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노무현 잡고 함박웃음 짓던 ‘정치검찰’ 홍만표를 기억하다

노무현 잡고 함박웃음 짓던 ‘정치검찰홍만표를 기억하다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 | 최종업데이트 2016-05-16 12:50:13


▲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대검 11층 중수부 창문 안쪽에서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사람의 운명이란 것은 참으로 기묘한 듯하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변호를 명목으로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홍 변호사는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지내던 2009년 당시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함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핵심 인물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소환조사가 진행되던 그해 4월 대검찰청사 11층 휴게실 창가에서 찍힌 그의 함박웃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그의 웃음은 두고두고 회자돼왔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상황은 이례적으로 언론을 통해 실시간 공표됐다. “박연차 회장이 2억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 등의 보도가 검찰의 입을 통해 여과 없이 나왔다.

물론 출처는 검찰 관계자였고, 그 핵심 관계자는 수사기획관이었던 홍 변호사라는 말이 돌았다. 이처럼 홍 변호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편승해 죽은 권력을 향한 ‘정치검찰’의 맹위를 떨쳤다.

검찰의 무차별적인 피의사실 공표 행위와 이를 받아쓴 언론의 협공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해 5월 23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은 사퇴했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그해 7월 검사장으로 승진해 서울고검 공판송무부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7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으로 ‘영전’을 거듭했다.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당한 사건은 불기소 처리됐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검사복을 벗은 그는 2011년 9월 변호사로 변신해 업계 최고의 ‘전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개업 2년째인 2013년에는 월평균 소득 2억6천만원으로 연간 91억2천여만의 소득을 올렸다. 국내 개인소득자 중 15위, 법조인 중 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정치검찰’에서 ‘전관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제 도리어 검찰 수사의 칼날에 겨눠진 신세로 전락했다.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정운호 대표로부터 전관 변호를 명목으로 고액의 수임료를 챙긴 혐의를 받는 홍 변호사에 대한 소환 조사를 조만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홍 변호사가 정 대표의 원정도박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과 경찰에 부당한 변론 행위를 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고 소환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가 도박 혐의로 검·경 수사를 받고, 가중처벌 요인이 되는 혐의 적용을 받지 않는 등 홍 변호사의 영향력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충분하다. 홍 변호사는 지난 2014년 정 대표가 원정도박 혐의로 수사를 받을 당시 검찰과 경찰로부터 두차례 무혐의 처분을 받을 당시 변호를 맡았다. 재수사 끝에 정 대표는 그해 10월 또다시 도박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네이처리퍼블릭 등이 보유하는 자금을 이용해 도박 빚 정산대금을 세탁했다”는 횡령에 대한 내용을 적시해놓고도 도박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이 시기에 검찰 내부에서는 홍 변호사의 영향력 행사가 지나칠 정도였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로 홍 변호사의 전관 비리 의혹이 깔끔하게 규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 고위직 출신인 만큼 형식적인 수사 절차만 거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현재로선 검찰의 적극적이고 투명한 수사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노 전 대통령이 7년 전 홍 변호사로부터 겪었던 치욕이 씻어지진 않겠지만 말이다.


출처  [기자수첩] 노무현 잡고 함박웃음 짓던 ‘정치검찰’ 홍만표를 기억하다