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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 향한 돌직구 ‘실종느와르 M’

쌍용차 사태 향한 돌직구 ‘실종느와르 M’
[민중의소리] 이정미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5-04 08:32:16


여기 의문의 동영상이 하나 있다. 3일 전 실종된 20대 여대생이 남긴 마지막 동영상으로,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살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경찰은 이 여대생의 행적을 추적한다. 실종된 여대생을 찾는 도중 경찰들은 다른 자살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것도 세 건씩이나. 게다가 그 모든 자살의 현장이 여대생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경찰만 알고 있는 사실들이 포함된 채로 말이다.

▲ 실종느와르 M '예고된 살인' ⓒ화면캡쳐

이렇게 되면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3건의 자살 사건이 사실 자살로 가장된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혹, 그리고 그 여대생이 그 사건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 그래서 연쇄살인범이 그 여대생까지 죽이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 어쩌면 그 여대생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사라진 여대생과 3건의 자살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추리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만 들어도 별별 이야기를 짜내며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해질 것이다. 이 드라마는 바로 OCN의 새 주말극인 '실종느와르 M' 여섯 번째 회차 '예고된 살인'이다.

장르물을, 그것도 수사물을 고집하고 있는 OCN의 드라마 중 가장 빼어난 실력을 보이는 '실종느와르 M'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간 다소 느슨했던 '특수사건전담반'이나 후반부로 가면서 김이 빠졌던 '나쁜 녀석들'과 달리 '실종느와르 M'은 사건 해결 과정 내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드라마에 빠져들게 한다. OCN의 드라마가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게다가 까칠한 김강우와 무대포 박희순의 탄탄한 연기는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나 김강우의 카리스마는 이 남자의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김강우가 연기하는 길수현에게 숨겨진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도 매회 줄거리와는 별도로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김강우가 까칠한 천재로 드라마를 무겁게 만든다면 박희순은 능구렁이다운 재치와 깨알 웃음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날려 보낸다. 두 사람의 적절한 균형이 잘 어우러져 극 중 호흡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다시 '예고된 살인'편으로 돌아가 보자. 왠지 연쇄살인범을 다룰 것만 같던 이번 회차 사건을 쫓다 보니 이거 뭔가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여대생과 세 명의 자살자들은 한 공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다들 이 공장에 다녔고, 같은 시기에 해고됐단다. 여대생의 아버지만이 자살이 아닌 돌연사로 사망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과거 그들이 해고됐던 그 당시로 들어간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설마 설마를 읊조리게 된다. 촉이 좋은 시청자라면 해고된 노동자들이 나오는 부분에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에서 그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2009년 2천여 명의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던 쌍용차 정리해고를 소재로 했음이 분명하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공간은 다른 제조공장이었지만.

급작스러운 정리해고 통보에 울분을 터트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당시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현장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이야기다. 시킨 대로 열심히 일했는데 시킨 대로 관둬야 하냐고, 내가 뭘 잘못한 거냐는 억울함 말이다.

그뿐인가. 드라마 곳곳에 쌍용차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천막에 붙여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플랭카드,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사측의 공작, 쇠구슬 발사, 해고자 아내의 자살 등 당시 쌍용차 사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것들이다.

▲ 실종느와르 M '예고된 살인' ⓒ화면캡쳐

드라마는 모두 외면하고 싶어 했던 노-노 갈등에 시선을 보낸다. 파업을 진행하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심정을,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친한 형동생이었던 네 명의 공장 동료가 있다. 큰 형이자 여대생의 아버지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지만 파업에 참여했다가 미대를 가고 싶어하는 딸을 위해 도중에 공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몇 년 뒤 공장에서 갑작스레 심장정지로 사망한다. 한편 파업 현장에 남아있던 동료들은 당연히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장례식장에도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몇 년 후 힘든 삶을 스스로 정리했다.

파업을 계속했던 이들이 생계난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이듯, 공장으로 돌아갔던 이들도 죄책감에 힘들어했다. 이들의 모습은 지금 화면 밖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두 명의 쌍용차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8번째다.

이 드라마의 화자가 공장으로 돌아간 노동자의 딸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아버지들 세대에 일어난 정리해고가 자식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여대생이 결국 자살을 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이 난다. 자식 때문에 동료를 등졌던 아버지의 선택은 자식에게까지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자살로 몰아간다. 정리해고가 단지 노동자 몇 명을 해고한다는 숫자놀음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뿐인가. 이 드라마는 아예 대놓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한다. 소제목부터가 '예고된 살인'이다. 정리해고한 순간 노동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제목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대사에는 아예 대놓고 말한다. 극 중 의사인 박소현의 입을 빌려 이 모든 죽음이 다 해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럼 살인의 주체는 누구일까. 당연히 회사다. 드라마에서 여대생을 죽이는 건 외국인 살인청부업자다. 살인청부업자니 당연히 의뢰인이 있을 테다. 여대생 본인이 의뢰인임을 알아챈 김강우는 이 사실을 숨긴다. 경찰은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남기고, 뉴스 보도 후 국민은 사건의 배후에 회사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친한 형동생 사이를 장례식장에도 안 찾아갈 정도로 찢어발기고, 자식들까지 그 굴레에서 허덕이게 만드는 정리해고를 처벌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 그러나 자살한 이들이 결코 스스로 원해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건 밝히고 싶다는 의지가 읽힌다.

드라마 중간에 네티즌 반응이 나오는데 순간 심장이 콕 찔렸다. '그 사건 아직 해결이 안된 거였어?'라는 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바로 한 달여 전에도 100일 넘게 굴뚝 농성을 했다. 물론 여전히 공장은 쌩쌩 잘만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의 무관심이 그 여대생의 자살을 불러온 건 아닐까 움찔해졌다.

자살한 여대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국민들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아빠가 죽은 것도 삼촌들이 죽은 것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버틸 수도 살 수도 없었어요. 도저히 살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요, 그들은 정말 잘못이 없을까요? 사람들이 죽는데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랬어요. 죽기 전에 제가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그림. 아빠의 죽음도 아저씨들의 자살도 결국 살인이니까. 기억해주세요. 이 죽음들을. 그리고 이젠 죽지 말아요."

이 이야기를 위해 드라마를 처음부터 챙겨볼 필요는 없다. 이번 '예고된 살인' 한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옴니버스 드라마의 장점이 그렇지 않나.

▲ 실종느와르 M ⓒ민중의소리

그런데 이 '실종느와르 M'은 굉장히 수상스럽다. 스릴러 범죄물인 줄 알았는데 점점 사회 문제를 다룬다. 이 시대에 풀 수 없는 미제 사건은 모두 권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듯.

6회 동안 다룬 사건은 4개다. 그중 2개는 완전한 해결을, 나머지 2개는 퍼즐을 완벽하게 풀지 못했다. 해결된 2개의 사건은 개인 간의 원한과 복수가 담겨있지만 미해결 사건 2개는 권력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특이점이다.

물론 앞서 해결된 2개의 사건 역시 힘이 없는 약자들은 피해를 봐도 법으로 해결할 수 없어 복수를 위해서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그러더니 세번 째부터는 아예 사회적 타살을 이야기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비리 때문에 살해된 동생의 범인을 잡지 못해 복수로 살인하는 오빠의 이야기가 세 번째 사건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사건이 '예고된 살인'이다.

결국 이 드라마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회비판 드라마인 셈이다.


출처  [이정미의 왕수다] 쌍용차 사태 향한 돌직구 ‘실종느와르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