파생산 농가들이 생산을 줄였고, 그 결과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농민들은 양파 수입에 격렬히 항의했고, 2012년 7월 초에는 대규모 농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양파생산 농민들은 유통 구조와 가격결정 체제를 손봐야지, 양파 수입으로 가격만 낮추려 들면 우리 농민들은 다 죽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지난해 6~7월께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둘렀다. 이에 7월 초 대규모 농민대회가 열리는 등 농심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결국 2012년 7월 말께 발표 예정이었던 양파·보리·마늘 생산량 가운데, 양파 생산량 통계만 8월 말로 늦춰졌다. 양파 생산량이라는 ‘숫자’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정권에 부담스러웠을 정황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양파값과 지니계수는 지난해 가장 대표적인 외압 사례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계 조사를 위한 표본 선정과 분석·공표 과정, 곳곳에 권력의 입김이 스며들었다고 증언했다. 생명보험료를 2011년 물가지수 품목에서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은 가계지출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차지하는 생명보험료를 2010년 개편한 새 물가지수에서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통계상 각 가정의 보험료 지출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통계당국이 물가지수를 ‘마사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지난해 12월20일 공개된 사회조사 결과 역시 청와대 요청 탓이라는 증언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회조사 결과 역시 대선 이후로 공표를 늦춰 달라는 청와대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통계가 권력 입맛에 맞는 ‘숫자’를 생산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고 추정되는 사례는 많았다. 통계청은 2011년 사회조사 발표에서도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소득분배’ 항목을 빼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였던 ‘공정사회’를 새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또 2011년 말에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대상에서 금반지를 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금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금반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 0.4%포인트의 물가지표 하락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통계의 문제를 떠나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기관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승인통계 작성 업무 자체가 다른 기관으로 이관된 사례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08년 뉴라이트 지식인을 자처하는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하자, 연구원 노조는 ‘낙하산’ 반대 투쟁에 나섰고, 결국 국책연구기관 초유의 직장폐쇄 사태를 겪었다. 박 전 원장은 2009년 말 원장직을 사임했지만, 정부에 밉보인 노동연구원은 이듬해 5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온 노동패널의 조사를 중단한 채 한국고용정보원에 넘겨야 했다. 노동연구원은 1998년부터 이 조사를 담당해 왔다. 연구원이 2005년부터 고령자 1만명을 대상으로 해오던 고령자패널조사도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한마디로 블랙코미디다. 패널조사의 주체를 갑자기 바꾼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패널조사의 특성상 전문성과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하루아침에 다른 기관에 옮기면 조사 결과가 ‘오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순전히 당시 노동연구원을 손보려는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게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노동패널조사는 지난 3월 다시 노동연구원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간 축적된 노동패널조사 결과는 통계적 연속성을 잃고 다시 맨바닥에 돌아서게 된 셈이다. 고령자패널은 여전히 노동연구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통계청 노조 “권력입김 더는 못참아”
‘독립성강화 특위’ 출범…통계조직 52년 사상 처음
[한겨레] 노현웅 기자 | 등록 : 2013.06.17 22:16 | 수정 : 2013.06.18 17:18
지난 4월 행정부공무원노조 통계청지부(위원장 송호만)는 ‘통계청 독립성 강화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 더구나 숫자를 다루는 탓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통계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발적’인 움직임이었다.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성문 통계청 노조 조직국장은 “통계 설계와 집계, 공표 과정에 외부 압력이 작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 조합원의 총의가 모였다”고 말했다. 통계청 내부에 이런 조직이 구성된 일은 52년 통계조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통계청의 독립성 강화 특위는 조합원의 90%가 넘는 절대적 지지를 받아 구성됐다고 한다. 통계의 설계와 조사 및 분석, 공표 과정에 작용하는 권력의 입김이 도를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안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에는 청와대조차 ‘우리도 통계는 당신들이 공표하는 내용만 받아 보겠다’고 말할 정도로 독립성이 지켜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독립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제도적, 조직적 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특위는 두눈 부릅뜬 ‘내부감시자’를 자처하고 있다. 통계를 설계하거나 분석하는 과정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 내부 제보를 받고, 생산된 통계가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사전 제공되는지 여부 등도 감시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통계청은 기획재정부의 외청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압의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1961년 기재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으로 출발해, 1990년 기재부 외청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14명의 역대 청장 가운데 기재부 출신이 아닌 통계청장은 현직 박형수 청장과 12대 이인실 전 청장뿐이다.
이에 특위는 통계청 독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동의 절차 또는 임기제 보장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해 보이지만, 통계는 정책의 출발선이라는 면에서 국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자원”이라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의 사례를 참고해, 통계청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위는 교수, 언론인, 통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통계 독립성 강화 자문단을 구성해, 국가 통계 전반에 대한 의견도 취합할 계획이다.
출처 : 통계에 꼼수가…금값 뛸때 물가에서 금반지 뺐다
‘양파 파동’ 땐 양파 통계 늦추고, 금값 뛸 땐 물가지수서 금 빼고
권력에 춤추는 통계 ① 의심받는 경제 지표
[한겨레] 노현웅 류이근 기자 | 등록 : 2013.06.17 22:16 | 수정 : 2013.06.18 17:18
▲ 제주특별자치도 농업인단체협의회 등 농민단체들이 지난해 7월4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인근에서 연 ‘한·중FTA 중단 국민대회’에서 성난 농민들이 감귤나무, 양파, 감자 등 국내산 농산물을 불태우고 있다. 제주/뉴시스 |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1800년대 중반 영국의 총리였던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했다는 말이다. 그는 아마 통계를 쥐고 흔들어 여론을 호도하려는 권력의 속성을 이 경구를 통해 비판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서는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통째로 부정할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될 만한 통계를 지하 깊숙한 곳에 묻어둔 것이다. ‘숫자’를 둘러싼 권력의 검은 욕망을 <한겨레>가 기획 연재물을 통해 파헤쳐 본다.
가계부담 큰 생명보험료 물가지수 품목에서 제외
사회조사 결과 발표하면서 불평등 척도 ‘소득분배’ 제외
‘기관장 낙하산 인사’ 저항하자 수년간 계속해온 업무 이관
숫자는 권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 공표되지 못한 통계들은 집권 세력인 청와대와 당시 한나라당에 불리한 숫자들이었다.
먼저 지난해 공표에서 누락된 지니계수는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과 맞닿아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친재벌 경제정책을 과감히 펼치면서, 그에 대한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분배지표는 개선되는 추세라고 강조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중상위권인 지니계수가 그때마다 활용됐다. 아주대 최희갑 교수(경제학)는 “이명박 정부에서 나온 분배 관련 통계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국가 통계를 일방적으로 폄훼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관련 지표를 극복해보기 위해 지표 자체를 뜯어보는 등의 시도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집권 5년차인 2012년 통계청이 ‘새 지니계수’를 도입했고, 분배지표는 형편없이 낮게 나왔다. 정권을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그간 받아온 성적표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니계수가 포함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발표하기로 예정된 시점은 11월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현 정부의 실정이 공개되는 것은 여당 후보한테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청와대의 외압에는 대통령 선거라는 큰 이슈가 맞닿아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문재인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실정을 공개해 공격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추진했던 분배지표 개발 등은 이러한 정치적 고려에 의해, 통계청 캐비닛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지니계수가 소득 분배, 복지 담론 등 거시경제와 맞닿은 논란거리였다면, 2011년에 비해 20% 이상 감소한 양파 생산량을 지연 발표한 것은 좀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이유 탓이었다. 해마다 널뛰기하는 양파값은 식탁 물가 논란의 주범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양파값은 122.8% 뛰어올라, 모든 물가지수 품목 가운데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양파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저율 관세로 수입하는 양파 물량을 대폭 늘렸다. 가격 폭락을 예상한 양파생산 농가들이 생산을 줄였고, 그 결과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농민들은 양파 수입에 격렬히 항의했고, 2012년 7월 초에는 대규모 농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양파생산 농민들은 유통 구조와 가격결정 체제를 손봐야지, 양파 수입으로 가격만 낮추려 들면 우리 농민들은 다 죽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지난해 6~7월께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서둘렀다. 이에 7월 초 대규모 농민대회가 열리는 등 농심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결국 2012년 7월 말께 발표 예정이었던 양파·보리·마늘 생산량 가운데, 양파 생산량 통계만 8월 말로 늦춰졌다. 양파 생산량이라는 ‘숫자’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정권에 부담스러웠을 정황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양파값과 지니계수는 지난해 가장 대표적인 외압 사례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계 조사를 위한 표본 선정과 분석·공표 과정, 곳곳에 권력의 입김이 스며들었다고 증언했다. 생명보험료를 2011년 물가지수 품목에서 제외한 것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은 가계지출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차지하는 생명보험료를 2010년 개편한 새 물가지수에서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통계상 각 가정의 보험료 지출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통계당국이 물가지수를 ‘마사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지난해 12월20일 공개된 사회조사 결과 역시 청와대 요청 탓이라는 증언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회조사 결과 역시 대선 이후로 공표를 늦춰 달라는 청와대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통계가 권력 입맛에 맞는 ‘숫자’를 생산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고 추정되는 사례는 많았다. 통계청은 2011년 사회조사 발표에서도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소득분배’ 항목을 빼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였던 ‘공정사회’를 새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또 2011년 말에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대상에서 금반지를 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금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금반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 0.4%포인트의 물가지표 하락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통계의 문제를 떠나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기관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승인통계 작성 업무 자체가 다른 기관으로 이관된 사례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08년 뉴라이트 지식인을 자처하는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하자, 연구원 노조는 ‘낙하산’ 반대 투쟁에 나섰고, 결국 국책연구기관 초유의 직장폐쇄 사태를 겪었다. 박 전 원장은 2009년 말 원장직을 사임했지만, 정부에 밉보인 노동연구원은 이듬해 5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온 노동패널의 조사를 중단한 채 한국고용정보원에 넘겨야 했다. 노동연구원은 1998년부터 이 조사를 담당해 왔다. 연구원이 2005년부터 고령자 1만명을 대상으로 해오던 고령자패널조사도 같은 운명을 겪어야 했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한마디로 블랙코미디다. 패널조사의 주체를 갑자기 바꾼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패널조사의 특성상 전문성과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하루아침에 다른 기관에 옮기면 조사 결과가 ‘오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순전히 당시 노동연구원을 손보려는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게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노동패널조사는 지난 3월 다시 노동연구원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간 축적된 노동패널조사 결과는 통계적 연속성을 잃고 다시 맨바닥에 돌아서게 된 셈이다. 고령자패널은 여전히 노동연구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통계청 노조 “권력입김 더는 못참아”
‘독립성강화 특위’ 출범…통계조직 52년 사상 처음
[한겨레] 노현웅 기자 | 등록 : 2013.06.17 22:16 | 수정 : 2013.06.18 17:18
지난 4월 행정부공무원노조 통계청지부(위원장 송호만)는 ‘통계청 독립성 강화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 더구나 숫자를 다루는 탓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통계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발적’인 움직임이었다.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성문 통계청 노조 조직국장은 “통계 설계와 집계, 공표 과정에 외부 압력이 작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 조합원의 총의가 모였다”고 말했다. 통계청 내부에 이런 조직이 구성된 일은 52년 통계조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통계청의 독립성 강화 특위는 조합원의 90%가 넘는 절대적 지지를 받아 구성됐다고 한다. 통계의 설계와 조사 및 분석, 공표 과정에 작용하는 권력의 입김이 도를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안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에는 청와대조차 ‘우리도 통계는 당신들이 공표하는 내용만 받아 보겠다’고 말할 정도로 독립성이 지켜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독립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제도적, 조직적 해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특위는 두눈 부릅뜬 ‘내부감시자’를 자처하고 있다. 통계를 설계하거나 분석하는 과정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는지 내부 제보를 받고, 생산된 통계가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사전 제공되는지 여부 등도 감시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통계청은 기획재정부의 외청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압의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1961년 기재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으로 출발해, 1990년 기재부 외청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14명의 역대 청장 가운데 기재부 출신이 아닌 통계청장은 현직 박형수 청장과 12대 이인실 전 청장뿐이다.
이에 특위는 통계청 독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동의 절차 또는 임기제 보장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해 보이지만, 통계는 정책의 출발선이라는 면에서 국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자원”이라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의 사례를 참고해, 통계청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위는 교수, 언론인, 통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통계 독립성 강화 자문단을 구성해, 국가 통계 전반에 대한 의견도 취합할 계획이다.
출처 : 통계에 꼼수가…금값 뛸때 물가에서 금반지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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