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죽은 유신시대
[서평]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유신>
[오마이뉴스] 정은균 | 14.01.31 14:45 | 최종 업데이트 14.01.31 14:47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의 심장' 박정희에게 총탄을 날렸다. 1972년 유신이 시작된 지 7년만이었다. 나는 그때 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면서 '대통령이 총에 맞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고 미심쩍어했던 기억이 어젯일처럼 새롭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잊히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도 스산한 늦가을의 대한민국이 불안하기만 했다.
박정희는 어떤 사람이었나. 황국 신민 교육이 뼈에 스민 친일 군인이었다가 광복군이 되었다. 광복군에서는 좌익이 군부에 침투시킨 최고 프락치 노릇을 했다. 체포된 뒤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수많은 동료들을 밀고했다. 그가 반공 우익의 선봉장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고 권좌에 올라서는 황제와 같은 절대불멸의 지위를 노렸으나, 결국엔 최측근 부하의 손에 총격을 당해 죽었다. 하지만 그는 반신반인같은 존재가 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유신>은 한국 현대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썼다. 2012년 1월부터 1년 반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유신과 오늘'의 글들이 책의 밑감이 되었다. 연재 제목이 말해 주는 그대로 책에 실린 글들의 내용은 박정희 시대의 야만적인 유신의 역사와 그것의 현재적인 의미, 한국 현대사에 미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연재할 때의 제목은 '유신과 오늘'이었지만, 지금은 '유신이 오늘'이 되어버"린 상황을 개탄하고 있다.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소극으로 두 번 되풀이된다는 말은 역사란 것이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무언가 같은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달라진 점을 정확히 포착하여 비극이 두 번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새 세대의 몫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이 책은 이 시대착오의 나날을 견뎌내고 나은 오늘을 누려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유신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한 구세대 역사학도가 드리는 미안한 마음이다. (15쪽)
저자가 이 책에서 훑고 있는 유신의 역사는 크고 작은 것과 숨겨진 것을 막론한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들도 다뤄지고 있다. 당신은 박정희의 유신 시대를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난 시대로 알고 있는가. 박정희의 일인 독재 통치나 근대화와 산업화 등의 말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저자는 유신 시대를 네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유신 시대는 죽음의 시대였다. 최종길, 장준하, 인혁당 관련자들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사형은 저자가 '연쇄살인'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로 극악했다. 1975년 4월 9일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 연쇄살인극은 4시간 반 만에 끝났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유신 권력은 가족들에게 그 시신마저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죽음의 시대로서의 유신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군대 내 사망자를 들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유신 시대에는 1년에 1,500명의 젊은이가 군대에서 죽어 나갔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 9년간 미군 사망자가 연평균 900명이었던 점을 환기시킨다. 한국군은 유신 기간 중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그보다 더 많은 군인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둘째, 유신 시대는 박정희 한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 만인의 자유가 희생된 시대였다. 저자가 소개하는 유신 시대 희생자의 목록은 끝이 없을 지경이다. 거물급 정치인이나 지식인에서부터 공장 여공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불문한다. 저자는 박근혜가 죽어라 하고 토론을 기피했던 것도 박정희를 닮아서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유세 다니고 토론하는 것을 하기 싫어서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버렸다고도 해석한다.
셋째, 유신 시대는 표현의 자유가 끔찍하게 유린당한 시대였다. 하고 싶은 말과 쓰고 싶은 글을 강제적으로 침묵당하는 상황의 고통을 떠올려 보라. 저자에 따르면, 유신 시대는 '유신독재 타도하자'나 '유신헌법 철폐하라'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헌법을 '고쳐주세요' 하고 부탁(청원)만 해도 영장 없이 체포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체포당한 사람들에게는 (일반 법정도 아닌)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형을 때려버렸다.
넷째, 유신 시대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인간 내면의 양심의 자유까지 침해된 시대였다. 저자는 박정희가, 전향하지 않는 좌익수들의 꼴을 봐주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1975년 제정된 사회안전법의 예를 든다.
이 법은 좌익사범들이 형기를 다 살았어도 전향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계속 옥살이를 시킬 수 있게 했다. 형기를 마치고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다시 잡아들여 보호감호란 이름으로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시킨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법이 법의 이름으로 횡행하던 유신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신이 오늘'이 돼 버린 상황은, '유신의 몸과 광주의 몸'을 가진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력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유신공주' 박근혜가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첫 번째로 다룬 안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특별하게' 해석한다.
나를 절망케 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고, 국내외에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 아주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인 첫 번째 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이 왜 하필 경범죄처벌법의 노출단속 조항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국민에 대한 통제였을까? ··· 박근혜 대통령은, 그리고 그의 참모들은 첫 번째 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에 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단 말인가? 그 점에 관한 한 정녕 유신의 적통을 이은 정권임에 틀림없다. (270~271쪽)
박근혜 취임 뒤로 '심기 경호'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박근혜의 '심기'가 편안하도록 미리 알아서 챙겨 박근혜로 하여금 국정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를 챙기는 그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봉건시대의 절대 군주제도 아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연히 떠다녀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닐까.
시민들은 하루하루 불편하고 위태롭게 살아간다. 직장에서 죽자사자 일하는 이유와 보람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일 뿐인 세상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은 애오라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는 세상을 어느 누가 '정상'으로 여길까. 그렇게 시커먼 속을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이 태반인 세상에서 박근혜 '심기'가 편안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가장 시커먼 속으로 지내야 하는 '국민 최고의 종' 대통령이 말이다.
유신 시대는 이 책의 부제대로 박정희라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였다. 저자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박정희 한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 만인의 자유가 희생된 시대였다. 박근혜가이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신유신'이니 '유신의 부활'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떠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자유를 위해 만인의 자유를 희생시킬까. 깨어 있는 시민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이 책 <유신>을 통해 살아 있는 시민의 힘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
<유신>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 1. 15 | 471쪽 | 20,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출처 : 전쟁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죽은 유신시대
[서평]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유신>
[오마이뉴스] 정은균 | 14.01.31 14:45 | 최종 업데이트 14.01.31 14:47
▲ <유신> 표지 |
박정희는 어떤 사람이었나. 황국 신민 교육이 뼈에 스민 친일 군인이었다가 광복군이 되었다. 광복군에서는 좌익이 군부에 침투시킨 최고 프락치 노릇을 했다. 체포된 뒤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수많은 동료들을 밀고했다. 그가 반공 우익의 선봉장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고 권좌에 올라서는 황제와 같은 절대불멸의 지위를 노렸으나, 결국엔 최측근 부하의 손에 총격을 당해 죽었다. 하지만 그는 반신반인같은 존재가 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유신>은 한국 현대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썼다. 2012년 1월부터 1년 반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유신과 오늘'의 글들이 책의 밑감이 되었다. 연재 제목이 말해 주는 그대로 책에 실린 글들의 내용은 박정희 시대의 야만적인 유신의 역사와 그것의 현재적인 의미, 한국 현대사에 미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연재할 때의 제목은 '유신과 오늘'이었지만, 지금은 '유신이 오늘'이 되어버"린 상황을 개탄하고 있다.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소극으로 두 번 되풀이된다는 말은 역사란 것이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무언가 같은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달라진 점을 정확히 포착하여 비극이 두 번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새 세대의 몫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이 책은 이 시대착오의 나날을 견뎌내고 나은 오늘을 누려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유신시대를 제대로 장송하지 못한 구세대 역사학도가 드리는 미안한 마음이다. (15쪽)
저자가 이 책에서 훑고 있는 유신의 역사는 크고 작은 것과 숨겨진 것을 막론한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들도 다뤄지고 있다. 당신은 박정희의 유신 시대를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난 시대로 알고 있는가. 박정희의 일인 독재 통치나 근대화와 산업화 등의 말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저자는 유신 시대를 네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유신 시대는 죽음의 시대였다. 최종길, 장준하, 인혁당 관련자들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사형은 저자가 '연쇄살인'이라는 말로 표현할 정도로 극악했다. 1975년 4월 9일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 연쇄살인극은 4시간 반 만에 끝났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유신 권력은 가족들에게 그 시신마저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죽음의 시대로서의 유신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군대 내 사망자를 들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유신 시대에는 1년에 1,500명의 젊은이가 군대에서 죽어 나갔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 9년간 미군 사망자가 연평균 900명이었던 점을 환기시킨다. 한국군은 유신 기간 중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그보다 더 많은 군인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둘째, 유신 시대는 박정희 한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 만인의 자유가 희생된 시대였다. 저자가 소개하는 유신 시대 희생자의 목록은 끝이 없을 지경이다. 거물급 정치인이나 지식인에서부터 공장 여공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불문한다. 저자는 박근혜가 죽어라 하고 토론을 기피했던 것도 박정희를 닮아서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유세 다니고 토론하는 것을 하기 싫어서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버렸다고도 해석한다.
셋째, 유신 시대는 표현의 자유가 끔찍하게 유린당한 시대였다. 하고 싶은 말과 쓰고 싶은 글을 강제적으로 침묵당하는 상황의 고통을 떠올려 보라. 저자에 따르면, 유신 시대는 '유신독재 타도하자'나 '유신헌법 철폐하라'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헌법을 '고쳐주세요' 하고 부탁(청원)만 해도 영장 없이 체포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체포당한 사람들에게는 (일반 법정도 아닌)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형을 때려버렸다.
넷째, 유신 시대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인간 내면의 양심의 자유까지 침해된 시대였다. 저자는 박정희가, 전향하지 않는 좌익수들의 꼴을 봐주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1975년 제정된 사회안전법의 예를 든다.
이 법은 좌익사범들이 형기를 다 살았어도 전향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계속 옥살이를 시킬 수 있게 했다. 형기를 마치고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다시 잡아들여 보호감호란 이름으로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시킨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법이 법의 이름으로 횡행하던 유신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신이 오늘'이 돼 버린 상황은, '유신의 몸과 광주의 몸'을 가진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력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유신공주' 박근혜가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첫 번째로 다룬 안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특별하게' 해석한다.
나를 절망케 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고, 국내외에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 아주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인 첫 번째 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이 왜 하필 경범죄처벌법의 노출단속 조항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이 되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국민에 대한 통제였을까? ··· 박근혜 대통령은, 그리고 그의 참모들은 첫 번째 국무회의의 첫 번째 안건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에 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단 말인가? 그 점에 관한 한 정녕 유신의 적통을 이은 정권임에 틀림없다. (270~271쪽)
박근혜 취임 뒤로 '심기 경호'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박근혜의 '심기'가 편안하도록 미리 알아서 챙겨 박근혜로 하여금 국정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를 챙기는 그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봉건시대의 절대 군주제도 아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연히 떠다녀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닐까.
시민들은 하루하루 불편하고 위태롭게 살아간다. 직장에서 죽자사자 일하는 이유와 보람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일 뿐인 세상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은 애오라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일하는 세상을 어느 누가 '정상'으로 여길까. 그렇게 시커먼 속을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이 태반인 세상에서 박근혜 '심기'가 편안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가장 시커먼 속으로 지내야 하는 '국민 최고의 종' 대통령이 말이다.
유신 시대는 이 책의 부제대로 박정희라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였다. 저자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박정희 한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 만인의 자유가 희생된 시대였다. 박근혜가이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신유신'이니 '유신의 부활'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떠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자유를 위해 만인의 자유를 희생시킬까. 깨어 있는 시민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이 책 <유신>을 통해 살아 있는 시민의 힘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
<유신>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 1. 15 | 471쪽 | 20,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출처 : 전쟁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죽은 유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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