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이 ‘애국’이라는 국사교과서가 온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정권의 역사 쿠데타 ①
[민중의소리]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 | 최종업데이트 2015-08-25 20:25:38
설마 했다. 아무리 막나가는 박근혜정권이라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제도(국정제)로 발행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망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낌새를 보면 역시 박근혜정권이다. 유신체제의 적통답다. 기어이 박정희 정권이 그랬듯이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대로 통제하기 위해 국정제를 밀어붙이겠단다.
최근 정부여당의 고위 책임자들이 국정제로의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는 올 9월 안에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 이미 정부여당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교과서 발행 제도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최소한의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비밀리에 그것도 졸속으로 강행하는 것 자체가 정부여당 스스로도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국정제로의 회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그야말로 정권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역사를 뜯어고치려는 역사쿠데타일 뿐이다.
국정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국정제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교과서 발행제도이다. 그런데도 박근혜정권은 국정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일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악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정제 강행의 배후는 따로 있다. 2013년에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난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고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비호를 받았을 때 이미 교학사 교과서를 준(準)국정 교과서로 밀어붙인 배후세력이 청와대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결국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퇴출되자 아예 검정제를 국정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박근혜정권은 국정제의 명분으로 대입 수능시험에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으니 한 권의 교과서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든지, 국가 정체성을 위해서는 역사교육은 한 가지로 가르쳐야만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만약 전자의 논리대로 한다면 수능시험의 필수과목이 된 지 오래인 영어나 수학은 일찌감치 국정 교과서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교과서와 수학 교과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검정 교과서이다. 앞으로도 국정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
결국 수능시험 때문에 한국사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다. 후자의 논리는 더 고약하다. 하나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의 속성으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정체성 운운하는 이면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주입시킴으로써 박근혜정권 이후에도 보수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흑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뒤 정권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인식을 뒤집어엎으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국정제 강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정권에서 발행될 지도 모를 국정 교과서의 모습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예만 들어보자.
며칠 전에 법무부에서 광복70주년을 기린다고 청소년용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그 동영상에서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낸 거물급 친일파 윤치호를 안창호, 김구, 김좌진, 윤봉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소개해 크게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홈페이지의 동영상에서 윤치호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윤치호가 누구인가?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1,00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제강점 초기의 대표적인 친일파가 이완용이라면 윤치호는 거기에 비견할 만한 일제강점 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이런 친일파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대한민국 ‘법질서 확립’의 주무 부서인 법무부의 역사인식 수준이다.
친일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단지 법무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 초에 교육부에서는 뜬금없이 교육자로서 시대를 초월해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을 대상으로 ‘이 달의 스승’이라는 것을 시행하기로 했는데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으로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인 최규동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급 학교를 통해 최규동을 기리는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최규동은 민족교육자가 아니었고 민족운동가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최규동은 일제강점 말기에 학생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하는 데 앞장선 친일 교육자였다. 오래 전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을 때 정부에서 친일파인 최규동을 독립운동가라고 서훈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친일 관련 자료가 많이 발굴된 오늘날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면 최규동의 여러 친일 행적이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박탈되어 마땅할 최규동에게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이라는 영예까지 안기려고 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와 국방부도 한심하기로는 법무부나 교육부에 뒤지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는 한국을 빛낸 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친일 무용가 최승희가 버젓이 올라 있다. 국방부는 친일 군인 출신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가 하면 2013년부터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딴 한미동맹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친일파를 대표적인 ‘위인’으로 만들려는 후안무치한 작태는 단지 일부 정부 부처의 무지와 몰상식의 탓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친일과 독립운동, 더 나아가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극우적 사시로 바라보는 박근혜정권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 대통령 경축사에는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건국 67주년’은 지난 2013년, 2014년 광복절 경축사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생경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는 10년 단위로 특별한 해를 기념한다. 따라서 67주년이라는 숫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광복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국 67주년’을 강조한 것은 뉴라이트의 숙원인 건국절 제정을 박근혜정권이 사실상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2007년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정갑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한 적이 있다.
이후 뉴라이트와 보수언론, 그리고 일부 보수정치인은 학계, 시민단체,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을 기리는 광복절을 대한민국이 ‘건국’된 8월 15일을 기리는 ‘건국절’로 대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친일과 독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이다. 둘 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지만 재임 기간 내내 독재권력을 행사하다가 권좌에서 쫓겨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할 때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 온 국민의 여망이던 친일청산에 반대했다. 제헌헌법을 바탕으로 출범한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킨 주역도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이후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 1인독재를 위한 헌정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끝에 4월혁명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났다.
4월혁명으로 꽃피운 민주주의에의 열망을 짓밟은 것은 친일군인 출신의 박정희였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헌정을 중단시켰다. 20년 가까운 박정희 독재체제를 뒷받침한 세력 역시 이승만정권에서 기사회생한 친일파였다. 박정희의 헌법 파괴는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한 1969년 개헌, 그리고 아예 영구집권을 목표로 한 1972년의 이른바 유신헌법 개헌으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던 20여 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압살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부마항쟁 등 민중의 극렬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신체제는 측근에 의한 박정희 ‘암살’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출처 [이준식 칼럼] ‘친일’이 ‘애국’이라는 국사교과서가 온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근혜정권의 역사 쿠데타 ①
[민중의소리]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 | 최종업데이트 2015-08-25 20:25:38
설마 했다. 아무리 막나가는 박근혜정권이라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제도(국정제)로 발행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망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낌새를 보면 역시 박근혜정권이다. 유신체제의 적통답다. 기어이 박정희 정권이 그랬듯이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대로 통제하기 위해 국정제를 밀어붙이겠단다.
최근 정부여당의 고위 책임자들이 국정제로의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는 올 9월 안에 국정화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 이미 정부여당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보도마저 나오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교과서 발행 제도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최소한의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비밀리에 그것도 졸속으로 강행하는 것 자체가 정부여당 스스로도 국정교과서로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국정제로의 회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그야말로 정권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역사를 뜯어고치려는 역사쿠데타일 뿐이다.
박근혜가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논란 배후는...'청와대'
국정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국정제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교과서 발행제도이다. 그런데도 박근혜정권은 국정제를 강행하려고 한다. 일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악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정제 강행의 배후는 따로 있다. 2013년에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난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고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비호를 받았을 때 이미 교학사 교과서를 준(準)국정 교과서로 밀어붙인 배후세력이 청와대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결국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퇴출되자 아예 검정제를 국정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박근혜정권은 국정제의 명분으로 대입 수능시험에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으니 한 권의 교과서로 가르치는 게 좋겠다든지, 국가 정체성을 위해서는 역사교육은 한 가지로 가르쳐야만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만약 전자의 논리대로 한다면 수능시험의 필수과목이 된 지 오래인 영어나 수학은 일찌감치 국정 교과서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교과서와 수학 교과서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검정 교과서이다. 앞으로도 국정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다.
결국 수능시험 때문에 한국사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다. 후자의 논리는 더 고약하다. 하나의 국가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의 속성으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정체성 운운하는 이면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주입시킴으로써 박근혜정권 이후에도 보수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흑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둔갑...한국사 국정화의 미래?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뒤 정권 차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인식을 뒤집어엎으려는 시도가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국정제 강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정권에서 발행될 지도 모를 국정 교과서의 모습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몇 가지 대표적인 예만 들어보자.
며칠 전에 법무부에서 광복70주년을 기린다고 청소년용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그 동영상에서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낸 거물급 친일파 윤치호를 안창호, 김구, 김좌진, 윤봉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소개해 크게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홈페이지의 동영상에서 윤치호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윤치호가 누구인가?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1,00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제강점 초기의 대표적인 친일파가 이완용이라면 윤치호는 거기에 비견할 만한 일제강점 말기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이런 친일파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대한민국 ‘법질서 확립’의 주무 부서인 법무부의 역사인식 수준이다.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한 최규동은 일제강점 말기에 학생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하는 데 앞장선 친일 교육자였다. ⓒ출처 : 교육부
친일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단지 법무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 초에 교육부에서는 뜬금없이 교육자로서 시대를 초월해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을 대상으로 ‘이 달의 스승’이라는 것을 시행하기로 했는데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으로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이자 민족운동가”인 최규동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급 학교를 통해 최규동을 기리는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려고 했다.
그런데 최규동은 민족교육자가 아니었고 민족운동가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최규동은 일제강점 말기에 학생들에게 일본군이 되어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라고 선동하는 데 앞장선 친일 교육자였다. 오래 전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을 때 정부에서 친일파인 최규동을 독립운동가라고 서훈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친일 관련 자료가 많이 발굴된 오늘날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면 최규동의 여러 친일 행적이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박탈되어 마땅할 최규동에게 첫 번째 ‘이 달의 스승’이라는 영예까지 안기려고 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와 국방부도 한심하기로는 법무부나 교육부에 뒤지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는 한국을 빛낸 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된 친일 무용가 최승희가 버젓이 올라 있다. 국방부는 친일 군인 출신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가 하면 2013년부터는 아예 그의 이름을 딴 한미동맹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박근혜정권의 극우적 역사인식과 건국절
친일파를 대표적인 ‘위인’으로 만들려는 후안무치한 작태는 단지 일부 정부 부처의 무지와 몰상식의 탓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친일과 독립운동, 더 나아가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극우적 사시로 바라보는 박근혜정권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 대통령 경축사에는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건국 67주년’은 지난 2013년, 2014년 광복절 경축사에는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생경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는 10년 단위로 특별한 해를 기념한다. 따라서 67주년이라는 숫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광복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국 67주년’을 강조한 것은 뉴라이트의 숙원인 건국절 제정을 박근혜정권이 사실상 밀어붙이겠다는 신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2007년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정갑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한 적이 있다.
이후 뉴라이트와 보수언론, 그리고 일부 보수정치인은 학계, 시민단체,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을 기리는 광복절을 대한민국이 ‘건국’된 8월 15일을 기리는 ‘건국절’로 대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한국 근·현대사 왜곡작업에 나선 것은 보수정권뿐만이 아니다. 보수정권 뒤에는 미국과 일본에 맹종하고 모든 것을 ‘종북 빨갱이’ 탓으로 돌리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보수신문, ‘공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편향된 방송,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파를 미화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역사관의 원천이 된 뉴라이트, 그리고 온라인과 거리에서 극우의 행동대로 나선 일베, 가스통할배, 서북청년단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보수라고 쓰고 ‘극우’라고 읽어야 할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자리에 친일과 독재를 집어넣으려는 비뚤어진 역사인식이다.
친일과 독재의 상징,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과 독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이다. 둘 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지만 재임 기간 내내 독재권력을 행사하다가 권좌에서 쫓겨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할 때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해 당시 온 국민의 여망이던 친일청산에 반대했다. 제헌헌법을 바탕으로 출범한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킨 주역도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이후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 1인독재를 위한 헌정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끝에 4월혁명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났다.
4월혁명으로 꽃피운 민주주의에의 열망을 짓밟은 것은 친일군인 출신의 박정희였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헌정을 중단시켰다. 20년 가까운 박정희 독재체제를 뒷받침한 세력 역시 이승만정권에서 기사회생한 친일파였다. 박정희의 헌법 파괴는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한 1969년 개헌, 그리고 아예 영구집권을 목표로 한 1972년의 이른바 유신헌법 개헌으로 이어졌다.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던 20여 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압살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부마항쟁 등 민중의 극렬한 반독재투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신체제는 측근에 의한 박정희 ‘암살’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출처 [이준식 칼럼] ‘친일’이 ‘애국’이라는 국사교과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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