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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한겨레21] 이상득·최시중·박희태...6인회의의 타툼과 몰락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박희태, 김덕룡
6인회의 블랙코미디 같은 몰락

[표지 이야기] ‘MB 대통령 만들기’ 핵심 ‘6인회의’ 권력다툼 거듭하다 몰락…
돈봉투 사건 배후엔 이들의 자리싸움 있고, 최측근 줄구속 등 재기 불능 상태 빠져

[한겨레21 제895호] 송호균 기자 | 2012.01.30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철저하고도 참혹한 몰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핵심 인사들의 이야기다. 대통령의 형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부터 ‘MB의 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박희태 국회의장은 본인 및 측근들의 각종 추문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재오 의원도 지루하게 반복된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과 친이계 전반의 추락 속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개국공신들의 최후라고 하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돈봉투 배후, 6인회의 권력다툼

▲ 박희태 국회의장(왼쪽)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한겨레> 김봉규
이들은 모두 지난 대선 과정에서 6인회의(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박희태, 이재오, 김덕룡) 멤버로 활약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6인회의는 이념을 매개로 한 가치집단도, 동교동계나 상도동계 같은 동지적 유대감으로 뭉친 가신그룹도 아니었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로 수렴됐다. 일종의 정치적 이해집단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6인회의를 넘어 친이계 전반의 성격이 그랬다. 숱한 난관을 거쳐 대권을 거머쥐는 순간부터 이들은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대립했다. 정두언 의원 등 역시 개국공신으로 분류되지만 결국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친이 소장세력의 반발과 함께 여권의 핵심부가 정권 초반부터 극심한 내분 양상을 띠게 된다. 인사(人事), 즉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난무했다. “국정 농단” “패륜” 등의 살벌한 수사까지 등장했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의원은 2011년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득 의원은 이병석 의원을, 이재오 의원은 안경률 의원을 각각 원내대표로 밀었다. 하지만 끝내 친이 후보 사이의 단일화는 무산됐고, 1차 투표 결과 계파색이 덜한 황우여 후보가 선두를 달리게 된다. 황우여 후보와 안경률 후보가 맞붙은 결선투표에서 이상득계 의원들은 안 후보 대신 오히려 황우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후 이재오 의원 쪽은 여러 경로로 이상득 의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들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는 의구심에서다. 역시 친이계 내부의 권력다툼이 야기한 불협화음이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한겨레> 강창광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도 근본적으로는 여권 내부의 ‘밥그릇 싸움’에 의해 촉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대세론’은 친이계 전반의 공동 기획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집권 초반기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이 필요했던 청와대도 전폭적인 힘을 실었다. 당시 박희태 캠프는 이상득 라인과 이재오 라인이 함께 주도했다. 좌장과 상황실장은 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최병국 의원과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각각 맡았다. 서울 지역 30개 당협 사무국장에게 50만원씩 건네도록 구의원들에게 현금 2천만원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 역시 이재오 의원의 측근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과정에서 정몽준 의원의 추격이 시작됐다. 친이 주류는 유·무형의 자산을 최대한 결집시켜야 했다. 돈봉투 살포는 이런 과정에서 이뤄졌다.

돈봉투 문제를 촉발한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폭로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된다. 고 의원의 지역구는 6인회의 멤버인 김덕룡 전 대통령특보와 같은 서울 서초을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먼 친척인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김 전 특보의 출마설이 맞물렸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생존을 장담할 수 없던 고 의원이 박희태 의장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고려해 ‘돈봉투’를 거론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권 내부의 자리다툼 때문에 살포된 돈봉투의 존재가 같은 이유로 세상에 드러난 셈이다. 코미디라면, 블랙코미디다.

이들은 모두 지난 대선 과정에서 6인회의(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박희태, 이재오, 김덕룡) 멤버로 활약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6인회의는 이념을 매개로 한 가치집단도, 동교동계나 상도동계 같은 동지적 유대감으로 뭉친 가신그룹도 아니었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로 수렴됐다.


박희태를 넘어서 공멸 위기

▲ 이재오 의원. <한겨레> 박종식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돈봉투를 뿌리는 과정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박희태 캠프의 내부 문건도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서울과 부산 지역 38곳의 현역 의원들과 원외 위원장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명시돼 있다. 돈봉투 준비와 살포를 맡은 비밀 선거사무실이 당시 박희태 캠프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문건은 캠프 내부 회의에 참석한 인물들을 ‘○’ 표시로 구분하고 있다. 돈봉투를 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안병용씨를 비롯해 고승덕·안형환·공성진·정의화 의원 등 당시 한나라당 현역 의원 18명의 이름에 ‘○’ 표시가 붙었다. 이재오 의원은 다른 인물이 “대리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검찰 쪽은 “문건의 ‘○, X’ 표시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고 설명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오히려 돈봉투가 당시 박희태 후보를 지지한 계파, 그중에서도 이상득계와 이재오계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뿌려진 정황을 드러낸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원희룡 의원은 1월12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의원이나 당협 위원장이) 대의원 100명을 데려오느냐, 60명만 데려오느냐, 방치해서 20명밖에 안 오느냐에 따라 승패가 바뀝니다. 자파의 위원장들이 대의원을 모두 데려올 수 있도록, 그리고 단돈 1만원이라도 자신들의 돈은 안 쓰게끔 비용을 부담하는 성격의 돈이라고 추측됩니다. 이렇게 되면 중도파나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쪽에는 (돈봉투를) 못 주지요.”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애초 1월18일 해외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로 돼 있는 박희태 의장의 입에 쏠리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용퇴 불가피론’이 광범위하게 제기된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1월13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박 의장이 속히 귀국해 적절한 대응을 해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도 같은 날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박희태 의장 본인이 알아서 정치적인 판단을 하리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검찰 수사도 피할 수 없다. 임기가 5월까지인 박 의장이 조기 사퇴한다면, 백두진·박준규 전 의장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국회의장이 된다. 국회의장직을 끝으로 명예롭게 정계를 떠나려던 ‘정치인 박희태의 꿈’은 현실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사태가 박 의장의 거취 표명으로 일단락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비례대표 공천도 돈봉투와 관련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현역 의원들과 원외 위원장들에게 살포된 돈의 뿌리가 2007년 대선자금에 있다는 의혹도 거론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조직 동원과 금품 살포 논란까지 제기됐다. ‘공멸’에 대한 공포가 한나라당 전체를 휘감고 있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이후를 책임져야 할 총무기획관에 또다시 ‘형님’의 수족인 장다사로 실장을 기용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치의 생리에 무지하고, 끝내 ‘형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이 대통령다운 자충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도 동생 MB는 형님 바보

친이계 권력투쟁사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채우는 인물은 단연 이상득 의원이다. 집권 초반 ‘권력 사유화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 의원은 각종 인사 전횡과 ‘형님 예산’ 논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 등을 거치며 여려 차례 제기된 여당 내부의 퇴진 압박에도 끄떡없는 괴력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이 달랐다. 거액의 뭉칫돈이 이상득 의원 쪽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의원의 여비서 두 명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체가 모호한 현금 8억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의원의 관련성 여부를 수사해왔다. 측근인 박배수 보좌관은 SLS그룹과 제일저축은행에서 구명 청탁과 함께 7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연말 구속됐다. 결국 이상득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이뤄진 불출마 선언에 ‘쇄신의 의미’가 부여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 의원은 이제 검찰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의원의 구속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천하의 이상득이라도 이대로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1일 단행한 청와대 참모진 인사는 시류를 거스른다. 이상득 의원의 핵심 측근인 장다사로 기획관리실장이 청와대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기획관에 발탁된 것이다. 의미심장하다. 이번 인사는 박배수 보좌관이 구속된 시점(12월10일) 하루 뒤에 이뤄졌다. 박 보좌관이 받았다는 돈의 액수는 현재까지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이후를 책임져야 할 총무기획관에 또다시 ‘형님’의 수족인 장다사로 실장을 기용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치의 생리에 무지하고, 끝내 ‘형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이 대통령다운 자충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마저 각종 추문에 휘청거려 권부의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상득 의원과 서울대 동문인 최시중 위원장은 1970년 무렵부터 ‘청년 이명박’을 알았고, 이 대통령이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문한 1992년 이후 이상득 의원과 함께 대권의 ‘큰 그림’을 준비한 장본인이다. 정권 초반부터 실세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왔고, 끝내 보수 언론에 종편 개국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줘 ‘방통대군’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씨가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수사선상에 오르자, 야당들은 ‘정용욱 게이트’의 몸통으로 최 위원장을 지목됐다. 동남아에 도피 중인 정씨는 설 연휴 이후 귀국해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배임 혐의로 고발된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무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최 위원장을 향한 사퇴 압박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소이부답’으로 ‘표리부동’ 가리기

국회에서 “정 전 사장의 무죄 확정판결이 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던 최 위원장은 곧바로 말을 바꿨다. 최 위원장은 1월13일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음으로 답을 대신함)이라며 입을 닫았다. 같은 날 국회 법사위에서는 “그동안 정 전 사장이 겪었을 여러 심리적 고통에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내 진퇴나 책임의 영역까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피해갔다. 하기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명박 대통령)이고 “단 한 번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적 없다”(최시중 위원장)는 사람들인데, 이 정도 표리부동쯤이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출처 : 이명박,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박희태, 김덕룡...6인회의 블랙코미디 같은 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