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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복지로 거덜난다`는 정부의 세가지 `왜곡`

'복지로 거덜난다'는 정부의 세가지 '왜곡'
[기고] 기획재정부의 복지TF 구성 발표를 접하며
[민중의소리] 좋은예산센터 김태일 소장(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입력 2012-02-27 21:53:37 l 수정 2012-02-29 08:07:20


▲ 정부의 '복지' 논란 ⓒ민중의소리


정치와 행정의 경계는?

‘관료에겐 영혼이 없다’라는 말은 제법 알려져 있다. 몇 해 전 정권이 바뀔 때, 이전 정권에서의 정책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과정에서 한 관료가 했던 말이 회자된 것이다. ‘영혼’이라는 용어 때문에 묘한 울림을 가지면서 관료들 자신에게는 자조적으로, 남들에게는 공무원을 비아냥거리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곤 한다.

이 말은 막스 베버의 관료제론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 문장을 책에서 찾아보면 영혼은 spirit(원래 책은 독어로 출판되었지만 영역본을 참고하였다)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전후 맥락을 따져서 해석하면 ‘관료에겐 영혼이 없다’는 말은 그다지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사실 베버는 관료제를 옹호하였다). 이 말은 정치 영역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관료의 역할인데, 이 때 자신의 주관을 개입하지 말고 공평무사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정치의 역할과 행정의 역할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즉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여 정책의 기본 틀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고, 이를 구체화하고 집행하여 최선의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행정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베버의 관료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행정의 역할이 훨씬 커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와 행정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에서는 복지 TF를 구성해서 정치권의 복지 공약을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는지 철저히 검토하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야 정치권이 이미 제시한 복지 공약에 드는 비용은 연간 최대 67조원, 향후 5년간 340조원 규모로 추계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재부의 발표를 접하면서 관료의 역할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긍정적인 면을 애써 찾아보자. 정치권 복지 공약의 소요 비용을 추계하는 것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이는 행정의 역할에 속하고, 책임감 있는(!) 관료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정치는 의례 뒷감당은 신경 안 쓴 채 장미빛 청사진을 남발하기 마련이고, 이를 수습해서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제시한 정책 대안을 실행하려면 얼마의 돈이 드는가를 추계하는 것은 해당 대안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의 세가지 왜곡

① '국가부도‘ 주장의 현실성은 어느정도?

고약한 것은 이러한 추계가 정직하지 못하고, 이를 알리는 방식이 왜곡되었다는 데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차근차근 따져 보자. 복지 TF 구성의 배경을 브리핑하면서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정부가 진행 중인 각종 복지 사업만 해도 현재 30% 중반대인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50년에는 135%까지 높아질 것”이라며 “현재 정치권의 공약들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을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현행의 복지 사업만 유지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35%가 된다고 하니, 국가 재정이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대로라면 지금 여야가 앞 다투어 내세우는 복지 공약의 수용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복지 사업도 줄여야 할 판 아닌가!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기획재정부 발표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수준은 그 동안 줄곧 팽창해 왔지만 여전히 GDP 대비 10%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다른 OECD 국가들의 절반 수준으로 지출되고 있는 현행의 복지 사업을 그대로 유지해도 장차 국가채무 비율이 135%까지 높아진다면, 다른 국가들의 사정은 어떨까? 다른 나라들은 애시 당초 거덜 났어야 하지 않을까?

2050년에 국가채무 비율이 135%가 된다는 계산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는 현행의 복지 제도를 유지만 해도 급속한 고령화의 영향으로 복지지출 규모가 크게 증가한다는 가정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은 2010년 기준으로 11% 정도이다. 그런데 2050년에는 38%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한다. 이 정도의 고령화율은 전 세계적으로 5위 안에 드는 수준이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 연금과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그리고 연금과 의료비 지출은 복지 지출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두 항목이다. 따라서 고령화율이 높아지면 복지 지출 규모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 조세부담률은 '고정불변'?! ⓒ제공 : NEWSIS

② 조세 부담률은 40년간 고정불변?

또 하나는, 이것이 핵심인데, 현행의 조세 지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가정이다. 2010년의 조세 부담률은 19.7%인데 이 수준을 2050년까지 동일하게 유지할 경우 국가부채 비율이 135%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사회보험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29.3%). 이번 정부 들어 감세 정책을 추진한 탓에 현행의 조세부담률은 21%가 넘었던 2007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OECD 평균인 26.0%(2008년 기준)에 비하여 6%포인트 이상 낮다.

현행의 복지와 조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50년 국가부채 비율이 135% 이상이 된다는 추계는 기재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수행한 용역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용역 보고서에는 조세 부담률을 높였을 때의 국가부채 비율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2050년까지 조세 부담률을 4%포인트 높여서 23.7%가 되도록 하면 국가부채 비율은 60%가 되는데, 이는 EU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권장하고 있는 국가부채 비율이다. 그리고 조세 부담률을 25.2%가 되도록 하면(이는 2008년 OECD 평균 조세 부담률과 유사한 수준이다), 국가 부채 비율은 30%로서 현행보다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현행의 조세 부담률이 낮기 때문에 이를 높여야 한다는 데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재부 역시 19.7%인 현행의 조세 부담률을 2050년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앞뒤 맥락은 무시하고 거두절미한 채, “정부가 진행 중인 각종 복지 사업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50년에는 135%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대체 무슨 심사일까?

③ 베일에 쌓인 기초수치

기획재정부 2차관은 또한 같은 브리핑에서 “복지 부문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공약들을 분석한 결과 소요되는 비용이 연간 43조~67조원, 향후 5년간 220조~340조원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의 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양 당의 공약이 실현되려면 ①기초수급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단계적 폐지 공약 연간 4조원 ②소득 하위 70% 이하 대학생 반값등록금 2조원 ③사병 월급 인상 1조6000억원 등이 소요된다고만 하고 있다. 글쎄, 사병 월급 인상이 복지정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셋을 모두 더하면 7조 6000억원이 된다. 연간 43조~67조원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럼 나머지 비용은 뭘 하는데 소요되는 것일까? 그리고 43조원과 67조원 사이에는 23조원의 격차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추정했길래 이처럼 큰 차이가 발생할까?

아마도 민주통합당이 이전에 내놓은 무상의료 공약이 제법 큰 비용이 소요되고 또 최소와 최대 추정치 격차가 벌어지는 원인일 것 같기는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도가 너무 심하다. 민주통합당 자체 추계로는 무상의료를 포함한 3무1반 정책에 연간 17조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고, 중립적으로 따져도 20조원대의 금액이면 가능할 것 같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계산해도 연간 67조원이라는 액수는 나오지 않는다.

▲ 민심과의 '괴리'? ⓒ제공 : NEWSIS


정치와 행정, 그 아름다운 동행을 위하여

이 정도 설명이면 지난 번 기재부가 복지TF를 구성하면서 발표한 내용들이 왜 정직하지 못하고 무엇을 왜곡했는지 독자들도 납득했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권의 복지 공약들에 대한 비용 추계를 하겠다는 기재부의 의욕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물론 기재부보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한다면 더 나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 번 복지TF를 구성한다면서 브리핑한 내용과 태도를 본다면 향후 전개가 어찌될 지 뻔한데, (그대로 된다면) 이는 기재부가 매우 잘못하는 것이고 마땅히 반박해야 한다.

정말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책임감에서 하는 일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게 타당하다. 일단 TF 구성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정부 관료와 국책연구기관 학자들은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그 밖에 소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일반 학자들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배경과 가치를 지닌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합의한 결과라면 좀 더 타당성이 높을 것이고 보다 신뢰할 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석 결과의 상세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난 번처럼 추정의 근거와 과정은 밝히지 않은 채 “연간 43조~67조원, 향후 5년간 220조~340조원이 들 것”이라고 무책임하게 발표하는 것은 안 된다. 이는 황색 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지막으로 행정이 해야 할 일과 정치가 해야 할 일을 분별해야 한다. 복지 TF에서는 정치권의 복지 공약이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는지 철저히 검토하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한다. 철저히 검토하고 대응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정치권의 정치 공약은 어차피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수용되기 마련이다.

국회에서 입법을 하거나 아니면 선거를 통해 집권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도 있지만 이는 거부하면 그뿐이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정부의 역할이 요구될 때 필요한 행위를 하면 되는 것이지, 권한을 초과한 행위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책의 비용과 편익,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따져 보고 그 정보를 정치권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정책은 바람직하고 저 정책은 그르다는 식의 판단은 현 단계에서 기재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해야 할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관료에겐 영혼이 없다’라고 번역된 탓에 잘못 이해되고 있지만, 이 말은 결코 관료는 정권의 시녀(이 표현은 쓰기 싫지만 대체어가 마땅치 않아 사용한다. 양해를 구한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국민 의사를 대변하지만 비전문가 그룹인 정치권이 결정한 정책을 전문가인 관료들이 최선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듬고 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가는 정치의 몫을, 관료는 행정의 몫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국민 행복에 기여하는 정부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출처 : '복지로 거덜난다'는 정부의 세가지 '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