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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미디 같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블랙 코미디 같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민중의소리] 사설 | 최종업데이트 2015-10-01 07:19:08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누리집 갈무리


오늘부터 정부 주도의 할인행사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된다. 미국의 전통적인 유통 기법인 ‘블랙프라이데이’의 이름을 빌려온 것인데, 이 행사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편의점, 전통시장, 온라인쇼핑몰까지 2만7천여개 점포가 참여한다고 한다. 이렇게 관 주도로 대형 세일 기간을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박근혜 정부 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부가 아니면 이런 발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발상에 대다수 유통업체들이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그것과 한국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재고를 소진하기 위한 행사다. 여기에서는 원가나 혹은 매우 낮은 마진으로 물건이 풀려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미리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큰 규모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도 당연하다. 신상품을 늦게 접하는 대신 낮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전혀 다르다. 그 어느 정부보다 억압적인 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유통업체들이 억지춘향으로 참가한다. 당연히 할인폭이 크기 어렵다. 새로울 것도 없다. 사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연중 세일을 한다. 이번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매년 하는 가을 정기세일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거의 모든 업체가 참여하니 개별 업체별로 이렇다할 전략도 마련하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홍보력이 약한 전통시장에 타격을 줄 우려도 있다. 뭐든 밀어붙이면 된다는 군사독재식 발상이 관 주도의 ‘다함께 세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청와대의 발상 그 자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청와대로서는 어떻게든 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나온 것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다. 내일 쓸 돈을 오늘 당겨 쓰더라도 지금당장 소비가 늘어나 ‘올해’의 성장률만 높이면 된다는 식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이유는 지갑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할인행사라고 떠들썩하게 판을 벌려도 소비가 진작될 리 없다. 할인행사가 끝나면 도리어 ‘소비절벽’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면서 빚 내서 집 사라고 외치다가 가계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자 자신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청년 고용을 위해서 내놓은 정책은 전 국민의 기부금으로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면서 유통업체 대신 할인행사 광고를 해주고 있다.

이 정부가 내놓는 경제 정책이라는 게 어쩌면 이리 하나같이 ‘블랙 코미디’인지 신기할 정도다.


출처  [사설] 블랙 코미디 같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