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금지' 아니라 '철면피 금지법'이 필요하다
[게릴라칼럼] 미국 따라 '복면 금지'? 미국처럼 '청와대 앞 시위' 보장하라
[오마이뉴스] 강인규 | 15.11.28 20:33 | 최종 업데이트 15.11.28 20:33
새벽에 잠이 덜 깬 채 머리맡의 전화기를 집었다. 습관처럼 뉴스 사이트를 열자, '두둥!' 대통령의 발언이 뜬다. 눈동자가 커지면서 잠이 확 달아난다. 입에서는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온다.
"또 시작했구나..."
지난 24일, 박근혜는 예정에도 없던 국무회의를 자청했다. 그리고는 이 자리에서 11·14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라 비난하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근혜는 형식과 내용이 따로 노는 아주 독특한 어법을 구사한다. 말투는 피를 토하는 듯 강경하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IS가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의 '그렇게'는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해당 테러단체가 권위주의 정부의 반서민 정책에 항의해 집회를 열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박근혜 눈에는 자신에 반대하는 국민이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것일까? 그것도 최근 프랑스에서 130여 명을 살해하고 300여 명을 다치게 한 그 잔혹한 테러집단 말이다.
박근혜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테러단은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테러집단이고, 시위대는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시위 중인 국민이다. 테러는 형법과 도덕이 금하는 극악무도한 범죄고,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다. 이 차이가 이해 안 되시는가?
물론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폭력시위'가 문제이며, 떳떳하다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시위현장에 가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사진을 검색해 보라. 전투경찰과 맞서는 젊은이들 다수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다. 이들이 떳떳지 못한 일을 벌이고 있었을까? 이들이 폭력적 테러집단이었는가? 80년대 시위대가 얼굴을 가린 첫 번째 이유는 마구잡이로 쏴대는 최루탄과 '지랄탄' 때문이었다.
폭력시위? '과격함'으로 말하면, 70~80년대의 운동은 오늘날의 시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시위 참여자들을 '폭도'로 매도하곤 했지만, 감히 누구도 이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문제는 박근혜의 이 발언이 용기에서 나온 게 아니라, 무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무지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안다. 당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과 이들을 진압하던 공권력 가운데 누가 역사 앞에 더 떳떳한지 말이다. 소위 '민주화'되었다는 1980년대 후반 이후 30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 나라의 시위대는 왜 여전히 코와 입을 가리는 것일까? 시위를 대하는 정부와 공권력의 사고방식이 80년대와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독재 시절에 그랬듯, 시위는 무조건 봉쇄하고, '액체 최루탄'인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마구잡이로 쏴댄다. 게다가 현재의 한국 경찰은 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기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있다. 고성능 디지털카메라로 무장한 경찰의 무차별적 채증과 반인권적으로 활용되는 첨단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이 권력에 의해 악용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직사 물대포 앞에 놓인 촛불 신세가 되고 만다. 경찰에 실시간 감시되고 영구 기록된다는 사실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축시키는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은 막연한 우려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찰은 2016년 '노후 채증장비 교체 사업계획'에 사용한다며 국회에 22억 5천800만 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렌즈를 뺀 카메라 본체만 700만 원이 넘고, 초당 11장 촬영에, 카메라 감도가 현존 최고여서 선명한 야간촬영이 가능한 니콘 D4S 수십 대와 300만 원에 가까운 고성능 망원렌즈 수백 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 '창조경제'의 나라에서는 작가들도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카메라가 공권력에 무상으로 공급된다.
불행히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채증을 통한 보복수사와 기소가 경찰과 검찰의 일상적 업무가 되었다. 경찰은 공공연히 '채증을 통해 상습 시위꾼을 검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구체적 범법행위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위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알듯, 오늘날 한국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곳이다. 이런 각박한 곳에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참여는 정부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적인 정부)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지만, 권력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도록 돕는 고마운 일이다. 민주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근 보수 종편방송과 일간지는 '민중총궐기가 전문 시위꾼들이 주도하는 폭동으로 변질 되었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이야, 독재 시절부터 모든 시위를 '폭동'이라 주장해왔으니 그렇다 치자. 국민의 목숨과 권리를 지켜야 할 경찰이 '상습 시위꾼' 운운하며 국민 목숨을 도리어 위협하는 것은 심각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는 '복면 시위는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다음 날, 그 주문은 즉각 시행되었다. 정갑윤 의원을 포함해 32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복면방지법'을 발의했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정부에서는 쭉 '짐이 곧 법'이었으니 말이다.
교사와 역사학자들이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역사 해석 문제를 박근혜의 아집 하나로 '국정화'로 몰고 갔고, 이제는 법학자와 언론학자들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어려운 주제인 '복면 금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복면금지법' 발의자인 정갑윤 의원은 독일과 프랑스·미국 15개 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이 복면 착용을 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복면 금지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프랑스 등은 인권 후진국인가?"라고 물었다.
물었으니 답한다. '인권 후진국'은 그 나라들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가 말한 나라에서 차벽으로 시위대를 둘러싸는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경찰이 위헌 판결 난 차벽을 설치하고, 차벽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직사 물대포를 쏴 시민을 중태에 빠뜨리는 나라가 있는가?
정 의원은 미국의 15개 주가 복면금지법 조항을 두었다고 했다. 미국의 주가 몇 개인가? 그의 주장대로라도 나머지 35개 주가 복면 착용을 금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복면금지법을 시행하지 않은 미국 다수의 주와 유럽 대다수 국가들은 불법 천지인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미국 일부 주가 시행하는 '복면 금지법(anti-mask laws)'은 익명의 의견개진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도 아니고, 시위대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규정도 아니다. 이 법의 역사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복면 금지법 시초는 1830년대 후반 '반 토지임대 운동(Anti-Rent Movement)'을 기원으로 한다. '반 토지임대 운동'은 당시 지주들에 의해 착취당하던 소작농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경제민주화 정책'이었는데, 이에 항의하는 농장주들이 미국 원주민 등으로 변장하는 것을 막으려고 만든 법이었다. 미국 남부의 주들은 20세기 중반에 'KKK단'으로 알려진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횡포를 막기 위해 이 법을 입안했다.
미국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한국에서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입안된 셈이다. 사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시위대가 복면을 쓸 필요가 많지 않다. 시위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위대에게 마구잡이로 캡사이신을 뿌려대거나 불법 채증을 하지 않고, 그저 시위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들 입맛에 따라 선진국을 들먹이는 고약한 버릇을 언제나 고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정말 '선진국식'으로 해 보자. 미국의 수도에 있는 백악관 앞에는 1년 365일 시위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명색이 '민주국가'라면, 대통령이 '주인'으로 섬겨야 할 국민의 목소리를 차단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경찰의 물대포로 시민 한 명이 중태에 빠진 상황에서 "경찰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침소봉대하는 것이고,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청와대 경호원 수칙상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내로 진입하면 '실탄 발포'가 원칙이다. 더 불행한 상황을 막기 위해 살수차 동원이 불가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누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내로 진입'하려 했는가?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시위대가 대통령 집무실 근처로 향하는 것은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다. 게다가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박근혜는 해외순방 중이었다. 주인 없는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이 '총 맞을 일'이란 말인가?
많은 것을 요구할 생각도 없다. 그냥 보통 '선진국들'처럼 시위대를 경찰버스로 에워싸지 마라.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게 하라. 그런 다음에 '복면금지'를 입법화하든, '쇠파이프 금지'를 입법화하든 하라.
국민에게 절실한 것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복면금지법'이 아니라 '철면피 금지법'인 셈이다. 불행히도, 법을 만들 권리는 오직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의원들을 뽑지 않거나 떨어뜨릴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철면피 방지권'을 잘 활용할 일이다.
출처 '복면금지' 아니라 '철면피 금지법'이 필요하다
[게릴라칼럼] 미국 따라 '복면 금지'? 미국처럼 '청와대 앞 시위' 보장하라
[오마이뉴스] 강인규 | 15.11.28 20:33 | 최종 업데이트 15.11.28 20:33
▲ 제18대 대통령선거 이틀을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유세에서 한 시민이 박 후보 사진으로 만든 가면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새벽에 잠이 덜 깬 채 머리맡의 전화기를 집었다. 습관처럼 뉴스 사이트를 열자, '두둥!' 대통령의 발언이 뜬다. 눈동자가 커지면서 잠이 확 달아난다. 입에서는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온다.
"또 시작했구나..."
지난 24일, 박근혜는 예정에도 없던 국무회의를 자청했다. 그리고는 이 자리에서 11·14 민중총궐기 대회를 "불법 폭력 사태"라 비난하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IS(이슬람국가)도 지금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근혜는 형식과 내용이 따로 노는 아주 독특한 어법을 구사한다. 말투는 피를 토하는 듯 강경하지만, 정작 내용은 애매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IS가 "얼굴을 감추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의 '그렇게'는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해당 테러단체가 권위주의 정부의 반서민 정책에 항의해 집회를 열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박근혜 눈에는 자신에 반대하는 국민이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것일까? 그것도 최근 프랑스에서 130여 명을 살해하고 300여 명을 다치게 한 그 잔혹한 테러집단 말이다.
박근혜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테러단은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테러집단이고, 시위대는 얼굴을 가리든 드러내든 시위 중인 국민이다. 테러는 형법과 도덕이 금하는 극악무도한 범죄고,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다. 이 차이가 이해 안 되시는가?
떳떳하면 왜 얼굴을 가리느냐고?
물론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폭력시위'가 문제이며, 떳떳하다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시위현장에 가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사진을 검색해 보라. 전투경찰과 맞서는 젊은이들 다수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다. 이들이 떳떳지 못한 일을 벌이고 있었을까? 이들이 폭력적 테러집단이었는가? 80년대 시위대가 얼굴을 가린 첫 번째 이유는 마구잡이로 쏴대는 최루탄과 '지랄탄' 때문이었다.
폭력시위? '과격함'으로 말하면, 70~80년대의 운동은 오늘날의 시위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시위 참여자들을 '폭도'로 매도하곤 했지만, 감히 누구도 이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문제는 박근혜의 이 발언이 용기에서 나온 게 아니라, 무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무지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안다. 당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과 이들을 진압하던 공권력 가운데 누가 역사 앞에 더 떳떳한지 말이다. 소위 '민주화'되었다는 1980년대 후반 이후 30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 나라의 시위대는 왜 여전히 코와 입을 가리는 것일까? 시위를 대하는 정부와 공권력의 사고방식이 80년대와 같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독재 시절에 그랬듯, 시위는 무조건 봉쇄하고, '액체 최루탄'인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마구잡이로 쏴댄다. 게다가 현재의 한국 경찰은 80년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기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있다. 고성능 디지털카메라로 무장한 경찰의 무차별적 채증과 반인권적으로 활용되는 첨단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이 권력에 의해 악용될 때 국민의 기본권은 직사 물대포 앞에 놓인 촛불 신세가 되고 만다. 경찰에 실시간 감시되고 영구 기록된다는 사실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축시키는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은 막연한 우려가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짐이 곧 법'인 이상한 '민주국가'
▲ '민중총궐기 대회', 경찰의 마구잡이 무대포 난사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차벽으로 세워진 경찰버스를 당기는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중총궐기 대회'는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민영화, 노동개악 등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며 개최한 대회다. ⓒ 이정민
최근 경찰은 2016년 '노후 채증장비 교체 사업계획'에 사용한다며 국회에 22억 5천800만 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렌즈를 뺀 카메라 본체만 700만 원이 넘고, 초당 11장 촬영에, 카메라 감도가 현존 최고여서 선명한 야간촬영이 가능한 니콘 D4S 수십 대와 300만 원에 가까운 고성능 망원렌즈 수백 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 '창조경제'의 나라에서는 작가들도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카메라가 공권력에 무상으로 공급된다.
불행히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채증을 통한 보복수사와 기소가 경찰과 검찰의 일상적 업무가 되었다. 경찰은 공공연히 '채증을 통해 상습 시위꾼을 검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구체적 범법행위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위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알듯, 오늘날 한국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곳이다. 이런 각박한 곳에서 사회의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참여는 정부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적인 정부)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지만, 권력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도록 돕는 고마운 일이다. 민주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최근 보수 종편방송과 일간지는 '민중총궐기가 전문 시위꾼들이 주도하는 폭동으로 변질 되었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이야, 독재 시절부터 모든 시위를 '폭동'이라 주장해왔으니 그렇다 치자. 국민의 목숨과 권리를 지켜야 할 경찰이 '상습 시위꾼' 운운하며 국민 목숨을 도리어 위협하는 것은 심각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는 '복면 시위는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다음 날, 그 주문은 즉각 시행되었다. 정갑윤 의원을 포함해 32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복면방지법'을 발의했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정부에서는 쭉 '짐이 곧 법'이었으니 말이다.
교사와 역사학자들이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역사 해석 문제를 박근혜의 아집 하나로 '국정화'로 몰고 갔고, 이제는 법학자와 언론학자들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어려운 주제인 '복면 금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선진국 따라 '복면 금지법'? 선진국의 시위 보장부터 배워라
▲ 지난 2012년 12월 5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시장에서 새누리당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선 후보의 가면을 쓰고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복면금지법' 발의자인 정갑윤 의원은 독일과 프랑스·미국 15개 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이 복면 착용을 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복면 금지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프랑스 등은 인권 후진국인가?"라고 물었다.
물었으니 답한다. '인권 후진국'은 그 나라들이 아니라 한국이다. 그가 말한 나라에서 차벽으로 시위대를 둘러싸는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 경찰이 위헌 판결 난 차벽을 설치하고, 차벽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직사 물대포를 쏴 시민을 중태에 빠뜨리는 나라가 있는가?
정 의원은 미국의 15개 주가 복면금지법 조항을 두었다고 했다. 미국의 주가 몇 개인가? 그의 주장대로라도 나머지 35개 주가 복면 착용을 금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복면금지법을 시행하지 않은 미국 다수의 주와 유럽 대다수 국가들은 불법 천지인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미국 일부 주가 시행하는 '복면 금지법(anti-mask laws)'은 익명의 의견개진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도 아니고, 시위대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규정도 아니다. 이 법의 역사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복면 금지법 시초는 1830년대 후반 '반 토지임대 운동(Anti-Rent Movement)'을 기원으로 한다. '반 토지임대 운동'은 당시 지주들에 의해 착취당하던 소작농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경제민주화 정책'이었는데, 이에 항의하는 농장주들이 미국 원주민 등으로 변장하는 것을 막으려고 만든 법이었다. 미국 남부의 주들은 20세기 중반에 'KKK단'으로 알려진 인종차별주의 집단의 횡포를 막기 위해 이 법을 입안했다.
미국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한국에서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입안된 셈이다. 사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시위대가 복면을 쓸 필요가 많지 않다. 시위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위대에게 마구잡이로 캡사이신을 뿌려대거나 불법 채증을 하지 않고, 그저 시위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아야 한다.
'철면피 방지권'을 활용하자
자기들 입맛에 따라 선진국을 들먹이는 고약한 버릇을 언제나 고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정말 '선진국식'으로 해 보자. 미국의 수도에 있는 백악관 앞에는 1년 365일 시위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명색이 '민주국가'라면, 대통령이 '주인'으로 섬겨야 할 국민의 목소리를 차단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경찰의 물대포로 시민 한 명이 중태에 빠진 상황에서 "경찰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침소봉대하는 것이고,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청와대 경호원 수칙상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내로 진입하면 '실탄 발포'가 원칙이다. 더 불행한 상황을 막기 위해 살수차 동원이 불가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누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내로 진입'하려 했는가?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시위대가 대통령 집무실 근처로 향하는 것은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다. 게다가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박근혜는 해외순방 중이었다. 주인 없는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이 '총 맞을 일'이란 말인가?
많은 것을 요구할 생각도 없다. 그냥 보통 '선진국들'처럼 시위대를 경찰버스로 에워싸지 마라.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게 하라. 그런 다음에 '복면금지'를 입법화하든, '쇠파이프 금지'를 입법화하든 하라.
국민에게 절실한 것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복면금지법'이 아니라 '철면피 금지법'인 셈이다. 불행히도, 법을 만들 권리는 오직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의원들을 뽑지 않거나 떨어뜨릴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철면피 방지권'을 잘 활용할 일이다.
출처 '복면금지' 아니라 '철면피 금지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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