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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기 소통 아니다’는 박근혜, 8년전 53일간 ‘떼쓰기’했다

‘떼쓰기 소통 아니다’는 박근혜, 8년전 53일간 ‘떼쓰기’했다
[기자수첩] 야당대표 땐 “지지율 떨어져도 사학법 양보못해, 후회없다”더니 대통령되고선 소통거부·엄단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 입력 : 2014-01-08 11:53:19 | 노출 : 2014.01.08 16:59:42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2년차인 2014년 새해를 맞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기자회견에서 소통문제에 대해 “떼쓰면 적당히 수용하고 타협하는 게 소통이냐”며 여론의 비판 목소리를 묵살한 것과 관련해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시절엔 “절대로 양보못하겠다”며 의원들을 데리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과거 행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당시에 그냥 넘어갔다면 자신의 양심에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소통의 의미가 단순한 기계적 만남이라든지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라며 “불법으로 떼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비정상적 관행에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소통이 안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모두 법을 존중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집행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소통”이라며 “그냥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는 사회가 소통되는 사회라고 한다면 나쁜 관행이 쌓이는 사회”라고 비난했다. 특히 철도민영화 반대파업에 대해 박 대통령은 불법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면서 “불법파업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향후 이어질 각종 민영화 반대 여론을 강경진압하라는 메시지까지 던졌다.

이런 인식과 달리 박 대통령은 불과 8년 전 자신이 야당 대표 시절 장외로 나가 사학법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떼’를 쓴 전력도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특히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자신이 생각한 사학법이 아니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저서에서 2005년 12월 9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본회의를 처리하자 “한나라당의원들은 망연자실했다. 사학법이 어떤 법인가? 우리 아이들의 앞날과 우리 교육의 미래가 걸려 있는 법 아닌가?”라며 “그 자리에서 나는 비장한 결의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땅의 부모들과 함께 사학법 반대투쟁에 나서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17대 국회 처음으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며 “17대 국회가 문을 연 이후 우리가 절대하지 않은 것이 장외투쟁이었으나 정부여당이 사학법을 날치기 처리하자 그 원칙은 중대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결론은 사랍학교법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 대통령은 “사학법은 우리 아이들에 관한 문제”라며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나라의 근본이 달라진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여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고 자신의 의지를 과시했다.

사학법 투쟁 초반, 제대로 된 사학법 개정을 원했던 한나라당과 여당의 갈등은 대번에 ‘비리사학을 옹호하는 한나라당 대 사학법을 개정하는 세력’으로 평가받는 등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싸늘했다고 박 대통령은 전했다.

이 때문에 민생을 챙기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적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의원총회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들어놓는 법은 절대 통과돼서는 안되며, 법의 뿌리가 허물어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라고 촉구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모두가 힘을 합했다”고 기억했다.

박 대통령이 첫 가두투쟁을 했던 명동에 대해 “잠시만 서있어도 발이 꽁꽁 얼고 내복을 껴입고 스웨터를 껴입어도 살 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우리가 사학법 투쟁을 하던 그해 겨울 내내 그렇게 추웠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사학단체, 종교단체들과 함께 서울역과 시청앞 광장 그리고 전국 대도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트럭을 개조해 소규모 게릴라 집회도 계속 열었다”며 “조금씩 독소조항인 개방형 이사제의 문제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사학법 토론회 및 간담회가 열리고 투쟁본부가 생겨났다”고 회고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대표시절 시청광장에서 열었던 사학법 반대 장외집회.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추운 겨울, 53일간 계속된 사학법 투쟁은 2006년 1월 31일 여야 원내대표가 북한산 산행을 하며 가진 회담과 함께 끝났다”며 “그곳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고, 2월 1일 국회가 다시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죽도록 반대한 결과 자신들의 뜻을 관철한 것이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은 “나의 사학법 투쟁을 놓고 ‘보수강성 이미지를 남겼다’며 손해나는 장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내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양보할 건 하고, 사소한 것은 넘어가주는 사람이라도 최후로 지키는 보루가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근본이다. 이를 가지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가만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며 “사학법을 갖고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손해가 좀 난다고 해서 두 눈 질끈 감고 넘어갔다면 내 양심에 큰 상처가 남았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내가 ‘자유로운 인생’을 포기하고 ‘밑도 끝도 없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으면서 다시 정치의 길로 나선 이유 자체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여당이 통과시킨 사학법 개정안의 핵심은 사학재단에 개방형이사가 이사회를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사학재단이 특정 건립자 가족이나 측근들에 의해 독점돼 생기는 폐해를 막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은 사립학교 창업자들의 편에 선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른 투쟁이자 떼쓰기였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도 자신이 했던 떼쓰기는 양심에 후회없고, 공공성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는 수많은 국민들은 불법 떼쓰기라는 인식은 이중적 태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출처 : ‘떼쓰기 소통 아니다’는 박근혜, 8년전 53일간 ‘떼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