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엉터리 역사인식에 헌법정신도 망각한 거짓말쟁이들”

“엉터리 역사인식에 헌법정신도 망각한 거짓말쟁이들”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1-03 21:54:48


3일 오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에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기존 검정 교과서의 한국사 기술과 집필진들에 대해 항목까지 나눠 맹비난했다. 대부분 북한 관련 서술이나 집필진의 편향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그동안 정부와 뉴라이트 학자들 위주로 제기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주장의 근거 역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비춰봤을 때 미흡했다.

국내 대표적인 원로 역사학자인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총리를 포함해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국사편찬위원장은 결국 박근혜의 눈치를 보고 일을 꾸며냈다”며 “결국 상식을 벗어난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고 분개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황 총리가 주장한 항목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박정희의 5.16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것’, ‘일제시대 지식을 축적한 사람들이 산업화 때 중요한 역군이 됐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친일, 독재를 미화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그거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고 말했다.

그는“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에서부터 독재국가에서 하던 수법을 그대로 이용했는데 도대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며 “상식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짓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73년부터 <창작과비평>, <뿌리깊은나무>, <월간중앙>, <월간조선> 등에 한국사 관련 글을 발표하면서 역사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했고, 역사 바로잡기 운동, 동학농민혁명 연구, 과거사 청산 운동,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한국 근현대사를 바로잡는 이른바 '실천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10년 간 작업 끝에 완간한 ‘한국사이야기’(22권), ‘허균의 생각’, ‘인물로 읽는 한국사’, ‘전봉준, 혁명의 기록’ 등이다. 2011년 단재학술상, 2006년 임창순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역사학자인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양지웅 기자


다음은 이 전 교수가 황 총리의 대국민 담화 내용을 반박한 인터뷰 전문이다.

- 오늘 국정화 확정 고시 발표한 것 보셨나?
=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안 봤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총리, 교육부 장관, 국사편찬위원장, 새누리당 김무성까지 포함해서 박근혜 눈치보고 일을 꾸며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한마디 더하자면 김무성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새누리당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교과서 국정제를) 유지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짓이다.

- 국정화 확정 고시까지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한 부분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 우리 스스로 민주사회라고 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했고, 교과서 자유 채택제로 가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오히려 퇴보시킨 행위다.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에서부터 독재국가에서 하던 수법을 그대로 이용했는데 도대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 황교안 총리는 “검정 교과서들이 한국전쟁의 원인을 남북간 38선에서 벌어졌던 잦은 충돌 때문이었던 것처럼 교묘하게 기술하고 있어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
= 제가 대부분의 검정교과서들을 다 봤다. 한국전쟁 부분도 봤는데 양쪽 책임이라는 말을 쓴 곳이 하나도 없고 대부분 ‘남침’으로 기술하고 있다. 남침으로 기술돼 있다면, 이후에는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저도 현행 교과서들의 한국전쟁 기술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번 제대로 따져보자. 한국전쟁에 대한 기술을 제대로 하려면 그당시 국제정세, 예를 들면 1950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애치슨 선언에서 발표한 ‘애치슨 라인’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당시 알류산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극동방위선을 설정했는데, 여기에 한반도와 중국, 타이완은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됐다.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켜도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가 있고, 그 당시 남쪽에서는 남로당 세력이 굉장히 컸다. 그걸 바탕으로 한 민중봉기론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당시 이승만이가 평소 북진통일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던 부분은 왜 빠져 있나?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한국전쟁 전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대목들이다.

- “UN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승인했는데 현행 검정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을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해 마치 북한만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부여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왜곡해 전달하고 있다”고도 했다.
= 그것도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이건 우리 헌법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영토의 범위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다. 이는 임시정부 수립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선포하면서 ‘국가수립’을 선언한 것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헌법대로 한다면 대한민국 국가수립이라고 하면 북한은 자연스럽게 우리 영역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수립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행 교과서는 분명히 ‘정부수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대로 말하는 게 뭐가 잘못인가?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말은 이런 헌법정신마저 망각한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우리와 다르다. 북한은 임시정부 사람들이 수립한 정권이 아니다. 독자적으로 공화국 수립이라고 하는 것이고, 자기들이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다. 각각 법에 따라 기술하는 걸 그대로 썼는데 그걸 갖고 정통성이니 뭐니,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UN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정부다? 그 말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황 총리의 말은) 그 당시 UN의 실질적인 권위와 국제정세 등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들을 간과한 것이다. 초기 UN에는 소련과 중국의 참여가 소극적이었다. 한국전쟁 때 UN군을 결의할 때도 상임이사국이던 소련이 불참했었고 중국의 경우 장개석 정부만 가입돼 있었다. 당연히 북한이 UN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에 소련이 실질적으로 상임이사국 행세를 하고, 중화인민공화국도 가입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도 UN에 가입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 “천안함 사건 등을 교과서에 기술하지 않아 북한의 침략 야욕을 은폐·희석시키고 있다”고 하던데?
= 대한민국 교과서에 북한 얘기를 어떻게 일일이 다 쓰나? 남한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꼭 언급을 해야 한다면 필자에 따라 천안함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필자는 천안함 문제를 복잡하고 알 수 없다고 판단해 안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필자는 언급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모든 교과서가 천안함을 기술하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일부 영역을 전체적으로 확대하고 과장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 “정부의 교과서 수정 요구에 집필진들이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일단 수정 지시 자체가 필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행위다. 그리고 실제로 요구에 따라 수정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수정 요구를 하니깐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고 해서 법원에 소송을 거는 것이다. 나아가 법적으로 당연한 권리로 보장된 것이 소송인데, 그걸 한다고 뭐라고 한다면 필자들은 박근혜 정부 앵무새 노릇을 하라는 말인가?

- “교과서 집필진들이 쓴 문제집과 지도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북한 헌법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 그 대목들을 봤더니 주체사상에 대한 기본적 기술만 하고 있더라. 예를 들어 ‘북한이 중.소 분쟁이 일어났을 때 제3의 길로 자신들의 생존전략으로 주체사상을 만들었다’는 기술이 있다. 이건 틀린게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란 말이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돼 있다. ‘이것이 김일성의 유일사상,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객관적인 설명에 이은 분석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다. 평가를 하려면 사실에 대한 기술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기본적인 원리마저 부정하려는 것인가?

- 황 총리는 작년 우편향 논란이 일었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3곳 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다양성’ 문제를 제기했다.
= 기가 막힌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류 투성이에다가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동학농민혁명을 들 수가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두고 ‘조선왕조 질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일어났고, 내부 갈등에 의해 실패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봉건, 반침략’ 사상을 기반으로 일어났고, 일본 군대의 소탕작전으로 소멸된 것이다. 이런 건 교과서로 존재할 가치가 없다. 게다가 반민족적인 식민지 근대화론, 박정희 독재도 미화했다. 그런 문제 때문에 반대운동이 일어났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밀어붙였잖아? 막강한 정권의 힘을 갖고 밀어붙였는데도 일선 학교들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한 것 아닌가. 결국 제로게임으로 갔다. 오히려 정부가 반성을 해야지.

- 황우여 장관은 오늘 고시 확정 기자회견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가능한 이야긴가?
= 그 사람들이 언제 거짓말을 안 하던가? 국정 교과서 하려는 의도가 뭐냐? 박정희 때문이다. 민주화, 산업화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박정희의 5.16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것’, ‘유신은 경제발전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것’, ‘일제시대 지식을 축적한 사람들이 산업화 때 중요한 역군이 됐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친일, 독재를 미화하지 않겠다고? 그거야말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 중도, 진보 학자들이 집필거부 선언을 했다.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 균형있는 집필이 가능한가?
=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잘 봐라. 뻔하다.


출처  [인터뷰] “엉터리 역사인식에 헌법정신도 망각한 거짓말쟁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