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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우리는 왜 국산 TV를 미국 사이트에서 더 싸게 구매해야 하나?

우리는 왜 국산 TV를 미국 사이트에서 더 싸게 구매해야 하나?
전형적 가격 역차별, 이해할 수 없는 삼성과 LG의 가격 정책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01 18:34:03


“아, 이래서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헬조선이 아니라 천조국(미국) 국민으로 태어나야 하는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하는 한탄이라고 한다. 우리의 청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할 때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까?

미국 시애틀 정부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약 16,500원)로 파격 인상했지만, ‘헬조선’ 정부는 2016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6,030원으로 결정했을 때?

세계 4위의 부호 워런 버핏이 “왜 나 같은 부자가 내 비서보다 낮은 소득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느냐”며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 부자 감세와 금수저 재산 보호에 열을 올릴 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십니까?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랍니까?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습니다”라며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적극 지지하지만, 한국의 여당 대표는 “노조의 쇠파이프질만 아니었어도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멍멍이(!) 소리를 했을 때?

모두 다 헬조선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는 슬픈 사례들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이 ‘천조국’으로 떠받드는 미국과 헬조선의 차별이 아주 엉뚱한 상황에서마저 느껴진다면 그 슬픔은 더 가중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이런 차별은 어떤가? 한국인으로 태어나 내 나라 기업이 생산한 TV를 구매하려는데, 국산 TV를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미국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50% 이상 싸다면? “아, 이래서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헬조선이 아니라 천조국 국민으로 태어나야 하는구나”라는 한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차원이 다른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황당한 가격 역차별

박근혜의 한 마디에 한국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시행되면서, ‘블랙 프라이데이’의 원조인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국내 해외 직구 배송업체들에 따르면 지난 주말 마무리된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의 해외 직구 소비는 20% 이상 폭증했다.

그런데 높아진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한 관심 덕에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깨닫게 됐다. 삼성과 LG,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가전 상표의 최신형 대형 TV를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에 구매하면 한국에서 구매할 때보다 최소한 50% 이상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파격 할인이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에만 벌어진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주말 블랙 프라이데이가 마무리됐는데도 미국 주요 온라인 쇼핑몰들은 박싱데이(12월 26일)까지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과 별 차이가 없는 파격적인 할인율로 삼성과 LG의 TV를 판매한다.

올해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월마트는 삼성전자 55인치 HDTV를 498달러(약 60만 원)에 판매했다. 40인치 TV 가격은 298달러. 북미 최대 전자유통업체 베스트바이(BEST BUY)는 삼성전자 60인치 4K HDTV를 799.99달러에 판매했다.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도 3,999달러에 판매하던 삼성전자 65인치 4K 스마트TV를 3분의 1 가격인 1,199달러에 판매했다. 모두 국내에서 사려면 갑절 이상의 돈을 내야 하는 제품들이다.

LG전자의 49인치 UHD(초고화질) 스마트 TV도 미국 베스트바이에서 499.99달러(59만 원)에 팔렸다. 이 제품은 국내 하이마트에서 세 배에 가까운 170만 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LG가 출시한 스마트폰 G4보다도 싼 가격에 HD급 화질의 스마트 프리미엄 TV를 미국 국민에게 판매한 것이다.

비단 TV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 시리즈를 사는 고객에게 250달러짜리 기프트카드를 제공했고, LG전자는 29인치 21:9 와이드 모니터를 반값에 파는 행사를 진행했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끝난 이후 이들 제품의 가격은 다소 올랐지만, 여전히 아마존 등 주요 쇼핑몰에서 30~4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 중이다.



삼성과 LG의 변명이 말이 되지 않는 이유

삼성과 LG는 ‘가격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허겁지겁 K-세일데이에 참여해 가전제품 할인을 행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전혀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면서 문제가 도드라져서 그렇지, 이 같은 가격 역차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삼성과 LG는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때 40~65인치 중대형 LED TV를 국내 시판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했다. 심지어 국내에서 200~300만 원대에 팔렸던 LED TV는 아마존에서 500달러(55만 원)에 살 수 있었다. 38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렸던 65인치 LED TV도 130~160만 원에 아마존에서 살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삼성 UHD 55인치 TV가 98만 원에 아마존에서 팔렸다. 국내에서는 인터넷 쇼핑몰 최저가로도 200만 원 초반대에서 사야 했던 제품이다. 심지어 비슷한 사양의 LG 55인치 TV는 50만 원 선에서 팔리기도 했다.

문제의 근원은 “소비자들이 어디에서 사는 게 더 싸냐?”는 것이 아니다. “삼성과 LG도 드디어 K-세일데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핵심이 아니다. 19일 <파이낸셜 뉴스>는 “정부가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국내 소비자들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행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삼성과 LG 등) 가전사들의 (K-세일데이) 참여를 강력하게 독려한 것으로 안다”고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는 정부의 ‘강력한 독려’ 때문에 삼성과 LG가 겨우 K-세일데이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정부의 독려가 없다면 한국 가전회사들은 자발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싸게 팔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삼성과 LG 등 국내 가전회사들은 가격 역차별 문제에 대해 “두 나라의 시장 규모가 다르고 판매되는 제품도 다르다. 시장의 유통구조도 달라서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시장 규모나 유통구조가 다르다고 해서 두 회사가 제품을 밑지는 가격에 팔 리는 만무하다.

결국, 두 회사의 이런 가격 차별은 ‘어느 시장에서 얼마나 더 남기느냐’를 그들이 정책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 자율권은 기업에 있어야 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으나, 문제는 가격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에게는 반값에 팔고, 자국민들에게는 갑절 가격으로 파는 차별이 정당하다고 볼 소비자들은 없다. 게다가 올해 한국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진행됐는데, 이때에도 두 회사 제품의 할인율은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삼성과 LG가 주장하는 ‘유통 구조의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들 기업은 “한국은 제조업체는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지만, 미국은 유통과 제조가 완전히 분리돼 유통업체의 권한이 막강하다. 따라서 유통업체가 가격을 내리라고 하면 그 가격에 제품을 내줄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제조업체인 삼성과 LG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욱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가격을 더 내릴 수 있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힘 있는 미국 유통업체가 “내려라” 하면 고분고분 내리면서, 한국 소비자들의 “비싸다”는 호소를 아예 무시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이들의 설명을 결국 “어차피 국내 시장에서는 가격 결정력이 우리에게 있으니 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해도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두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 단순한 가격 비교는 무리”라는 핑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에서 더 싸게 파는 제품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제품보다 질이 아주 낮다”고 주장할 참인가? 지금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언론에 보도 자료로 뿌려도 이들은 괜찮다는 이야기일까?

실제 두 시장에서 판매되는 삼성과 LG 제품의 사양이 100% 일치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가격 비교를 막기 위해 두 회사가 교묘히 조금씩 사양의 차이를 둔 탓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대략적인 제품의 스펙 비교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비슷한 스펙의 제품 가격이 갑절 차이가 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삼성과 LG가 “제품이 달라서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말할 요량이라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한국에서 시판되는 제품보다 이런 점이 부족해서 가격이 싸다”라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국산품 애용으로 큰 기업들, 한국 소비자는 보이지도 않나

삼성과 LG가 지금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크기 전인 1990년대 후반, 삼성은 국내 시장을 지키기 위해 휴대폰 애니콜을 내놓으면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광고 카피를 앞세웠다. 당시 세계 시장을 제패하던 모토로라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애니콜을 살리기 위해 삼성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한 것이다.

대놓고 가격 역차별이 진행 중인 TV만 해도 그렇다. 1985년 19인치 이상 컬러TV가 수입 제한 품목에서 풀리기 전까지 TV는 철저히 정부에 의해 보호됐고, 국민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들 두 회사의 제품을 구매했다. 삼성과 LG의 사업 기반은 한국 소비자들의 애정으로 세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시장 규모니, 유통구조의 차이니 등 별 설득력 없는 이유를 들어 엄청난 가격 역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책적으로 추진한다. 그래서 한국 국민은 자국 기업이 생산한 TV를 배송비와 관세까지 물어가며 미국 직구 사이트에서 구매한다. 그렇잖아도 국내 소비가 부진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은 국내 소비를 늘리는 데에 아무 관심이 없고 ‘천조국민’들의 소비 심리만 자극해 매출을 늘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최근 수출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현대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내수 시장 사수” 특명을 받아 국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 중이라고 한다. 삼성과 LG도 수출 시장의 부진으로 고난을 겪으면 보나 마나 “내수 시장을 사수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한국 소비자는 재벌 기업들이 수출 시장에서 부진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호갱’이 아니다. 한국 소비자들도 미국 국민만큼 좋은 제품을 싸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출처  우리는 왜 국산 TV를 미국 사이트에서 더 싸게 구매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