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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김영란 법에 농민 시름 커진다고?

김영란 법에 농민 시름 커진다고?
한국 농민을 뭘로 보고!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13 20:57:08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구리게 살 것이라는 착각은 좀 곤란하다. 게다가 혼자 착각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기자라는 직업을 이용해 그 착각을 ‘보도’라는 형태로 공론화하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9일 ‘김영란 법’ 시행령으로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이 5만 원으로 제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보수 성향의 중앙일간지들이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예를 들면 12일 조선일보는 무려 1면 톱으로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살펴보니 “김영란 법에 시름 커진 농·어민, 5만원 넘는 선물 금지로 한우 8000억 원 판로 막혀”라고 돼 있다. “농·축·수산업 관련 단체들이 재논의 안하면 투쟁 나설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다.

11일 연합뉴스 기사는 더 코믹하다. 연합뉴스는 [단독] 마크까지 붙여가며 기사를 내보냈는데, 제목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김영란 법에 골프장들 생사 갈림길’이다. 이게 도대체 왜 [단독]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낯간지러운 기사는 우리만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단독]인가?


기자들이 걱정하는 건 공짜 골프 사라지는 것?

기자라는 직군은 골프를 무척 즐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앙일간지나 방송사 등 영향력 있는 언론사의 중견급 이상 기자들 중에는 골프를 치는 사람이 상당하다. 그런데 이들 중 자기 돈 내고 골프 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부, 산업부 기자들이 출입하는 주요 부처 기자실에는 주말이 가까워 오면 ‘골프 빈자리’를 구하는 민원 전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출입처의 주요 인사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라는 명분도 핑계에 불과하다. 골프 빈자리는 출입처 비출입처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 곳에서나 자리만 나면 불러주고, 기자들은 자리만 나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골프를 치면서 단독 기사를 물어온다? 중앙일간지에서 10년을 일한 기자의 개인 경험을 회고하자면, 주말마다 골프장 나가는 기자들 치고 단독 기사를 물어오는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뉴시스


요즘은 안 그런다지만, 10년 전 기자가 경찰청을 출입할 때에만 해도 경찰청 기자실에서는 아침마다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그 고스톱 판에는 경찰청 공보계장쯤 되는 사람도 참가해 기자들에게 돈을 잃어줬다.

얼핏 봐도 판돈이 수 십 만원 규모였다. 판돈 7만 4000원짜리 고스톱도 도박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판례가 있다. 그런데 한국 치안의 본토인 경찰청 본청에서 기자들과 경찰관이 함께 판돈 수 십 만 원짜리 고스톱을 즐긴다. 요즘은 안 그런다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기자가 알고 있기로 당시 고스톱 쳤던 그 기자들이 지금 주요 언론사의 차장, 부장급 데스크들이다.

본청에서 공보계장을 맡아 기자들과 친분을 쌓으면 총경으로 승진해 일선 경찰서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가 경찰청을 출입할 때에도 승진을 해 모 지방 경찰서장으로 발령을 받은 간부가 있었다. 그 서장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본청 기자들을 자기 관할 지역으로 초대를 했다. 그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뭘 준비하나 봤더니, 자기 지역 노래방에 기자들 접대할 여성 도우미들 숫자를 맞추고 있더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적당히들 좀 하자!


농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준다

조선일보가 되지도 않는 농민 걱정하는 동안 진짜 농민들은 김영란 법에 대해 정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8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김영란 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추석을 앞두고 김영란 법으로 한우와 굴비 판매가 급감할 것이라는 언론의 호들갑에 대한 ‘진짜 농민’의 생각이었다.

이메일의 제목은 ‘농축산물을 이유로 김영란 법이 누더기로 되어서는 안 된다’였다. 박 위원장은 글에서 “김영란 법으로 인해 명절 특수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무분별한 FTA로 가뜩이나 위축된 농민들에게 불안감을 높여주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평소에 농업에 관심도 없고 오로지 ‘선개방 후대책’을 외치며 농민들도 새로운 환경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훈계를 일삼던 세력이 갑자기 농민 생존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한국 농민을 이렇게도 깊이 사랑했는지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할 정도이다”라고 꼬집는다.

이어서 그는 “농민을 앞세워 김영란 법을 누더기로 만들 소지가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시행령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 시키듯 김영란 법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벌써부터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고 경고했다. 박 위원장의 경고는 최근 김영란 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몇몇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로 현실화되는 중이다.

▲ 조선일보 2016년 5월 12일자 1면 보도에 사용된 이미지


박 위원장은 김영란 법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농민대책의 부재가 본질이라고 질타한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농민들의 목소리를 왜곡하여 김영란 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면서 농업대책은 고민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또 박 위원장은 이렇게 묻는다. “궁금증을 갖는다. 김영란 법으로 누가 잠을 뒤척일까?”라고.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박 위원장의 답은 이렇다. “명절에 떼돈을 버는 대형마트 등 유통기업이고, 농민과 갈수록 멀어져 돈벌이에 빠져 있는 농·축협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조용하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새누리당이 떠들고 있다. 이것 또한 한국 사회 부정부패의 한 단면이 아닐까.”

굳이 박 위원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은 이미 상당한 부패 후진국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5점을 맞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 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처럼 권력과 자본에서 출발한 부패구조는 필연적으로 농민,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 박 위원장이 메일을 끝맺으면서 “청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농민도 잘 산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라고 질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도대체 부정부패를 독려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 기막힌 콘셉트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경제사범을 풀어줘야(광복절 SK 최태원 회장 사면) 경제가 발전한다’에 이은 코미디 2탄인가?

공짜 골프 날아갈 걱정, 공짜 한우 못 먹을 걱정을 하는 건 개인 자유인데, 부디 그 걱정이 마치 ‘농민 걱정’인 것처럼 포장은 하지 말라! 한국 농민은 분명히 말한다. “청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농민도 잘 산다”라고. 김영란 법을 흔들어 누더기로 만드는 시도를 당장 그만 두라는 이야기다.


출처  김영란 법에 농민 시름 커진다고? 한국 농민을 뭘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