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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뜨거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전

낯 뜨거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전
[민중의소리] 사설 | 최종업데이트 2015-09-18 07:22:56



노블레스 오블리주.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대가로 6명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 때, 그 지역의 부호와 시장 등 귀족들이 자진해서 교수대에 오른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날 이는 사회지도층이 가져야 할 도덕적 책무를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된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우리 정가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박근혜가 노사정 합의를 계기로 청년일자리 해결을 위한 펀드를 조성하겠다며 2천 만 원을 일시 기부하고 월급의 20%를 계속 내놓겠다고 말하면서부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간담회까지 개최해 박근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잇는다며 자신은 물론 국무위원, 공공기관장부터 동참의 폭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재를 나눠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뜻이야 나무랄 데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동개혁이란 허울에 한국노총을 들러리 세워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을 고착시킨 장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지난 14일 노사정 야합으로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은 완전히 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실적과 근무 불량을 핑계 삼아 자유롭게 자를 수 있는 권한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미래의 노동자인 청년의 운명도 냉혹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군다나 신규 일자리 확대라는 명분과 달리 정작 노사정 합의안에 청년고용을 늘리는 계획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재벌 천국의 길을 터주려고 청년의 눈물까지 악용한 꼴인데, 그래놓고도 청년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니 이게 말이 될 소린가.

30대 재벌 대기업이 쌓아 둔 710조 원 대의 사내유보금은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마치 군주가 군민에게 시혜를 베풀듯 행세하려드는 것은 비겁한 행위다. 국가예산의 효율적 분배는 외면하고 걸핏하면 국민모금을 갖다붙이는 습성도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이 정권의 수뇌부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루된 인사 청탁 의혹이 터져 나왔다. 최 부총리까지 수사선상에 오른 이 건을 포함해 모두 4명이 외압에 의한 채용 비리로 합격해 놓고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데, 이 정권의 불공정성 앞에 청년취업 준비생들이 느낄 좌절감은 가늠할 길이 없다.

뒤로는 측근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면서 앞에서는 태연하게 청년의 눈물을 닦겠다며 거액을 내놓는 이중성이야말로 청와대와 관제언론이 떠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다. 권력이 사유화되면서 말의 진실도 왜곡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의 미학조차 떠올리기 사치스러운 시대다.


출처  [사설] 낯 뜨거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