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빵집 욕하는 걸로 세상 바뀌지 않는다”
재벌개혁 토론회, “전방위 융단폭격과 금융자본주의 규제 병행해야”
[미디어오늘] 이정환·허완 기자 | 입력 : 2012-02-26 18:32:53 | 노출 : 2012.02.27 10:40:00
지난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대기업 회장의 딸들이 취미로 빵집을 경영하며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의 비판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기업이 제과·제빵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겉치레(cosmetic)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은 국가가 영세 자영업의 구조조정과 진정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인데 한국 정치권은 이 민감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재벌 빵집이라는 현상만 이슈가 됐을 뿐 재벌 빵집 논란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와 해법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다. 동네 빵집이 어려운 건 재벌 빵집이 아니라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같은 체인 빵집들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동네마다 빵집이 너무 많고 서비스업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당장 재벌이 빵집 사업을 접는다고 해서 동네 빵집이 살아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왜 빵집이 이렇게 많으며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2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재벌해체, 구호를 넘어 대안을 찾아”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의 해법으로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해법이 논의됐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정치권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금이 재벌개혁의 절호의 기회라는 발전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최근 출간된 ‘가난한 집 맏아들’의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이 31.3%나 된다. 일본은 13%, 미국은 7.0%, 독일은 11.7%, 프랑스는 9.0%,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은 15.8%다. 소매업체가 인구 1천명에 12.7개꼴인데, 일본은 8.9개, 미국은 3.2개 정도다. 음식점은 1천명에 12.2개꼴, 일본은 5.2개, 미국은 1.8개꼴이다. 자영업자들 가운데 월 매출 400만원 이하가 58%, 이들의 월 평균 순이익은 149만원, 순이익 100만원 이하가 58%에 이르고 적자를 내는 곳도 27%나 된다.
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 대기업을 혼자 대학에 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비유했다. 좋은 직장을 얻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맏아들이 동생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벌 대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그 이익은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빠져나가고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파격적인 특혜로 성장했지만 윗물이 넘쳐 아래까지 흐른다던 트리클 다운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양심불량 맏아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유 교수는 “1960년대 부족한 외화를 배정할 때 법정환율과 실제환율이 3배 정도 차이가 있어서 대기업들은 외화를 받는 순간 이미 3배의 이익을 봤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차관금리도 5%대였는데 당시 국내 금리는 30% 수준이어서 앉아서 이익을 얻었다”면서 “이처럼 다양한 특혜로 현재의 지위를 누린다면, 대기업은 그간 희생한 다른 국민에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아들에게 도덕적 책무를 부과하는 사회적 압력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이나 순환출자 금지, 초과이익 공유제도와 재벌세 신설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출총제는 삼성이 해당되지 않고 순환출자금지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와 SK등이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재벌세 역시 하위 재벌에 집중되는 방식이라 실효성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한두 개의 정책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한 여러 가지 규제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융단폭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공정거래법 규제보다는 부자 증세”라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삼성이나 현대차 1차 벤더 업체들 납품단가는 낮지 않다”면서 “이들은 동반성장은 아니더라도 동반 진출 정도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문제는 2차와 3차 벤더, 그리고 하청도 하지 못한 동네 영세상인들인데 이들은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 연구위원은 “좀 더 본질적으로 재벌을 넘어 재벌을 규제하는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리해고를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공장을 해외로 빼돌리는 건 재벌이 아니라 금융자본”이라면서 “우리가 적립식 펀드로 재테크를 할 때 우리는 재벌의 주주가 되고 공범이 된다”고 지적했다. “재벌은 우리를 위해 하청을 늘리고 임금을 깎는 것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단순히 재벌해체라는 막연한 구호를 넘어 재벌을 추동하고 있는 금융자본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가 필요하고 근본적으로 주주가 모든 것을 갖는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국장 역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로 풀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 국장은 “사실 현대차는 연봉이 8천~9천만원 정도 되는데 이는 파업을 하지 않는 대가로 받는 떡고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차 하청만 해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상받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재벌에 맹목적인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벤더는 이를 그대로 배워서 2차 벤더에 무리한 납품단가를 요구하고 심지어 기술유출을 요구한다. 이처럼 재벌을 정점으로 선 관행을 사회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정승일 연구위원은 “맏아들이 동생을 안 돌보니 강제로 나눠주게 하자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순이익은 15조원, 연말에 직원들에게 나간 보너스가 2조원, 주주 배당이 7조원 정도였다. 정 연구위원은 “만약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직원들 보너스를 늘리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늘리면서 주주 배당을 줄인다면 주가가 급락할 것이고 당장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 일가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금융시장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정 연구위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2천억원 수준 밖에 안 된다”면서 “당기순이익 8조원의 현대차에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단순히 이건희 정몽구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맏아들이 맏아들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주주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공동 저술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정승일 연구위원은 “맏아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건 대학 등록금을 댄 부모”라면서 “재벌 문제에서 부모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재벌 활용론이 종종 재벌 옹호론으로 오용되곤 하지만 재벌 활용론은 재벌이 아닌 자들이 재벌을 활용하는 것이고 재벌을 활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쟁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재벌개혁의 방향은 결국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방점으로 연결돼야 한다”면서 “재벌을 압박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이 부자증세”라고 강조했다.
홍헌호 연구위원도 “지금은 성장전략으로 분배문제를 고민해야 할 단계”라면서 “부자 증세가 필요한 단계인데 부자가 세금을 안 내니 경기가 죽고 소비여력이 떨어져 결국 부자도 부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에게 세금을 더 거둘 것이냐 이건희 회장에게 더 거둘 것이냐의 문제인 셈이다. 홍 연구위원은 “1930년대 대공황 때도 유효수요 창출로 위기를 돌파했는데 그때와 차이라면 그때는 국채 발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재정위기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유효수요 창출의 유일한 희망은 부자증세”라고 강조했다.
이상호 국장은 “최근 재벌개혁 논의는 지배구조 논의에 매몰돼 있다”면서 “재벌과 중소기업, 노동자, 중소상인, 소비자 사이에 놓인 (불평등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관련, “(사전 규제나 사후 보상에 앞서) 과정상 중간착취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그동안 노동운동도 ‘떡고물’에 만족해왔던 측면이 있다”면서 “‘(사측에) 복종하면 더 줄 수 있다’는 차별의 중심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헌호 연구위원은 “독일의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의원내각제처럼 감사회(의회)가 이사회(행정부)를 제어하고 감시하는 방식이다. 감사회는 주주 대표와 종업원 대표, 금융기관 대표, 때로는 지역사회 대표까지 함께 구성된다. 그리고 내각제처럼 이들이 이사회를 뽑는다. 공기업 개혁도 이런 식으로 가는 게 OECD의 권장 방안이다. 홍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잘 움직이면 재벌해체까지 가지 않더라도 좀 더 손쉬운 재벌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국장은 “초과이익 공유제는 좀 물 건너간 느낌도 있지만 성과공유제는 필요하다”면서 “대기업들은 주주들과 정규직 직원들에게만 성과를 배분하고 있는데 하청 중소기업들은 90% 이상이 1개 업체에 의존하고 있어 항의조차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최소한 사후적 보상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상 착취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독식을 막기 위해서라도 성과공유와 원자재 물가상승 연동제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고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국장은 “지금처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치고 나가야 한다”면서 “필요하다면 융단 폭격이라도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한국 사회에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연구위원도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도 시민단체들 의견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분위기”라며 “1차적으로는 납품단가 정상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의 방향은 불법행위를 규제·처벌하는 것과 재벌체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두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재벌빵집을 비난하는 것으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부당 내부거래를 단호하게 처벌하고 출총제를 부활하고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 못지않게 재벌세와 초과이익공유제도를 신설하는 등 강력한 융단폭격식 재벌개혁에 병행해서 재벌체제를 추동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사회적 경제와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출처 : “재벌 빵집 욕하는 걸로 세상 바뀌지 않는다”
재벌개혁 토론회, “전방위 융단폭격과 금융자본주의 규제 병행해야”
[미디어오늘] 이정환·허완 기자 | 입력 : 2012-02-26 18:32:53 | 노출 : 2012.02.27 10:40:00
지난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가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대기업 회장의 딸들이 취미로 빵집을 경영하며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의 비판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기업이 제과·제빵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겉치레(cosmetic)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은 국가가 영세 자영업의 구조조정과 진정한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인데 한국 정치권은 이 민감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재벌 빵집이라는 현상만 이슈가 됐을 뿐 재벌 빵집 논란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와 해법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다. 동네 빵집이 어려운 건 재벌 빵집이 아니라 파리바게뜨나 뚜레주르 같은 체인 빵집들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동네마다 빵집이 너무 많고 서비스업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당장 재벌이 빵집 사업을 접는다고 해서 동네 빵집이 살아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왜 빵집이 이렇게 많으며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2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재벌해체, 구호를 넘어 대안을 찾아”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의 해법으로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해법이 논의됐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정치권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지금이 재벌개혁의 절호의 기회라는 발전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최근 출간된 ‘가난한 집 맏아들’의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이 31.3%나 된다. 일본은 13%, 미국은 7.0%, 독일은 11.7%, 프랑스는 9.0%,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은 15.8%다. 소매업체가 인구 1천명에 12.7개꼴인데, 일본은 8.9개, 미국은 3.2개 정도다. 음식점은 1천명에 12.2개꼴, 일본은 5.2개, 미국은 1.8개꼴이다. 자영업자들 가운데 월 매출 400만원 이하가 58%, 이들의 월 평균 순이익은 149만원, 순이익 100만원 이하가 58%에 이르고 적자를 내는 곳도 27%나 된다.
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 대기업을 혼자 대학에 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비유했다. 좋은 직장을 얻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맏아들이 동생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벌 대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그 이익은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빠져나가고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파격적인 특혜로 성장했지만 윗물이 넘쳐 아래까지 흐른다던 트리클 다운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양심불량 맏아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유 교수는 “1960년대 부족한 외화를 배정할 때 법정환율과 실제환율이 3배 정도 차이가 있어서 대기업들은 외화를 받는 순간 이미 3배의 이익을 봤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차관금리도 5%대였는데 당시 국내 금리는 30% 수준이어서 앉아서 이익을 얻었다”면서 “이처럼 다양한 특혜로 현재의 지위를 누린다면, 대기업은 그간 희생한 다른 국민에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아들에게 도덕적 책무를 부과하는 사회적 압력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유진수 교수, 정승일 교수, 홍헌호 연구원 , 이상호 정책국장, 이정환 본지 기자. (왼쪽부터) 이치열 기자 |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이나 순환출자 금지, 초과이익 공유제도와 재벌세 신설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출총제는 삼성이 해당되지 않고 순환출자금지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와 SK등이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재벌세 역시 하위 재벌에 집중되는 방식이라 실효성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한두 개의 정책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한 여러 가지 규제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융단폭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공정거래법 규제보다는 부자 증세”라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삼성이나 현대차 1차 벤더 업체들 납품단가는 낮지 않다”면서 “이들은 동반성장은 아니더라도 동반 진출 정도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문제는 2차와 3차 벤더, 그리고 하청도 하지 못한 동네 영세상인들인데 이들은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 연구위원은 “좀 더 본질적으로 재벌을 넘어 재벌을 규제하는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리해고를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공장을 해외로 빼돌리는 건 재벌이 아니라 금융자본”이라면서 “우리가 적립식 펀드로 재테크를 할 때 우리는 재벌의 주주가 되고 공범이 된다”고 지적했다. “재벌은 우리를 위해 하청을 늘리고 임금을 깎는 것 뿐”이라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단순히 재벌해체라는 막연한 구호를 넘어 재벌을 추동하고 있는 금융자본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가 필요하고 근본적으로 주주가 모든 것을 갖는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국장 역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출총제나 순환출자 규제로 풀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 국장은 “사실 현대차는 연봉이 8천~9천만원 정도 되는데 이는 파업을 하지 않는 대가로 받는 떡고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차 하청만 해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상받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재벌에 맹목적인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벤더는 이를 그대로 배워서 2차 벤더에 무리한 납품단가를 요구하고 심지어 기술유출을 요구한다. 이처럼 재벌을 정점으로 선 관행을 사회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정승일 연구위원은 “맏아들이 동생을 안 돌보니 강제로 나눠주게 하자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순이익은 15조원, 연말에 직원들에게 나간 보너스가 2조원, 주주 배당이 7조원 정도였다. 정 연구위원은 “만약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직원들 보너스를 늘리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늘리면서 주주 배당을 줄인다면 주가가 급락할 것이고 당장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 일가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금융시장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정 연구위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2천억원 수준 밖에 안 된다”면서 “당기순이익 8조원의 현대차에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단순히 이건희 정몽구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 맏아들이 맏아들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주주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공동 저술했던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 휠체어맨(휠체어에 탄 재벌 총수들). ⓒ연합뉴스 |
정승일 연구위원은 “맏아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건 대학 등록금을 댄 부모”라면서 “재벌 문제에서 부모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재벌 활용론이 종종 재벌 옹호론으로 오용되곤 하지만 재벌 활용론은 재벌이 아닌 자들이 재벌을 활용하는 것이고 재벌을 활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쟁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재벌개혁의 방향은 결국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방점으로 연결돼야 한다”면서 “재벌을 압박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이 부자증세”라고 강조했다.
홍헌호 연구위원도 “지금은 성장전략으로 분배문제를 고민해야 할 단계”라면서 “부자 증세가 필요한 단계인데 부자가 세금을 안 내니 경기가 죽고 소비여력이 떨어져 결국 부자도 부가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에게 세금을 더 거둘 것이냐 이건희 회장에게 더 거둘 것이냐의 문제인 셈이다. 홍 연구위원은 “1930년대 대공황 때도 유효수요 창출로 위기를 돌파했는데 그때와 차이라면 그때는 국채 발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재정위기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유효수요 창출의 유일한 희망은 부자증세”라고 강조했다.
이상호 국장은 “최근 재벌개혁 논의는 지배구조 논의에 매몰돼 있다”면서 “재벌과 중소기업, 노동자, 중소상인, 소비자 사이에 놓인 (불평등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관련, “(사전 규제나 사후 보상에 앞서) 과정상 중간착취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그동안 노동운동도 ‘떡고물’에 만족해왔던 측면이 있다”면서 “‘(사측에) 복종하면 더 줄 수 있다’는 차별의 중심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헌호 연구위원은 “독일의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의원내각제처럼 감사회(의회)가 이사회(행정부)를 제어하고 감시하는 방식이다. 감사회는 주주 대표와 종업원 대표, 금융기관 대표, 때로는 지역사회 대표까지 함께 구성된다. 그리고 내각제처럼 이들이 이사회를 뽑는다. 공기업 개혁도 이런 식으로 가는 게 OECD의 권장 방안이다. 홍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잘 움직이면 재벌해체까지 가지 않더라도 좀 더 손쉬운 재벌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국장은 “초과이익 공유제는 좀 물 건너간 느낌도 있지만 성과공유제는 필요하다”면서 “대기업들은 주주들과 정규직 직원들에게만 성과를 배분하고 있는데 하청 중소기업들은 90% 이상이 1개 업체에 의존하고 있어 항의조차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최소한 사후적 보상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상 착취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독식을 막기 위해서라도 성과공유와 원자재 물가상승 연동제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고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국장은 “지금처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치고 나가야 한다”면서 “필요하다면 융단 폭격이라도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한국 사회에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연구위원도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도 시민단체들 의견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분위기”라며 “1차적으로는 납품단가 정상화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의 방향은 불법행위를 규제·처벌하는 것과 재벌체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 두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재벌빵집을 비난하는 것으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부당 내부거래를 단호하게 처벌하고 출총제를 부활하고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 못지않게 재벌세와 초과이익공유제도를 신설하는 등 강력한 융단폭격식 재벌개혁에 병행해서 재벌체제를 추동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사회적 경제와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출처 : “재벌 빵집 욕하는 걸로 세상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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