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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

뉴라이트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
[게릴라 칼럼] 건국 67주년 발언에 담긴 문제점
[오마이뉴스] 김종성 | 15.08.19 19:29 | 최종 업데이트 15.08.19 19:29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는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말이 된다.

1945년에 광복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료상의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광복(光復)은 말 그대로 '밝게 돌아오다'란 뜻이다. 이것을 근거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다'란 의미가 나왔다.

서기 356년에 진(晋)나라는 과거의 도읍인 낙양(뤄양)을 되찾았다. 이 진나라는 진시황제의 진(秦)나라와는 다르다. 356년의 이 사건을 두고 진나라 역사서인 <진서> 환온 열전에서는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1912년 중국 한족은 만주족 청나라를 몰아내고 중화민국을 세웠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 혁명가 손문(쑨원)은 '광복'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 1945년 8월 15일에 우리 민족이 겪은 일을 '광복'으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대한민국 출발점이 1948년?

하지만,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1948년이라는 박근혜의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한반도 일부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보유한 대한민국 정부가 그 해 8월 15일에 수립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정부 수립이 국가 수립 곧 건국과 등치되지만, 우리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정부 수립과 건국을 등치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가 있는데도 박근혜는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 발언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과 혼동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의 발언은 결코 무심코 나온 게 아니다. 이 발언은 의도적이다. 이 발언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뉴라이트(신보수) 진영의 역사관을 대변하고 있다.

뉴라이트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인정하고 있으며 반대편은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다가 그들이 반(反)통일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그들의 인식 속에는 반헌법적 요소가 깊이 스며져 있다. 그런 그들의 사고체계를 박근혜가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 1945년 8월 15일 열린 ‘정부 수립 기념 축하식’. 이 당시에는 ‘정부 수립’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서울 광화문광장 동북쪽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대한민국 출발을 1948년에 두고자 하는 그들의 속사정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정신은 헌법 전문(前文)에 담겨 있다. 전문의 첫 문장은 대한민국의 법통 즉 법적 정통성에 관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가 전문의 첫 구절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출발점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 계승한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면,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 헌법에서는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를 분리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 헌법에서 양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적 관계에 있다.

'대한국민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구절은, 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 한민족 구성원들이 대한국민의 자격을 얻었고 그 대한국민들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하여 1948년에 대한민국정부를 정식으로 세우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는 국가의 의지를 행정적으로 집행하는 기구다. 임시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1919년에 비록 임시정부 형태로나마 정부가 수립됐다는 사실을 헌법이 인정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때 건국됐음을 헌법이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점은 1948년에 제정된 최초 헌법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최초 헌법의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선언했다. 최초 헌법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에 있었음을 보다 더 명확히 밝혔다.

▲ 상해(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서울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 및 김구 암살 현장)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물론 191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대해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그때 세워진 대한민국의 의지를 행정적으로 집행할 임시정부는 실질적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 헌법이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인정하는 데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불법화하고 1948년 정부 수립을 합법화하기 위한 고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선,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인정함으로써 1945년 이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다. 또 1948년의 정부 수립이 1919년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사람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물론,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부터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을 우리 헌법이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와 같은 합리적 이유에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뉴라이트들도 이런 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들도 대한민국이 1919년의 정신 위에서 세워졌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굳이 1948년에 두고자 하는 데는 그들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그것은 북한을 우리나라의 범주에 넣지 않으려는 반통일적 정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48년에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로 수립된 남한 단독정부만이 우리 민족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인정하고 싶은 속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있거나 말거나, 그들은 한반도의 절반만을 우리나라로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의 의미를 굳이 부정하고자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 이승만을 존경한다. 임시정부는 바로 그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추대하는 가운데 초기 역사를 시작했다. 만약 임시정부의 역사가 이승만의 임시정부로 끝났다면, 뉴라이트들도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점을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이승만과 하지 중장 사이에 낀 김구. 이승만과 미국 사이에 낀 김구의 처지를 보여주는 사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사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북한을 '우리'범주에 놓기 싫어하는 정서

하지만, 이승만의 임시정부가 별다른 업적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1930년대에 임시정부는 김구의 임시정부로 바뀌었다. 김구의 임시정부가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업적을 세웠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김구의 임시정부는 중국정부와의 협조 속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또 김구의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1945년에 귀국한 뒤로 미군정과 이승만의 분단정책에 맞서 투쟁했다. 그들은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구성하고자 했다.

이렇게 임시정부가 나중에는 김구의 임시정부로 바뀌는 것도 모자라 미국과 이승만의 반통일 노선에 맞섰기 때문에, 이승만을 존경하는 뉴라이트들로서는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따라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반통일적 정서가 꿈틀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우리'의 범주에 넣기 싫어하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 '대한국민들'이 헌법 전문에 심어놓은 정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은 국가보안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뉴라이트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헌법이 인정한 1919년의 의미를 부정하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고자 하는 세력도 국가보안법의 규율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을 부정하는 세력만큼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세력이 또 있을까.

2013년 2월 25일 취임식장에서 박근혜는 헌법 제69조에 따라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선서를 낭독했다. 그런 박근혜가 헌법 전문에 담긴 1919년의 의미를 무시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뉴라이트들의 행태를 추종하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가 헌법을 준수할 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박근혜의 지난주 8·15 경축사 발언은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출처  뉴라이트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