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50억' 어쩔 거냐는 질문에...
[단독] 이학봉 전 준장 사망... 빈소에서 '12·12 군사반란' 핵심세력 회동
[오마이뉴스] 이희훈 이주영 유성애 | 14.05.25 17:25 | 최종 업데이트 14.05.26 09:15
전두환 전 대통령 등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5공화국 당시 핵심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장세동 전 3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등은 25일 오후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77, 1980년 육군 준장 예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회동했다. 이 전 처장 역시 당시 반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이학봉 전 처장은 전날(24일) 새벽 폐암으로 사망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 정·관·재계 인사들이 이 전 처장의 장례식장에 근조 화환을 보내왔다.
5공화국 주요 인물들이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회동한 것은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5공화국 당시 측근들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으로 불러 각종 모임을 주관하는 등 비공개 회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10개월 만에 외출에 나선 전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알려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남은 추징금 어떻게?" 질문에, 전두환 "나중에 결정되면..."
전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는 25일 오후 2시 30분께 5공화국 관계자 10여 명과 함께 이학봉 전 처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을 찾았다. 경호원 20여 명도 대동했다.
장세동 단장 등 5공화국 관계자 20여 명은 전 전 대통령 부부가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장례식장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그의 뒤를 따라 줄지어 빈소로 들어갔다. 35년 전,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젊은 군인이었던 이들은 머리가 벗겨지거나 백발이 만연한 장년층으로 변해 있었다. 이날은 군복 대신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전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보였다. 일부 인물들은 전 전 대통령 경호원들과 함께 취재진의 접근을 제한하는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유족들과 짧게 인사한 뒤, 장 전 단장·박 전 총장·정호용 전 국방장관 등 5공화국 핵심 관계자 20여 명과 함께 빈소에서 얘기를 나눴다. 빈소 밖에서도 5공화국 당시 군인이었던 일부 조문객들이 전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이들은 서로 "각하께서 자네를 보시길 원하신다", "각하와 악수해본 적 있나"라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장세동 전 단장을 포함한 조문객들은 전 전 대통령이 이 전 처장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장 전 단장은 "(이 전 처장이) 폐암 때문에 너무 일찍 죽었다면서 슬퍼하셨다"고, 이 전 처장의 장례를 맡은 상조회사 부회장인 한길성 전 육군소령은 "(이 전 처장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대통령이 무척 안타까워 하셨다"고 했다.
5공화국 인물들과 회동한 전 전 대통령은 빈소에 약 1시간 머물다가 오후 3시 30분께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은 "남은 추징금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그때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복권됐다. 2014년 현재 미납된 추징금은 1250여억 원에 달한다.
장례식장에 따르면,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군사반란 관련 핵심인물들은 지난 24일 밤 조문을 다녀갔다. 25일 오후에는 전 전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5공화국 관계자 22명이 참석한다고 유족에게 미리 통보했다.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300여 명에 이른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족들은) 12.12 군사반란 관련해서는 유족들에게 금기사항"이라며 "원래는 부고 알리는 것도 원치 않다가 전 전 대통령도 오고해서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12·12 군사반란 핵심인물 이학봉은 누구?
이 전 처장은 1938년 5월 부산에서 태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도왔으며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민자당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이 전 처장 등 12·12반란에 가담했던 핵심인물 10명은 지난해 11월 국방부에 밀린 연금을 지급해 달라는 민원 신청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 '12·12 군사반란 가담자 10명 "군인연금 달라" 소송')
고인을 비롯한 장세동 전 단장,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 등은 지난 1997년 4월 17일 5·18 특별법에 따라 12·12 반란모의 참여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2·12 군사반란 관련 기소자 중 사망자는 백운택 전 71방위사단장(서울 현충원), 정도영 전 보안사 보안처장, 유학성 전 국방부 군수차관보 등이다.
이 전 처장은 신군부의 핵심이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 당시 보안사 수사국장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했으며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보안사 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장을 맡아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조사를 총지휘했다.
5공 출범 이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며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김해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 전 처장은 2012년부터 폐 질환을 앓다가 지난 24일 새벽 2시 50분 사망했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한다.
출처 : 전두환, '1250억' 어쩔 거냐는 질문에...
[단독] 이학봉 전 준장 사망... 빈소에서 '12·12 군사반란' 핵심세력 회동
[오마이뉴스] 이희훈 이주영 유성애 | 14.05.25 17:25 | 최종 업데이트 14.05.26 09:15
▲ 입 굳게 다문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군사반란 당시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 방문을 위해 들어 서고 있다. 이씨는 24일 오전 폐암으로 사망했다. ⓒ 이희훈 |
▲ 조문 마친 전두환에게 인사하는 측근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군사반란 당시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측근들이 배웅하고 있다. ⓒ 이희훈 |
전두환 전 대통령 등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5공화국 당시 핵심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장세동 전 3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등은 25일 오후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77, 1980년 육군 준장 예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회동했다. 이 전 처장 역시 당시 반란에 가담한 인물이다.
이학봉 전 처장은 전날(24일) 새벽 폐암으로 사망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 정·관·재계 인사들이 이 전 처장의 장례식장에 근조 화환을 보내왔다.
5공화국 주요 인물들이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회동한 것은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5공화국 당시 측근들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으로 불러 각종 모임을 주관하는 등 비공개 회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10개월 만에 외출에 나선 전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알려주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남은 추징금 어떻게?" 질문에, 전두환 "나중에 결정되면..."
▲ 부인과 장례식장 찾은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왼쪽)와 함께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 방문을 위해 들어 서고 있다. ⓒ 이희훈 |
▲ 장례식장 방문한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오른쪽)와 함께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군사반란 당시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 방문을 위해 들어 서고 있다. ⓒ 이희훈 |
전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는 25일 오후 2시 30분께 5공화국 관계자 10여 명과 함께 이학봉 전 처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을 찾았다. 경호원 20여 명도 대동했다.
장세동 단장 등 5공화국 관계자 20여 명은 전 전 대통령 부부가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장례식장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그의 뒤를 따라 줄지어 빈소로 들어갔다. 35년 전,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젊은 군인이었던 이들은 머리가 벗겨지거나 백발이 만연한 장년층으로 변해 있었다. 이날은 군복 대신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전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을 보였다. 일부 인물들은 전 전 대통령 경호원들과 함께 취재진의 접근을 제한하는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유족들과 짧게 인사한 뒤, 장 전 단장·박 전 총장·정호용 전 국방장관 등 5공화국 핵심 관계자 20여 명과 함께 빈소에서 얘기를 나눴다. 빈소 밖에서도 5공화국 당시 군인이었던 일부 조문객들이 전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이들은 서로 "각하께서 자네를 보시길 원하신다", "각하와 악수해본 적 있나"라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장세동 전 단장을 포함한 조문객들은 전 전 대통령이 이 전 처장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장 전 단장은 "(이 전 처장이) 폐암 때문에 너무 일찍 죽었다면서 슬퍼하셨다"고, 이 전 처장의 장례를 맡은 상조회사 부회장인 한길성 전 육군소령은 "(이 전 처장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대통령이 무척 안타까워 하셨다"고 했다.
5공화국 인물들과 회동한 전 전 대통령은 빈소에 약 1시간 머물다가 오후 3시 30분께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은 "남은 추징금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나중에 결정되면 그때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복권됐다. 2014년 현재 미납된 추징금은 1250여억 원에 달한다.
장례식장에 따르면,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군사반란 관련 핵심인물들은 지난 24일 밤 조문을 다녀갔다. 25일 오후에는 전 전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5공화국 관계자 22명이 참석한다고 유족에게 미리 통보했다.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300여 명에 이른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족들은) 12.12 군사반란 관련해서는 유족들에게 금기사항"이라며 "원래는 부고 알리는 것도 원치 않다가 전 전 대통령도 오고해서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12·12 군사반란 핵심인물 이학봉은 누구?
▲ 군사반란 측근 빈소 찾은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 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에 들어 서고 있다. ⓒ 이희훈 |
▲ 장례식장에 모습 드러낸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12.12군사반란 당시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의 빈소 방문을 위해 들어 서고 있다. ⓒ 이희훈 |
이 전 처장은 1938년 5월 부산에서 태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도왔으며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민자당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이 전 처장 등 12·12반란에 가담했던 핵심인물 10명은 지난해 11월 국방부에 밀린 연금을 지급해 달라는 민원 신청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 '12·12 군사반란 가담자 10명 "군인연금 달라" 소송')
고인을 비롯한 장세동 전 단장,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 등은 지난 1997년 4월 17일 5·18 특별법에 따라 12·12 반란모의 참여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2·12 군사반란 관련 기소자 중 사망자는 백운택 전 71방위사단장(서울 현충원), 정도영 전 보안사 보안처장, 유학성 전 국방부 군수차관보 등이다.
12·12 군사반란은 지난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하고 군부 권력을 장악했다.
당시 12·12 군사반을 통해 정치적 실세로 등장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은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진압했다.
당시 12·12 군사반을 통해 정치적 실세로 등장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은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진압했다.
이 전 처장은 신군부의 핵심이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 당시 보안사 수사국장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수사했으며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보안사 대공처장 겸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장을 맡아 정치인과 학생들에 대한 체포조사를 총지휘했다.
5공 출범 이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며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김해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 전 처장은 2012년부터 폐 질환을 앓다가 지난 24일 새벽 2시 50분 사망했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한다.
출처 : 전두환, '1250억' 어쩔 거냐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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