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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정권은 오래전부터 부산영화제를 괴롭혀왔다

정권은 오래전부터 부산영화제를 괴롭혀왔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인터뷰
서병수 시장은 ‘그럼 뭐 우리 법대로 합시다’라고 하더라

[한겨레] 부산/박기용 기자 | 등록 : 2016-05-13 19:56 | 수정 : 2016-05-13 22:44


▲ 비바람이 불던 지난 10일 낮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사무국이 자리한 영화의전당을 배경으로 섰다. 강재훈 선임기자


부산지방검찰청이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기소한 다음 날인 지난 4일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기소 여부가 정해지면 그때 인터뷰를 하자, 약속이 돼 있던 터였습니다. 영화제를 떠난 만큼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언론을 통해 해둬야겠다던 그는, <한겨레>와 만나 1년 반가량의 시간 동안 벌어진 부산시와의 갈등을 담담히 풀어놨습니다. 자신은 정치적 싸움에서 완전히 졌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전 최선을 다해서 영화제를 잘 치르면 시장님께서 좀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한 거고, 그런데 이어서 바로 (지난해)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거죠. 거기에 저에 대한 도덕성 문제 이런 것까지 너무 많이 흘리니까… 검찰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죠. 검찰에 고발하기 전 시장님께서 ‘스스로 물러나면 고발하지 않겠다’라는 거였거든요.”

“시장이 그렇게 얘기했나요?”

“아뇨. 담당 국장, 특보 이런 분들이 대화 창구였으니까. 그래서 제가 ‘좋다, 그럼 내가 물러날 테니 퇴로를 열어달라, 검찰 고발 문제로 그만두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그러곤 시장 관저를 찾아간 거죠. 그게 작년 11월 14일인가 그래요. 찾아가서 ‘생각해봤는데, 검찰 고발을 안 할 테니 그만두라는 논리는 제가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다. 그러니 시장님께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게 어떻겠느냐, 개인적인 비리 같은 게 없으니 기회를 주시면 약속드린 대로 내년 영화제까지 마치고 물러나겠다.’ 그랬더니 ‘그럼 뭐 우리, 법대로 합시다.’ 하시니까…. (그래서 저도) ‘그럼 법대로 하시죠’ 그래서 고발이 된 거죠.”

고발 안 할 테니 그만두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했더니
시장은 “법대로 하자”고 했다
관저 찾아간 그날 생각했다
진짜 심각한 싸움 시작됐구나

고발 뒤 영화계는 즉각 반발했다
세계 영화인들도 지지의사 표명
범영화인 비대위는 보이콧 결정
영화인들 모여 한목소리 낸 건
스크린 쿼터 이후 10년 만이다


▲ 부산국제영화제-부산시 갈등 일지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용관(61)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제 전·현직 사무국장은 지난해 12월 11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됐다. 감사원의 ‘권고’에 따른, 부산시의 조처였다. 서병수 시장의 관저를 찾아간 날, 집으로 돌아오며 이 전 위원장은 ‘이제 진짜 심각한 싸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시와 영화제 사이의 갈등이 한층 더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국내외 영화계는 즉각 반발했다. 해외 유명 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지키자는 ‘아이 서포트 비프’ 운동을 펼쳤다. 베를린, 로테르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들도 동참했다. 그런데도 이 전 위원장은 지난 2월 25일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정기총회에서 해촉됐다. 3월 24일엔 부산지검에 출두했다. 9개 영화 단체가 속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18일 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보이콧)하기로 했다. 소속 회원 과반이 응답해 응답자의 90%가 찬성했다. 영화계가 한목소리를 낸 건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이후 10년 만이다. 일련의 고발과 해촉을 영화계는 영화예술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였다.

부산지검(형사2부·유병두 부장검사)은 지난 3일 이 전 위원장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결정 다음 날, 평행선을 달리던 부산시와 영화제 쪽은 이 전 위원장의 전임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직에 추대하기로 했다. 부산시장들이 맡아왔던 자리다. 오는 24일 임시총회에서 이 합의가 성사되면 김 전 위원장은 영화제의 첫 민간인 수장이 된다. 단독 집행위원장이 된 강수연 위원장은 지난 9일 기자들 앞에서 서 시장과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영화계는 이를 ‘봉합’으로 본다. 정관 개정 등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할 주요 과제를 미뤄뒀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지난 10일 영화제 사무국이 자리한 영화의전당 인근 그의 연구실에서 이 전 위원장을 만났다. 언론 인터뷰를 꺼려온 그가 부산시와의 갈등 상황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직접 말문을 연 건 처음이다. 이 전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2014년 9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 이어진 부산시와의 갈등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부산시가 집요하리만치 상영 중단을 요청했고, 직을 내놓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의 조직위원장직 수락에 대해서도 “왜 그리 급하게 받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요하게 이어진 압박

▲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서 시장은 2014년 7월 취임했다. 두 달 뒤인 9월 2일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을 포함한 그해 상영작 314편을 발표했다. 발표 때 이런 상황을 예상했나?

“전혀. 상영 중단 요청은 사실 이전에도 있었다. 부산시뿐 아니라 국가정보원, 대기업, 외국 영사관이나 대사관에서 종종 의견을 보내온다. 그럼 우리는 ‘그래도 상영해야겠다’고 답한다. <다이빙벨>이 문제가 된 그해엔 <군중낙원>이라는, 중국·대만 합작영화에 대해 중국대사관에서 의견이 왔다. 영화가 중국을 잘못 묘사해 중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됐다는 거다. ‘이해는 하지만 우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북한 영화 특집을 한 적이 있는데, ‘<피바다>같은 작품은 우리 정서엔 아직 이르니 안 틀었으면 좋겠다’고 국정원이 의견을 보내왔다. 협의해서 기자들, 관계자들에게만 ‘제한 시사’를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해선 당시 허남식 부산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영화를 꼭 틀어야 하냐’고 했다. ‘극영화일 뿐이다. 기업 때문에 못 틀면 말이 되냐. 애들(영화를 선정하는 프로그래머)이 말을 안 듣는다’고, 농담을 해가며 ‘웃고 넘기자’ 그랬다. 그렇게 사전 협의를 할 순 있다. 하지만 상영작으로 이미 발표한 작품을 틀지 않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 그럼 당시 시의 요청도 그런 의견 표명으로 볼 순 없나?

“처음 시 문화국(문화관광국)에서 ‘시장께서 안 틀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도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시장이 찾아왔다. 영화제 자원봉사단 발대식에 참석하러 영화의전당에 온 날 나와 수석프로그래머를 따로 불렀다. ‘국민정서에 반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랬다. ‘다큐 영화의 속성이 그렇다. 언제나 사회에서 일어났고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제주4·3, 용산참사, 강정마을을 다룬 다큐도 틀었다. 영화가 국민정서에 맞는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지 누군가가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걸 안 틀면 영화제 명성은 바로 추락한다’고. 그런데 이후 시의 별별 분들이 다 와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한 달 사이 상영 중단 압박이 굉장히 여러차례 있었다. 이례적이었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지금까지 5,219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최근 상영작은 절반 가까운 수가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자국을 제외한 국외 첫 공개) 작품이다. 명실공히 아시아 최대 규모, 최고 권위의 영화제다. 산파는 이 전 위원장을 비롯해 박광수(영화감독), 김지석(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오석근(전 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 전양준(영화제 부집행위원장) 등이었다. 영화과 교수, 평론가인 이들이 의기투합해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설립하고 영화진흥위원회 사장, 문화부 차관 등을 역임한 김동호 씨를 설득해 집행위원장 직을 맡겼다. 부산 경성대 교수였던 이 전 위원장은 초기 한국 영화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수석 프로그래머, 집행위 부위원장,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김 전 집행위원장이 사임한 2010년 이후론 영화제의 실질적 수장인 집행위원장 직을 단독으로 수행했다. 41살에 처음 영화제를 만들어 20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시장의 반대에도 <다이빙벨>을 상영한다고 했을 때, 그 1년 반 뒤 영화제를 아예 떠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이빙벨>이 상영된 19회 영화제가 끝나자 부산시는 행정지도점검을 시작으로 이 전 위원장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사퇴 결심을 하다

- <다이빙벨> 논란이 있는 그해 12월 부산시의 행정지도점검이 있었다. 해마다 이뤄지는 것인데, 이전과 다른 게 있었나?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그전엔 형식적이라 할 정도로 큰 틀에서만 확인했다. 그런데 그땐 별도 팀이 만들어져 샅샅이 뒤지더라. 각오했다. 마음먹고 하는 일이니 뭔가 나오겠다 싶었다. 일부 미흡한 게 있었지만 도덕적인 문제나 고의적 부정은 없었다.

그런데 마치 문제가 많은 것처럼 언론에 (점검 결과를) 유포하며 몰고 가더라. 그래서 우리도 대항했다. 이어 감사원 감사가 있었고 나에 대한 사퇴 권고가 있었다.”

- 대항이 쉽지 않았겠다.

“노력은 했지만 당시 워낙 시끄러웠고, (영화제가 끝난 직후라) 스태프들은 결산에 바빴다. 시장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시장을 만나 ‘죄송하다’, ‘양해해달라’ 했더니 ‘문제점이 많으니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하더라. 그래서 지난해 2월 안을 만들어 시장 앞에서 브리핑을 했다. 그 자리에서 ‘영화제의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원하시는 게 제가 나가는 것인 듯하니 나갈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대신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제안했다. 영화제의 인수인계는 몇 년 걸리니 공동집행위원장을 구한 뒤 1년 반 내지 2년 뒤 물러나겠다고 했다. 우리 쪽에서 안성기, 강수연 두 분을 추천했고 시에서 조재현씨를 권했다. 공동집행위원장 선임에 시간이 걸렸다.”

- 영화제의 독립성이 이슈가 된 상황에서, 당사자가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영화계에선 시에 너무 고분고분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인정한다. 시에 휘둘렸다. 하지만 시가 나를 물러나라 했고,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되면서 전 조직이 마비됐다. 나 하나로 끝난다면 굳이 물러나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생각했다. 내가 물러난다고 영화제의 독립성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란 것도 알았다. 비판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나 각오를 했기에 제안을 한 것이다.”

- 물러나는 것을 조건으로,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할 정관 개정을 제시했어야 하지 않나?

“물론 그렇게 얘기했다. 당시 제시한 개혁안에 들어가 있다. 공동위원장이 오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서 시장이 강조하는 건 (영화제를 통한 지역 주민들의) 취업, (관련) 산업 (활성화)의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도 산업적 측면 강화하겠다며 여러가지 제시했다. 그러면서 조직을 쇄신할 테니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정관 개정해달라 했다. 그게 공동위원장을 제안한 내 조건이었는데 결국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 당시 제시한 개정안은 어떤 내용이었나?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영화제는 생명력이 없다.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내가 물러날 테니 다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손을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연이어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공동위원장 선임만 남았다. 그마저도 (인수인계를 위한) 올해 나의 연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영화제가 끝난 뒤) 감사원 감사 결과를 가지고 검찰에 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건 애초 약속과 다르지 않으냐 했지만….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 영화제를 잘 치르면 시장이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거다.”


정권의 압박이 시작되다

이 전 위원장이 시에 ‘휘둘리며’ 개혁안을 내고 공동위원장을 물색하던 지난해 4월 말, 영화진흥위원회는 난데없이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14억5천만 원에서 8억 원으로 삭감했다. 예산이 줄어든 건 처음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등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사업’ 대상인 다른 5개 영화제 지원액은 오히려 늘었다. 영진위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영화계는 “압박의 연장선”이라며 반발했다. 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이 정권 차원으로 퍼진 양상이었다. 이 결정 뒤 바로 부산 지역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 영진위의 예산 삭감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였나?

“정권이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즉각 반발했다. 클 만큼 컸으니 자립하라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것이, 기획재정부에서 해마다 예산 100억원이 넘는 행사는 타당성 조사를 한다. 우리가 항상 영화제뿐 아니라 모든 축제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을 받는다. 기재부는 정책적 지원을 해 키워야 할 축제라 하는데 영진위는 그걸 거꾸로 본 것이다. 정치권의 눈치를 봐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랬더니 자기들은 ‘자립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심사했다’ 그러더라.”

- 정권 차원의 압박이라 본 건가?

“그렇다. 이 정권 들어서만 있던 일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청와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당시 1순위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이었다. 그래서 황지우 총장이 물러났다. 2순위가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좌파영화제’라며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김 전 위원장이 그만둔 거다. 좌파영화제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괴롭혔다. 뉴라이트 쪽 사람들이 그렇게 공격했다. 지금과 양상만 다르지 본질은 같다. 모든 영화제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있어야 성장한다. 근데 ‘좌파’라며 몰아친 거다. 그때도 절대 따르지 못하겠다 버텼다. 심각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시달림 받았다.”

-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집행위원장이었다. 쇄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우린 법적 성격이 사단법인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관이 아니라 민간 자율단체다. 영화를 좋아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거다. 나나 김동호 위원장은 개인 돈도 투자했다. 그렇다면 10년이든 100년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칸영화제 집행위원장도 27년째 한 사람이 맡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영화제는 40년 동안 혼자 한다. 단지 예산을 국고와 시비에서 지원받는 것뿐이다. 조직위원장을 형식적으로 부산시장이 하지만 지금껏 간섭받지 않았다. 이제 와 사이가 나빠지니 문제가 된 거다. 감사원도 원래 국고 부분만 봐야 하는데 협찬금을 뒤진 거다. 자체 자금까지 감사해 고발하는 건 드물다. 그러니 정치적 보복이라 본 거다.”


마지막 담판, 정기총회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국고 지원은 없었다. 김 전 위원장, 이 전 위원장 등 영화제 설립자들이 후원받은 19억 원에 시비 3억 원을 합쳐 행사를 치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22만7377명이었다. 해마다 최다 인원 기록을 새로 쓴다.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현장 표를 구하기 위해 개막 사흘 전부터 줄을 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추산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생산·부가가치 유발 효과(2013년 기준)는 최대 2,172억 원, 고용 유발 효과 2,483명이다. 가능성을 본 국가와 부산시가 힘을 실었다. 지난해 20회 땐 (영진위가 삭감한) 국비 8억 원과 시비 60억5천만 원에 협찬금 51억 원 등 120억 원 규모로 예산이 늘었다. 시비가 절반이다.

상영 중단 요청은 전에도 있었다
농담해가며 웃고 넘기자 했다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 몫이라고
그런데 시장이 직접 찾아왔다
이후 여러 차례 압박해왔다

사퇴하고 쇄신하겠다 약속했다
물러나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독립성 보장 조건 걸었지만
지켜지지 않아서 허탈할 뿐
나는 정치 싸움에서 진 거다


- 부산시의 태도는 영화제의 재정 구조에서도 기인한다. 지원을 받은 만큼 시민과 교감해야 하지 않나?

“공격을 위한 수사일 뿐이다. 그럼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 시민과 교감해야 하나? 칸영화제가 칸 주민과 교감하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부산시민이 영화제에 자긍심을 느끼게끔 노력했다. 해야 할 일은 지역의 영화인, 문화예술인들과의 협업이다.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 변방이란 자조가 강하다. 문화예술에 투여하는 자원이 적다. 영화산업도 전혀 없다가 영화제가 생긴 뒤 관련 기관(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이 내려오고 투자·제작·배급 환경이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이제 막 협업이 시작됐다. 영화제가 다른 문화 장르에 순작용 하는, 같이 가는 길을 텄다. 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가 이해하지 못한다.”

- 영화제 독립성 관철이 가능했던 마지막 순간이 지난 2월 정기총회였던 것 같다. 결국 파행으로 끝났는데?

“총회를 앞둔 2월 17일, 시청에서 합의를 봤다. 경제부시장과 담당 국과장, 나와 수석 프로그래머가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시장이 조직위원장 사퇴하면 나 역시 연임하지 않겠다’고 했다. 시장의 사퇴는 (부산시장을 당연직 조직위원장으로 하는) 정관의 개정이 필요하다. 조직위를 새로 구성하고 사무총장을 두는 정관 개정안을 총회 자리에서 발의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음대로 하시라 하더라. 시장은 약속대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 했다. 난 총회 날 사전에 영화인들을 만나 얘기했다. ‘내가 그만두기로 합의했으니 정관 개정만 발의해달라, 연임 문제는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데 시장이 총회에서 정관 개정안을 받지 않은 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장은 몰랐다고 하는데 거짓말이라 본다.”


세 차례의 실수, 정치적 패배

- 지난 9일 서 시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민간인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반면 영화제 독립성 보장은 내년 2월로 미뤘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란 우려가 있다. 김 전 위원장께도 조직위원장 직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씀드렸다. 정치적 탄압이 이어졌는데, 사과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조직위원장을 민간인으로 바꾼 것만으로 영화인들이 영화제 보이콧한 상황을 무마하긴 쉽지 않다. 칸이나 베를린도 과거 비슷한 문제로 영화제가 열리지 않았다. 탄압에 면죄부를 주면서까지 올해 영화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젠 영화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권의 검열, 탄압, 간섭의 문제다. 원천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싸운 의미가 없다. 왜 그리 급하게 받았는지, 영화제를 정상 개최하는 게 그리 중요한지… 나로선 허탈할 뿐이다.”

-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은 지켜내지 못한 채 직을 잃은 셈이다.

“직을 잃은 건 상관없다. 세 차례 정도 결정적 타이밍이 있었는데, 다 실수했다. 첫째, 공동위원장을 제안한 것. 당시엔 그런 길밖에 없다 생각했다. 둘째, 검찰 고발 전 그만뒀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되지 않았을 테니. 자존심을 지킨다고 버틴 게 이리 됐다. 마지막으로 연임 안 하고 그만두면 정관 개정해주겠단 약속을 믿은 게 실수였다. 가끔 나이브(순진)하단 평을 듣는다. 난 정치적 싸움에서 완전히 졌다. 이번에 김 전 위원장을 설득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 영화제와 함께 인생의 20년을 보냈다. 소회가 어떤가?

“외부 간섭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제 성장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관객이나 시민들이 그걸 인정해준 게 큰 힘이었다. 설립자들의 열정과, 주위 여건이 맞아떨어졌다. 앞으론 본업인 교수(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학장) 생활에만 전념하고 싶다. 영화제에 개입 안 하겠다는 얘기까지 해놔야 될 것 같아 인터뷰를 수락했다.”


출처  정권은 오래전부터 부산영화제를 괴롭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