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들의 스캔들
[민중의소리]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최종업데이트 2016-05-08 13:33:37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회원 200여명이 내는 회비 350만원과 폐지, 빈병 등을 모아 번 돈 100만원 등이 월 수입의 전부”라고 말했다. 1)
별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를 두둔하는 곳이면,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들의 자발성은 의심대상이었다. 결국 자중지란으로 인해 실체가 드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 국가정보원, 청와대까지 연결된 끈이 줄줄이 알사탕이다. 여기에 SK, CJ까지 점입가경이다. 탈북자들이 엮여 있기도 하다. 이미 어버이연합은 자유총연맹의 자금 지원, 오세훈 서울시장의 민간단체 지원사업 등으로 비난 받은 전적도 있다.
박근혜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통령선거 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오픈프라이머리 주장하며 국민 분열시키는 비박 3인방 강력 규탄한다”, “‘여자 대통령은 안돼’라며 여성 무시하는 이재오 의원, 즉각 새누리당 탈당하라”2)라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선 이후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심인섭 어버이연합 회장이 운영위원으로 있는 ‘대한민국지킴이 민초들의 모임’을 찾아 “(박 당선자) 대신 감사 말씀드려도 이해해 달라”며 보답했다. 이들의 행보는 이어졌다. 대통령의 ‘7시간’ 칼럼으로 논란이 되었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사무실 앞에 찾아갔다.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고 확인해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촉구 등 대통령을 위한 모든 곳에 나타났다.
친정부 정책은 무조건 지지했고, 반대 세력은 비방했다. 이들은 국립현충원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곡괭이로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MBC 파업을 지지한 최일구 전 앵커를 출연시키는 등의 이유로 tvN 소유주 CJ그룹 건물에도 나타났다. (그 이후 CJ그룹으로부터 입금 된 것 확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방하는 집회·시위를 집요하게 진행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종북 세력으로 몰기도 했다. 추 총장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대통령한테 욕을 하는 이런 X같은 새끼들은 대한민국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그런 X새끼들입니다”라는 원색적 욕설을 퍼부었다.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까지… 중요한 사회문제에 발언하는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적이 되었다. 아니,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지명했다.
‘어버이’라는 이름과 때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보수집단’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이들. 끔찍하게도 ‘서북청년단’이라는 테러집단 이름까지 버젓이 쓰는 이들의 공통점은 ‘보수’가 아니라 ‘폭력’과 ‘혐오’였다. 자신들이 규탄하는 집단이면 사진을 붙인 채, 화형식을 자행했다. 실제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폭력을 휘둘렀다.3) 이미 이들의 행위는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와 소위 조중동과 종편 등 보수 언론은 이런 어버이연합을 한국 사회 보수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줄곧 대우해 왔다.…이른바 1대 1, 기계적 균형보도를 한다며 사실은 보수 여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여론몰이나 물타기를 해 온 것이다.4)”
수만 명이 모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바깥에, 누가 지원했는지 알 수 없는 고성능 음향장비를 갖춘 채, 방해를 목적으로 모인 1,000여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여론의 양분’으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정·관·재계와 언론까지 거들자 2006년 설립된 어버이연합은 이명박 정부를 지나며, 급속히 성장했다. 어버이연합이라는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오늘도 이들의 커넥션은 아직도 유효하다.
KBS는 관련 의혹이 나온 지난 11일부터 28일 현재까지 메인 뉴스에서 어버이연합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을 10초간 단신으로 한 차례 전했을 뿐이다. MBC의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에서는 28일까지도 관련 소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전한 KBS 기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기도 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간추린 뉴스 코너를 진행해온 이재석 KBS 기자는 지난 21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타 언론사의 보도를 인용해 전달했지만 다음날부터 이 기자는 이 코너에서 배제됐다.5)
이들은 어느 순간, 그림이 되었다. 청와대와 국정원, 전경련까지 이어지는 권력이 필요로 하는 그림. 국민 여론을 기계적으로 맞춰서 보도하고 싶은 언론의 그림.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들에게도 어느덧 그들은 풍경의 하나가 되었다.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고, 어김없이 갈등과 분노를 자아낼 것이라는 예상 가능한 풍경. 어쩌면 공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뿌리를 흔드는 잘못된 국가 정책과 자본의 탐욕보다, 눈앞에 보이는 아귀 같은 분노가 그들을 향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그들은 자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성 소수자들에게 ‘혐오’를 선동하는 그들을 보며 ‘악마’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리에 극한 감정이 자라났다. 극한 감정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할 만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분노는 상대방만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애국 보수’를 사주했던 이들이 노리는 것에, 그것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단식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세월호 분향소를 철거하러 오기도 했던 ‘엄마부대봉사단’의 일화.
지난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유가족을 비난하는 어머니 봉사단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어머니 봉사단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대학특례 입학 등을 원하는 유가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건너가서 유가족이 낸 특별법안을 직접 보여주며 “유가족들은 돈이 아니라 진실만을 원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때 어머니 봉사단원 한 명이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어”라고 단언했다.6)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다’고 단정해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보며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자발성이라도, 누군가에 의한 이용이라도 심각한 문제다. 그들이 나선 거리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생각이나 의견 차이의 거리가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되묻는 질문의 거리였다. 이성적 사회라면, 이러한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토론을 하지,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일부러 걸어오는 싸움에 영문도 모른 채 벌거벗겨 던져졌다. 날 것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부끄럽고 상처가 날 수밖에. 국가는 투전꾼이었고 무능을 가장한 야비한 관전자였다.
누군가 이번 사태를 두고 “모두가 예상했던 뻔한 일 아닌가,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상했던 일은 맞지만, 호들갑 떨어야 할 일이다. 마땅히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일당 2만 원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색 테러와 국가범죄가 연결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 제주 4.3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니, 해방 이후 비극적 시간까지 역주행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극우 집단인 ‘어버이연합’에 검은돈이 흘러들어 간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서로 간의 물고 물리는 변명과 책임 전가로 인해, 추악한 연결망은 속절없이 드러나고 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비명을 “종북 좌빨 척결하자”는 윽박지름이 덮었다. 사람을 살릴 수 없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잃었다. 도와달라는 힘없는 사람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보수’가 어디 있겠나. 지금 어버이연합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보수’의 민낯이 아니다. 극우주의자들을 이용한 국가범죄, 재벌까지 연루된 사건이다. 제대로 단추를 풀지 못하면, 정말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정의나 합리, 이성이 시르죽은 사회. ‘사회’라 불릴 수 없는 그런 곳 말이다.
1) 한국일보 [도 넘은 어버이연합, 도대체 어떤 단체길래] [본문으로]
2) 경향신문 ['박근혜 수호대' 자임 어버이연합 "근혜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본문으로]
3) 프레시안 [보수단체, 통진당 난입ㆍ폭행…이석기·이정희 '화형식'] [본문으로]
4) 뉴스타파 [한국 언론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공범] [본문으로]
5) 뉴스타파 [한국 언론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공범] [본문으로]
6) 인권오름 [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가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큰 발걸음] [본문으로]
출처 [기고] 어버이들의 스캔들
[민중의소리]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최종업데이트 2016-05-08 13:33:37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회원 200여명이 내는 회비 350만원과 폐지, 빈병 등을 모아 번 돈 100만원 등이 월 수입의 전부”라고 말했다. 1)
대통령을 사랑한 이들의 이유
별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정부를 두둔하는 곳이면,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들의 자발성은 의심대상이었다. 결국 자중지란으로 인해 실체가 드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 국가정보원, 청와대까지 연결된 끈이 줄줄이 알사탕이다. 여기에 SK, CJ까지 점입가경이다. 탈북자들이 엮여 있기도 하다. 이미 어버이연합은 자유총연맹의 자금 지원, 오세훈 서울시장의 민간단체 지원사업 등으로 비난 받은 전적도 있다.
박근혜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통령선거 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오픈프라이머리 주장하며 국민 분열시키는 비박 3인방 강력 규탄한다”, “‘여자 대통령은 안돼’라며 여성 무시하는 이재오 의원, 즉각 새누리당 탈당하라”2)라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선 이후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심인섭 어버이연합 회장이 운영위원으로 있는 ‘대한민국지킴이 민초들의 모임’을 찾아 “(박 당선자) 대신 감사 말씀드려도 이해해 달라”며 보답했다. 이들의 행보는 이어졌다. 대통령의 ‘7시간’ 칼럼으로 논란이 되었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사무실 앞에 찾아갔다.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고 확인해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촉구 등 대통령을 위한 모든 곳에 나타났다.
친정부 정책은 무조건 지지했고, 반대 세력은 비방했다. 이들은 국립현충원 앞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를 곡괭이로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MBC 파업을 지지한 최일구 전 앵커를 출연시키는 등의 이유로 tvN 소유주 CJ그룹 건물에도 나타났다. (그 이후 CJ그룹으로부터 입금 된 것 확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방하는 집회·시위를 집요하게 진행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종북 세력으로 몰기도 했다. 추 총장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대통령한테 욕을 하는 이런 X같은 새끼들은 대한민국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그런 X새끼들입니다”라는 원색적 욕설을 퍼부었다.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까지… 중요한 사회문제에 발언하는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적이 되었다. 아니,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지명했다.
▲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3월 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대구 동구을 등 5개 지역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지 않겠다며 옥새 투쟁 중인 김무성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극우폭력과 이들에 대한 이용
‘어버이’라는 이름과 때로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보수집단’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이들. 끔찍하게도 ‘서북청년단’이라는 테러집단 이름까지 버젓이 쓰는 이들의 공통점은 ‘보수’가 아니라 ‘폭력’과 ‘혐오’였다. 자신들이 규탄하는 집단이면 사진을 붙인 채, 화형식을 자행했다. 실제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폭력을 휘둘렀다.3) 이미 이들의 행위는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KBS, MBC 등 지상파 방송사와 소위 조중동과 종편 등 보수 언론은 이런 어버이연합을 한국 사회 보수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줄곧 대우해 왔다.…이른바 1대 1, 기계적 균형보도를 한다며 사실은 보수 여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여론몰이나 물타기를 해 온 것이다.4)”
수만 명이 모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바깥에, 누가 지원했는지 알 수 없는 고성능 음향장비를 갖춘 채, 방해를 목적으로 모인 1,000여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여론의 양분’으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정·관·재계와 언론까지 거들자 2006년 설립된 어버이연합은 이명박 정부를 지나며, 급속히 성장했다. 어버이연합이라는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오늘도 이들의 커넥션은 아직도 유효하다.
KBS는 관련 의혹이 나온 지난 11일부터 28일 현재까지 메인 뉴스에서 어버이연합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을 10초간 단신으로 한 차례 전했을 뿐이다. MBC의 메인 뉴스 <뉴스데스크>에서는 28일까지도 관련 소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전한 KBS 기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기도 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간추린 뉴스 코너를 진행해온 이재석 KBS 기자는 지난 21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타 언론사의 보도를 인용해 전달했지만 다음날부터 이 기자는 이 코너에서 배제됐다.5)
풍경의 하나가 된 이들
이들은 어느 순간, 그림이 되었다. 청와대와 국정원, 전경련까지 이어지는 권력이 필요로 하는 그림. 국민 여론을 기계적으로 맞춰서 보도하고 싶은 언론의 그림.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들에게도 어느덧 그들은 풍경의 하나가 되었다.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고, 어김없이 갈등과 분노를 자아낼 것이라는 예상 가능한 풍경. 어쩌면 공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뿌리를 흔드는 잘못된 국가 정책과 자본의 탐욕보다, 눈앞에 보이는 아귀 같은 분노가 그들을 향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그들은 자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 성 소수자들에게 ‘혐오’를 선동하는 그들을 보며 ‘악마’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리에 극한 감정이 자라났다. 극한 감정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할 만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분노는 상대방만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애국 보수’를 사주했던 이들이 노리는 것에, 그것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단식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세월호 분향소를 철거하러 오기도 했던 ‘엄마부대봉사단’의 일화.
지난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유가족을 비난하는 어머니 봉사단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어머니 봉사단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대학특례 입학 등을 원하는 유가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건너가서 유가족이 낸 특별법안을 직접 보여주며 “유가족들은 돈이 아니라 진실만을 원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그때 어머니 봉사단원 한 명이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어”라고 단언했다.6)
▲ 2014년 7월 18일 엄마부대 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나라지킴이여성연합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국가 의사자 지정과 대학특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장하고 있다. 당시 세월호 가족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 5일째 단식농성 중이었다. ⓒ양지웅 기자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다’고 단정해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보며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자발성이라도, 누군가에 의한 이용이라도 심각한 문제다. 그들이 나선 거리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생각이나 의견 차이의 거리가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되묻는 질문의 거리였다. 이성적 사회라면, 이러한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을 가지고 토론을 하지,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일부러 걸어오는 싸움에 영문도 모른 채 벌거벗겨 던져졌다. 날 것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부끄럽고 상처가 날 수밖에. 국가는 투전꾼이었고 무능을 가장한 야비한 관전자였다.
누군가 이번 사태를 두고 “모두가 예상했던 뻔한 일 아닌가,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상했던 일은 맞지만, 호들갑 떨어야 할 일이다. 마땅히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일당 2만 원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색 테러와 국가범죄가 연결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 제주 4.3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니, 해방 이후 비극적 시간까지 역주행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극우 집단인 ‘어버이연합’에 검은돈이 흘러들어 간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서로 간의 물고 물리는 변명과 책임 전가로 인해, 추악한 연결망은 속절없이 드러나고 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비명을 “종북 좌빨 척결하자”는 윽박지름이 덮었다. 사람을 살릴 수 없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잃었다. 도와달라는 힘없는 사람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보수’가 어디 있겠나. 지금 어버이연합 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보수’의 민낯이 아니다. 극우주의자들을 이용한 국가범죄, 재벌까지 연루된 사건이다. 제대로 단추를 풀지 못하면, 정말 ‘사람이 그렇게 착할 리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정의나 합리, 이성이 시르죽은 사회. ‘사회’라 불릴 수 없는 그런 곳 말이다.
1) 한국일보 [도 넘은 어버이연합, 도대체 어떤 단체길래] [본문으로]
2) 경향신문 ['박근혜 수호대' 자임 어버이연합 "근혜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본문으로]
3) 프레시안 [보수단체, 통진당 난입ㆍ폭행…이석기·이정희 '화형식'] [본문으로]
4) 뉴스타파 [한국 언론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공범] [본문으로]
5) 뉴스타파 [한국 언론은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공범] [본문으로]
6) 인권오름 [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가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큰 발걸음] [본문으로]
출처 [기고] 어버이들의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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