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TF’도 모자라 집필진마저 숨기나

‘비밀TF’도 모자라 집필진마저 숨기나
[민중의소리] 사설 | 최종업데이트 2015-11-05 07:10:01

▲ 최민의 시사만평 - 원초적 본능 ⓒ최민 논설위원·시사만화가

교육부가 지난 3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이틀이나 앞당겨 강행한 데 이어,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4일 역사 교과서 개발 및 집필 계획을 발표했다. 김정배 국편위원장은 어제 열린 기자 회견에서 36명 정도로 집필진을 구성하고 오는 20일까지 공모를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필진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것도 모자라 아예 밀실에서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집필진 비공개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당초 정부가 공언한 것과도 뚜렷히 다르다. 지난달 12일 정부가 국정화 행정 예고를 밝힐 당시만 해도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집필에서 발행까지 교과서 전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당시 황 부총리는 집필진 공개는 “전적으로 국편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 뒤 김정배 위원장이 국회에서 비공개할 수도 있다는 식의 답변을 하더니 4일 기자회견에서는 집필진 비공개 방침을 굳혔다. 그는 집필이 완료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집필자를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른바 '올바른 역사관'을 국가가 직접 나서 주입하겠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이지만, 교과서 집필진조차 공개하지 않겠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하기야 국정교과서 추진 TF도 비밀리에 꾸린 정부다 보니, 집필진 비공개쯤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절대 다수가 집필 거부를 선언한 마당에, 국정 교과서 집필에 응할 이들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데 골몰해 온 뉴라이트 측 인사들 말고 누가 있겠나. 공개하고 싶어도 못할 일이다.

정부의 속셈은 뻔하다. 집필진 선정을 둘러싼 논란은 ‘비공개’로 회피하고, 베일에 싸인 인사들이 1년 간 밀실에서 작업을 해 놓은 뒤 얼마 되지 않은 심의기간도 시한이 다 됐다며 어물쩍 넘어가자는 것이다. ‘비밀TF’로 시작된 국정화는 ‘밀실 편찬’으로 이어지고, 결국 ‘날치기 발간’으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정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늘 투명하게 추진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누구인지도 모를 인사들의 ‘밀실 편찬’이 어떻게 투명성, 공정성과 양립할 수 있겠는가.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이자 허튼 말장난일 뿐이다. 김 위원장은 또 공안논리와 극우적 시각으로 가득찬 황교안 총리의 대국민담화도 다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들면서 공정성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정부를 믿으라’지만, 국편이 이번에 밝힌 집필 계획만 보더라도 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가 어떤 모습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애초부터 안 될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니 이런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는 것 아닌가.


출처  [사설] ‘비밀TF’도 모자라 집필진마저 숨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