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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 무리수에…‘위법 누더기’ 국정교과서

속도전 무리수에…‘위법 누더기’ 국정교과서
예비비 44억 책정에 입법조사처 “타당성·긴급성 없어”
행정예고 전 ‘비밀 TF’ 운영, 요식 여론수렴도 도마에

[경향신문] 조미덥 기자 | 입력 : 2015-11-04 22:35:29 | 수정 : 2015-11-04 23:38:10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이 시작부터 확정 고시 발표까지 전방위적인 위법성 논란에 휩싸였다. 확산하는 반대 여론 속에 사실상 ‘대통령 지시 사업’을 속도전식으로 밀어붙이느라 법·절차를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교과서 사업을 위한 예비비 44억 원 편성 과정부터 절차적 문제가 제기된다. 야당은 예측 못 할 재해나 긴급 구호 등에 쓰여야 하는 예비비를 국정교과서 개발에 투입한 것부터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편성에 문제가 없다면서 예비비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정화 반대 동향 보고받는 황우여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프랑스 공동기자회견을 하기 전 휴대전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동향 보고를 살펴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국정화 반대 총궐기 대회를 한다는 내용과 포털사이트에 “대한민국 역사를 축소하는 정부라는 댓글이 다수”라는 문구 등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4일 “국정교과서 예비비는 목적의 타당성과 긴급성이 없고, 교육부 관련 예산으로 이·전용이 가능해 불가피성도 없다”면서 “정부가 예비비를 자의적으로 편성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가 예비비 사용계획명세서를 공개하는 것이 ‘헌법’이 정한 절차에 부합한다”며 정부의 내역 비공개 부적절성도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의 요청에 따라 입법조사처가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다.

정부의 여론 수렴 절차도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확정 고시는 애초 예정된 5일에서 이틀 당겨 행정예고(10월 12일~11월 2일) 기간이 끝난 지 11시간 만에 서둘러 발표됐다. 교육부는 의견 수렴이 진행되던 2일부터 이미 ‘다음날 확정 고시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행정예고 기간에 접수된 국민 의견 47만 건 중 32만 건이 ‘국정화 반대였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행정절차법 시행령에는 정부가 행정예고 때 제출된 의견의 반영 여부를 결정하고, 처리 결과를 의견 제출자에게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령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애초부터 여론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행정예고 기간 의견 수렴에 편리한 e메일은 빼고 팩스·우편·전화로만 의견을 받았다. 그마저 팩스와 전화는 먹통일 때가 많았다. 국정화에 관한 공청회나 토론회 등 형식적인 여론 수렴 행위도 없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행정예고가 유일한 의견 수렴의 장이었음에도 정부는 국정교과서 예산을 편성하고 홍보하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국정화 작업을 위해 국립국제교육원에 꾸린 ‘국정교과서 비밀 태스크포스(TF)’는 행정예고를 하기 전부터 운영돼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여전하다. 야당은 비밀 TF가 행정예고 기간에 국정화 작업을 한 것과 정식 인사를 내지 않고 비밀 TF 직제를 꾸린 것도 법령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교육부가 행정예고 기간에 TV에 내보낸 ‘유관순 광고’는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야 하는 절차를 어겨 국무총리 훈령 ‘정부광고 시행에 관한 규정’ 위반이란 지적을 받았다. 또 방송사당 광고비가 3억 원에 이르러 ‘5,000만 원이 넘는 계약은 입찰을 거쳐야 한다’는 국가계약법도 위반했다는 게 야당 판단이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여당이 국민 여론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니, (국정화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출처  [국정화 불복종 확산] 속도전 무리수에…‘위법 누더기’ 국정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