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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우린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배신`을 기억합니다`

"우린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배신'을 기억합니다"
[현장편지] 현대차의 노노분열 공작…우려스런 정규직 노조
[프레시안] 박점규 금속노조 전 비정규국장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 기사입력 2012-03-02 오후 2:18:58


2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에 일제히 공장장 명의의 담화문이 붙었습니다. 2월 23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후 회사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담화문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근거 없이 왜곡, 확대해석한 데서 비롯된 각종 무리한 주장들은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뿐만 아니라 막연한 기대 심리만 높여 결국 또 다른 갈등만 초래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금번 23일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청과 관련한 개인의 판결이며, 전체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하는 판결이 아님을 직시해야 합니다."


불법 8년, 한 마디 사과도 없는 현대차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국내 최대 기업이자 세계 5대 자동차회사인 현대차가 지난 8년 동안 현행법을 위반하며 불법파견을 일삼아왔고, 그 최종 대법원 판결이 두 번이나 내려졌는데도, 회사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현대차의 담화문은 거짓과 권모술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음날 언론사를 통해 대법원 판결문을 받았는데, 현대차는 6일이 지났는데도 판결문을 받지 못했다며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판결문 내용은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문에 따른 2011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이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현대차의 상고를 기각한 4쪽 짜리입니다. 여기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덧붙였을 뿐입니다. 면밀히 검토할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청과 관련한 개인의 판결이며, 전체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하는 판결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고요? 대법원에서 성매매가 불법이라고 판결하면 소송을 제기한 업소만의 문제인가요? 뇌물과 정치자금 성격이 결합된 돈은 전부 뇌물이라는 대법원 판결은 전 거제시장 한 명에게만 적용되나요?

이미 2004년 9~12월 노동부는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120개 업체 1만 명에 대해 이번 대법원의 판결문과 같은 내용으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습니다. 불법파견이냐 합법 도급이냐라는 하급심의 논란을 정리한 판결이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파기환송심이고, 지난 2월 23일 최종 판결까지 난 것입니다.

현대차는 "노사 간 신중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합니다. 8년 간의 불법행위에 종지부를 찍은 판결이 나왔는데도, 노사 간에 대화와 협의를 하면서 불법을 계속 저지르겠다는 것입니까?

▲ ⓒ프레시안(김봉규)


대법원 판결 따르면 정규직 생존권 위협받는다고?

정말 소름끼치는 것은 정규직의 고용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내하청 문제는 회사와 사내하청 직원간의 문제를 넘어 생산 라인운영 및 인력운영에 미칠 크나큰 파급효과와 함께 우리 직원들의 고용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노사 간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대법원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사내하청 직원'이 아니라 '현대차 직원'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사내하청 문제를 "우리 직원들의 고용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 직원'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시키면 '우리 직원'들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협박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났다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동조하면 정규직 일자리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협입니다.

회사는 담화문 마지막에 "우리 직원의 생존과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는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현명한 결정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다시 정규직의 생존문제까지 언급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리를 자극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 현대차의 교활하고 야비한 심리전이었습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25일 점거파업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회사는 11월 17일 "이번 하청노조의 불법행동으로 잔업 등 생산차질이 발생하여 '우리 직원'의 임금손실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홍보물을 발행했습니다.

회사는 점거파업 기간 동안 고도의 심리전을 이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기했고, 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자극했으며, 현대차지부를 통해 '외부세력론'을 유포시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을 지지하던 조합원들을 흔들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울산공장 점거투쟁을 담은 <25일>에 기록된 회사의 교활한 심리전과 '정규직 민심 쟁탈전'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사내하청 노동자 8천명은 현대차 정규직 조합원" 선언해야

지난 2월 28일 경북 문경의 한 수련원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70여 명이 모였습니다. 2월 23일 대법원 판결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움츠려있던 현장이 들썩이기 시작했으며, 간부들의 눈동자도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이날 하부영 민주노총 전 울산본부장은 현대차노조에 "대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가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한 것은 곧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지부의 정규직 조합원이라는 판결"이라며 '정규직 조합원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정규직의 고용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내하청 직원'과 '우리 직원'을 분열시키는 전략에 맞서 현대차노조가 직접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조합원이라고 선언하자는 의미였습니다. 대법원 판결 정신에 따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8000명은 정규직이고, 현대차지부 조합원임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현대차지부는 이날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계획서'를 제출했고, 이 내용으로 29일 투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현대차지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3월 22일 발표하고, 원하청노조 연대회의를 구성하며, 4월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요구하고, 올해 임금협상과 결합해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정규직 노조의 대리교섭에 대한 우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의아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고, 사회적 관심도 집중되고 있으며,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세력들도 앞 다투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싸우지 않고 총선이 지난 후 교섭을 요구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 대국민 사과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체불임금 지급 등 8대 요구안을 마련해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2010년 12월 9일 점거파업 중단 이후 노사합의로 징계최소화와 불법파견 교섭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하는 특별교섭이 진행되다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가 함께 특별교섭 재개를 요구하고,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투쟁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한 간부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요구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규직노조가 일방적으로 투쟁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규직노조와 연대해 함께 싸워야 하지만, 비정규직 주체가 빠진 채 대리교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조설립 9년 만의 최대 기회

"만약 모든 하청이 원청에 정규직화가 된다면, 정말로 우리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 재고 해봐야 할 듯.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규직화만 부르짖는다면 모든 하청 및 정규직까지도 실업자가 될 것이다."

3월 2일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하청 정규직화는 무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입니다. 지금 금속노조와 정규직 현장조직 홈페이지에는 "하청 정규직화는 무리", "대안 없는 투쟁은 쫌", "이번 대법원 판결,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 "뭐가 우선인가?" 등 회사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글들이 도배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회사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규직화에 대한 현장의 열망이 대단히 높다는 뜻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한다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3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월차를 쓰겠다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하청업체 사용자가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다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9년 만에 최대의 기회가 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 겨울 정규직노조의 배신을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신과 패배의 기억이 연대와 승리의 추억으로 바뀔 수 있는 2012년 봄이 오고 있습니다.

▲ 현대차에서 발표한 담화문


출처 : "우린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배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