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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비정규직은 오바마의 노조 발언 어떻게 생각할까?

비정규직은 오바마의 노조 발언 어떻게 생각할까?
“약자에겐 노조가 꼭 필요해요”
“노조 만들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09-10 12:33:48


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보스턴에서 열린 '위대한 보스턴 노동위원회' 주관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기업체 직원들에게 매년 7일 간의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뉴시스/AP

"미국인이여 노조에 가입하라"

이미 널리 알려졌으니 이 발언을 누가 했는지 퀴즈를 내는 건 의미가 없겠다. 미국 노총(AFLCIO) 위원장이 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법한 이 말을 한 주인공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7일 미국 노동절을 맞아 보스턴 노동협의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면서 미국 시민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전한 뉴스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지면서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저런 인식을 가진 지도자가 대통령이라니 부럽다"는 반응도 있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노조 혐오 발언과 비교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김무성 대표는 최근 "노조가 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진즉에 3만불 시대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발언, 박근혜 노동개혁과 비교

오바마 대통령의 "노조에 가입하라"발언은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그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해소와 청년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일자리 대책이라며 밀어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고, 쉬운해고는 비정규직 대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임금피크제와 쉬운해고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내려 자본의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취직을 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청년의 미래는 보장해주지 못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해소는 정규직을 끌어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과 상시업무의 경우 정규직 고용 관행 정착, 대기업의 무분별한 간접고용 규제 등 비정규직을 끌어올리는 방식일때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노조에 가입하는 것도 확실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고 싶어도 사업장에 노조가 없어서 가입을 할 수가 없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인데, 대기업·정규직·고임금 사업장은 노조 조직률이 높고, 중소기업·비정규직·저임금 사업장은 노조 조직률이 낮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다는 건

한국 노사관계 현실에서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해고를 감수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노조를 결성해 스스로의 힘으로 권리를 찾는 것이 격차해소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노조 결성에 나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대기업 통신회사 간접고용 노동자들인 LG유플러스 비정규직 케이블 기사,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케이블 기사 그리고,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등이 최근 1~2년 사이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나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이 노조를 만드는 과정은 '007 작전'과도 같다. 사측에 노조 결성 움직임이 발각되면 노조 깃발을 세우지도 못하고 와해될 수 있기 때문에 비밀리에 초동 주체 모임을 갖고, 어느 정도 세력을 규합한 뒤 노조를 공식화한다. 그 다음은 더 힘든 가시밭길이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케이블 기사들만 봐도,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벌기 위해 1주일에 60~70시간 씩 일하고, 4대보험 혜택도 못 받고, 월 평균 2.5일 쉬면서 착취를 당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조를 결성했는데, 사측과 임단협을 타결하기 까지 1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하고, 노숙하고, 삼보일배하고, 심지어는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도심 한복판 15M 좁은 전광판 위에 올라가 80일간이나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노조를 인정받은 후 비정규직 기사들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원청대기업-협력업체-기사로 이어지는 간접고용 구조에서 '근로자영자', '개인사업자'로 불리면서 노동자로서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했는데, 노조가 안착화된 후에는 협력업체의 정규직으로 4대보험 등 각종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LG유플러스 전남서광주 고객센터 소속 비정규직 강세웅 씨와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인천계양행복센터 소속 장연의 씨가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인근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모습. 이들은 노조를 인정받기 위해 이곳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하고서야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정의철 기자


노조 만들고 80일 고공농성 케이블 기사들
"노조하면서 고용안정 돼 마음이 편하다"

엘지유플러스 협력업체 기사 윤인선 씨(36)는 인터넷 설치 업무 10년차의 기사다. 그는 "노조의 노자도 몰랐"지만, 노조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바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의 노자도 몰랐던 그에게 '파업', '투쟁' 등은 낯선 것이었지만, 그가 속한 센터에서 노조 간부를 하면서 열심히 했고, 그는 노조가 없었을 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일단 고용이 안정되니까 마음이 전보다 편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있는데요. 저희가 서비스직이잖아요. 고객님을 상대하는데, 노조가 없을 때는 (부당한 요구도) 무조건 들어줘야 했어요. 그런데 노조 하고 나서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고객님 이건 안됩니다'라고 얘기해요. 업무환경도 많이 개선됐고요."

결혼해서 5살, 10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노조를 하고 나서는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주말도 찾았다. "저희가 서비스직이라서 남들처럼 완전 주5일제를 하지는 못하지만, 단협을 체결해서 격주5일제를 하고 있어요. 퇴근 후 여가 시간도 생겼고요."

노동조합이 부당한 착취를 근절하고, 그동안 빼앗기고 있던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것이다.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노동자들. 왼쪽부터 이종미(56), 권인숙(46), 김미향(55) 씨. (지난 4월 말 천막농성 당시 찍은 사진) ⓒ민중의소리


해고될 처지에 노조 만들고 108일 천막농성 청소노동자
"저희 같이 사회적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노조가 꼭 필요해요"

연세대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소속으로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를 하는 김미향(55) 씨도 "저희같이 사회적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네에서 통장일을 8년간이나 한 김 씨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청소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용역업체는 인원감축 카드를 내밀었다. 청소노동자들이 반발하자 회사는 전원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근로조건을 변경하자고 요구했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해서 월급 135만원(실수령액 110만8천원) 받던 노동자들에게 하루 5.5시간만 일하고 월급 95만원을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명백한 노동조건 후퇴였다. 중장년의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근로조건 후퇴없는 전원고용유지'를 요구했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천막을 치고 108일간이나 농성도 벌였다. 연세대 재학생과 졸업생, 시민사회 등이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김미향 씨와 동료들은 근로조건 후퇴없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김미향 씨는 "청소노동자들이 용역회사와 1년 근로계약을 맺고, 어떤 데는 심지어 3~6개월 계약하는 곳도 있다. 말을 안 들으면 그냥 해고한다. 개인적으로는 대항할 힘이 없으니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둘 수밖에 없다. 저희도 노조가 아니었으면 해고됐을 것이다. 저희같은 사람들에게 노조는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당해보니까 노조는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노조 하면서는 옛날처럼 말도 못하고 그냥 당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거는 시정 요구도 하고 그런다. 노조가 저희에겐 백그라운드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해소,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며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 노동개혁에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노조 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다면 진즉 3만불 시대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발언까지 했다. ⓒ정의철 기자


노조보호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 노조 가입률 낮은 것은
노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
그렇다면 헌법의 노동3권 준수해야 할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노동조합은 이렇게 노동자의 백그라운드와 버팀목, 근로조건 개선의 토대가 될 수 있는데, 정작 노동조합의 보호가 절실한 비정규직 노동자 계층에서 노조 조직률이 낮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노조 조직률 관련 연구 자료에서 "노조의 보호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계층에서 노조 조직률이 형편없이 낮은 것은 그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덜 느껴서 또는 노조 가입 성향이 낮아서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우 만큼이나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자기 사업장에, 지역에, 산업에 가입할 노조가 없어서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을 못한다는 얘기다. 차별받고,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건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노동개혁의 방향은 '정규직 노조 때리기'가 아니라, 비정규직에게 노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부와 국회가 그 권한을 노조 보장에 쓰는 것은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다. 헌법에 분명히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해 부당한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것을 감독하고 바로 잡는 것은 헌법에도 정확히 부합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노조의 필요성을 역설한 오바마 대통령을 반만 이라도 따라갔다면 취약계층의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다가 해고당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추운 겨울에 수십미터 전광판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바람도 통하지 않는 비닐천막을 치고 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격차해소를 한다며 개혁아닌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고, 노조가 없었으면 3만불 시대에 진작 진입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노조 때리기나 하고 있다. 태평양 건너 먼 나라지만 "미국인이여 노조에 가입하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이 크게 울리는 이유다.


출처  비정규직은 오바마 노조 발언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