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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돈 안쓰면서 생색내는’ 창조적 방법

박근혜 정부가 ‘돈 안쓰면서 생색내는’ 창조적 방법
[민중의소리] 이상민 전문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5-12-02 06:49:09


이 기사는 이런 내용을 다룬다.

(1) 박근혜 정부도 다른 정부처럼 돈을 더 쓰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다.
(2) 무슨 일이 있어도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게 박근혜의 신념이다.
(3) 그렇다면 생색만 내면서 돈을 안쓰는 방법이 있을까?
(4) 있다! 융자사업.

그러니까 이 기사는 ‘융자사업’이라는 ‘꼼수’ 혹은 창조적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이 방법은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예산을 늘리지 않고도 예산을 늘린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허리띠를 졸라매어 그래도 이만큼 해냈다는 정부의 설명은 그래서 ‘사기’다. 창조와 사기는 이처럼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다.


박근혜 정부도 다른 정부처럼 돈을 더 쓰고 싶다

문제가 발생했다. 경제성장률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쳤고, 내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장전략은 소위 ‘초이노믹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이다. 경기부양책은 박근혜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경기부양책을 쓸 ‘실탄’(예산)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전망치를 ‘뻥튀기’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미뤄왔다. 경제가 잘 풀릴 것이니 세수입도 충분히 늘어나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다고 우겨온 것이다. (참고 : 세수결손 11조원, 이게 다 MB 잘못이라고?/2015.2.2) 그런데 이 방법은 이미 들통이 났다. 올해 추경예산 때, 경제부총리가 그동안의 ‘뻥튀기 경제전망치’에 대해 3번씩이나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 여야 원내지도부가 2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안 및 주요 법안 관련 합의문을 도출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 ⓒ뉴시스



그래도 증세는 안된다

박근혜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지금까지 왔다. 물론 박근혜가 공약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둘 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재정 공약의 핵심은 ‘증세 없는 복지’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확대에 대한 약속은 어겼는지 몰라도 ‘증세는 없다’는 원칙은 지켰다. 그러다 보니 모순되는 문제가 생겼다.

정권이 뭘 좀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복지재정을 늘리고, 국가부채는 줄이고, 내수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 ‘증세는 없다’가 바꿀 수 없는 원칙이 되니, 복지재정 확보나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 확대는 불가능하다. 이걸 하자면 국가부채를 늘려야 한다. 딜레마(두 가지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를 넘어 트릴레마(trilemma, 삼중고)다.

물론 복지를 확대하지 않아도 된다. ‘복지병’을 들먹이면서 ‘정면 돌파’가 가능하다. 박근혜가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알아서 방어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떨어지는 문제는 다르다. 그야말로 ‘외통수’다. 정부가 돈을 써서 경기를 뒷받침해야 한다. 예산을 늘리고 씀씀이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증세 없이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있을까? 최소한 돈을 쓰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데 방법은 과연 없을까?


방법은 있다. ‘융자사업’

가끔 ‘법인 카드’를 들고 와 한턱 쏜다고 생색내는 선배들이 있다. 물론 자기 돈은 쓰지 않는다. 정부가 하는 ‘융자사업’이 그렇다. 회계상으로는 돈을 쓰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쓰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렇다. (정확한 수치는 뒤에서 다룬다)

정부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1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떡하니 집어넣는다. 그런데 뒤에 따라붙는 게 ‘융자사업’이라고 하자. 융자는 글자 그대로 빌려주는 돈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다. 결국,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시중금리)와 정부에서 돈을 빌릴 때(정책금리)의 금리 차에 불과하다.

은행금리가 5%, 정부금리가 3%라면 2%p의 차이가 날 뿐이다. 결국, 정부는 1천억 원을 쓴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20억 원에 불과하다.

금융사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정부가 직접 융자사업을 하지 않고 시중금리와의 차이만 보전해 주는 ‘이차보전’ 사업도 있다. 저금리 융자가 필요한 산업이 있다면 은행 등 금융권에서 저리 대출을 받고 정부는 나중에 시중금리와 정책금리의 차이만 금융권에 보전해 주는 ‘이차보전’ 사업이 더 효율적이다.

다만 회계장부에 기록할 때는 다르다.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융자로 진행하면 예산 금액이 많아 보이게 되고, 이차보전으로 하면 예산 금액이 금리 차 정도로 감소한다. 뭔가 했다는 생색을 내자면 융자사업이 속된 말로 ‘짱’이다.


Case 1. 박근혜 정부는 중소기업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13.5조 원을 편성했다. 올해 12.9조 원에서 6,400억 원이 늘어난 수치다. 비율로는 5% 증가다. 전체 예산 증가가 단 0.5%이니 중소기업 예산은 다른 것과 비교해 제법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중소기업을 위한 예산 중에서 유독 융자사업 예산만 대폭 늘어났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창업진흥기금 융자가 내년 1,500억 원 늘어난다. 관광산업 융자지원도 1,000억 원이 늘었다. 중소기업을 위한 융자사업 증대금액은 전체가 8,100억 원이 넘는다.

여기서 숫자를 유심히 보자. 중소기업 관련 전체 예산이 6,400억 원 늘었는데, 융자금액만 8,100억이 늘었다? 그러니까 융자사업 이외의 중소기업 예산은 삭감된 것이다.

만일 금리 차가 2%라면 융자사업이 늘어남으로써 중소기업이 실제 혜택을 보는 액수는 162억 원 정도다. 그런데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 이차보전 예산은 65억 원이 줄었다. 고용창출지원사업 이차보전예산도 36억 원이 줄었다. 중소기업 R&D 지원예산도 860억 원이 줄었고 중소기업 창업지원예산은 무려 1,200억 원이 줄었다.

중소기업 관련 예산을 왕창 줄여놓고, 융자사업만 늘려놨다. 이 예산서를 보면 마치 중소기업 전체 예산이 5%나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박근혜 정부는 중소기업을 정말로 사랑하는 걸까?


Case 2. FTA 피해대책이라는 농어촌지원은 늘었을까?

이런 눈속임은 농업 부문에서 더 심각하다.

한중 FTA비준안이 통과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찬성론, 반대론, 신중론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찬성하는 측도 농업부분에 피해가 간다는 사실과 그에 따라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래서 그 피해보상 금액으로 매년 1천억원, 10년간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쓰인단다.

하지만 이것도 ‘융자’다.

1조원은 농업부분에 사용되어서 없어지는 돈이 아니다. 이 기금은 융자사업에 쓰인다. 만일 금리차가 2%라면 1조원의 융자예산을 통해 농가가 받을 수 있는 실질 혜택은 200억원에 불과하다. 200억원을 쓰면서 1조원을 쓴다고 말하는 건 ’사기’다.

참고로 정부가 재벌대기업의 R&D에만 쓰는 돈이 매년 2조원이다. 이건 융자가 아니다. 매년 재벌대기업은 실제로 2조원을 가져간다.

▲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후인 1994년, 축산 발전지원금액이 1.1조 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매일경제신문 기사.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지난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타결 이후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가 만들어졌다. 이 특별회계의 올해 융자금액이 580억 원이었다. 내년 예산은 무려 470억 원이 늘어나 1천억 원이 넘는다. 예산상으로는 80% 폭증했지만 2%라면 농어촌의 실질 혜택은 20억 원에 불과하다.

‘자유무역협정이행지원기금’이 있다. FTA 체결 이후 만들어진 농어촌 지원기금이다. 이 기금 역시 융자다. 내년에 300억 원이 늘어나 총예산금액은 2,200억 원이나 된다.

이런 식으로 늘어난 농림축산식품부의 전체 융자예산은 내년에만 2,100억 원이 늘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지원과 마찬가지로 농어촌 관련 이차보전 사업은 줄었다. 예를 들어 ‘산림사업종합자금’ 이차보전 사업은 61억 원이 줄었다. 대신 ‘산림사업종합자금’ 융자사업은 404억 원이 늘었다. 즉, 실질지원만 보면 (-)61억 원에 (+)8억원(404억원×금리차2%) 이다. 그래도 예산서에는 대폭 증액으로 찍힌다.


내년 예산은 그냥 봐도 줄었지만, 실제론 더 줄었다

박근혜 정부 2016년 예산안을 보면 추경 기준으로 단지 2조 원, 그러니까 0.5% 증가에 그쳤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재정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초이노믹스 정책을 펼친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예산증가율 5.6%와 비교해 봐도 대단히 적은 규모다.

예산을 줄인 최초의 정부로 기록되기는 싫었던 박근혜 정부는 융자사업을 키우고 이차보전사업을 줄였다. 증대된 2조 원 중에 약 7,000억 원이 융자사업에서만 증대된 금액이다.

나머지 1조3천억 원은 늘어난 것 아니냐고?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국민연금 등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사회보장기여금 증대분이 5.2조 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어느 모로 보나 예산은 줄어들었다. (참고 : ‘창조경제’가 사라진 예산안 - 2016년도 예산안의 다섯가지 포인트/2015.10.25)

‘흐드러지다’라는 궁중 권력 암투를 그린 웹툰이 있다. 한쪽 세력이 음모를 꾸미면 다른 쪽은 그 음모를 역이용해서 함정을 판다. 그러면 처음 음모를 꾸민 세력은 다시 그 함정을 거쳐 새로운 음모를 만든다. 이 웹툰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그 머리로 차라리 정치를 하지”

그 좋은 머리로 좋은 경제정책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최소한 솔직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출처  [단독] 박근혜 정부가 ‘돈 안쓰면서 생색내는’ 창조적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